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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실 때 트윗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었다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자주 든다. 곽노현 교육감을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낸 것도 이름이 알려진 진보지식인이 아니라 이름 없는 네티즌이다. 왜 지식인은 조중동과 검찰이 던져준 먹이를 덥석 무는 것일까. 한 번도 아니고 매번 똑같은 수법에 당하는 것일까.

반면 제명될 줄 알았던 강용석 의원은 엘리트들의 담합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는 김형오 전의장의 준엄한 일성이 의원들의 손을 오그라들게 만든 것이다.

왜 진보는 같은 편이라도 타인의 잘못에 대해 엄격하고 보수는 관대한 것일까. 혹자는 진보의 도덕 콤플렉스가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진보의 생명은 도덕성이므로 우리 편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진보와 보수의 상반된 행동의 배경에는 '자기애'라는 동일한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동인이 정 반대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치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어느 사회나 정당정치 그것도 양당정치(소선거구제)가 기반이 된 사회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편 가르기'의 속성을 갖는다. 선거에서 네 편을 이기고 내 편이 정권을 잡는 것이 보수가 원하는 재화의 획득, 진보가 원하는 가치의 성취를 가능하게 한다. 양 진영은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과 전술을 구사한다.

기본적으로 편가르기 정치에서는 내편과 네편의 이념적 분포는 비슷하기 때문에 힘을 합쳐 같은 목소리를 냄으로써 상대방과 기싸움에서 이기는 쪽이 더 많은 중도표를 받게 된다 (필자의 칼럼 "진보진영, 중도층의 환상에서 벗어나라" 참조).

보수는 정치의 속성을 매우 잘 이해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지를 기가 막히게 안다. 그래서 잘 조직된 거대한 집단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언론은 전략기획을 담당하고 정치인은 그 지시에 맞게 움직이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정치인은 언론이 다시 준엄하게 꾸짖는다. 보수진영의 이익에 맞는 논객은 키워주고 진영에 불리한 목소리를 내는 논객은 가차 없이 잘라낸다. 언론은 진영을 위해 궤변을 만들어내고 언론사로서 망가지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보수진영에 있어서 진영논리를 따르는 것은 자기애의 발현이기도 하다. 보수권력이 탄생하면 떡고물이 나눠질 것이며 나의 이익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이 조화로운 건 보수진영이 이익으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을 실천하면 나도 살고 진영도 산다. 보수진영의 팀플레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보수언론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반칙과 협잡, 몰상식은 정치의 기본이다.

진보언론의 '곽노현 죽이기'는 자기애와 정치 개념 부족 때문

진보논객은 왜 진보정치인에게 가혹한가? 김어준은 진보의 같은 편 때리기는 비겁함에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용감했던 논객과 언론인은 이 말에 억울함을 느낄 것이다. 나는 자기애와 '정치개념' 부족이 결합한 데에 더 큰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진보논객의 도덕적 엄격함은 자신에게도 적용될 텐데 어떻게 엄격한 비판이 '자기애'에서 비롯되었느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나는 진보논객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엄격하다면 같은 편에 대해 그렇게 가혹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진정으로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비교적 너그러운 게 순리다. 상대가 우리 편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정치논평에 중립은 불가능하다. 소위 진보언론인과 지식인들은 이념적으로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논평이 가능하면 공정해 보이길 바란다. 그것이 논평의 생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같은 편이 잘못하면 더 추상같이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공정성을 증명하고자 한다. 자신의 비판이 진보진영에 미칠 영향을 계산하지 않고 비판부터 하는 논객은 우리 진영에 튄 흙탕물이 자신에게는 튀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게 아닐까. 우리 편이야 어찌되든 말든 자신에게만 너그러운 것이다.

진보언론은 진보진영의 전략기획을 할 의사도 없지만 진보진영을 하나의 진영으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특히 신문은 민노당, 진보신당 편향적이어서 민주당 중심의 정권이 탄생해야 할 필요성조차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진보진영에게는 공동의 목표가 없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가 없을 때에는 자기애의 발현이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아닌 진보진영을 아우르는 곽노현 교육감에게도 진보언론이 가혹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말하려는 핵심이 바로 이점이다. 진보언론과 논객의 정치개념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한마디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개념'이란 정치의 속성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자신의 논평이 진보진영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계산할 줄 아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계산을 하려면 여론과 선거행태에 대한 이해, 선거제도, 정당제도, 홍보이론 등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적어도 <조선일보> 기획단은 이런 전문지식으로 무장되어 있고 전문가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안다. 반면 진보진영은 운동권의 추상적인 논리에는 강할지 몰라도 여론을 움직이는 실용적 지식이나 정치에 대한 전문성은 현저히 부족하다.

오히려 그들의 강한 신념이 지식을 방해한다. 전문성이 없으니 어떤 지식인을 논객으로 띄워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다. 진보진영에서는 인맥, 글빨, 정치 이외 분야의 전문성이 논객의 선정 기준이 된다. 진보언론이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빠져 드는 이유는 이들 논객이 무엇이 우리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계산할 정치적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된장과 똥도 구분할줄 모른다. 정당이든 언론이든 논객이든 적절한 무지는 자기애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안철수 교수의 출마선언에는 어떤 논평을 내놓을까

그 점에서는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의원워크샵이나 토론회 때 초청하는 연사를 보면 개념이 없다. 민주당은 최근 박경철씨를 초청해 쓴소리를 들었다. 교양이나 경제강좌를 듣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적절한 연사 선정이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국민의 정서를 아는 게 목적이라면 차라리 시민들과 타운홀 미팅을 해야 한다.

박경철씨는 훌륭한 분이지만 정치개념은 일반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장 후보가 10여명 난립하는 것이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은 후보가 나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나오고 젊은 의원들에게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반드시 나쁘지 않다. 적당하지 않은 이유로 혼나는 강연이 민주당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렇다면 네티즌들은 왜 곽노현 살리기에 나섰을까. 네티즌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편향성이 있으니 정치개념이 본능적으로 발달되어 있다. 시민들은 진보논객과 달리 논평자로서의 자기애가 없다. 진실의 추구에 관심이 많은 것도 있지만 우리편이 이기는게 정의라고 믿는 경향도 있다. 정의를 향한 시민들의 용감함과 사심 없음이 곽노현교육감 살리기로 나타난 것이다.

진보진영은 상식선에서 이념 싸움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불법, 반칙, 몰상식한 집단과 경쟁하고 있다. 그 집단은 정치의 속성을 한 눈에 꿰고 있는 베테랑이다. 진보진영 공동의 목표설정, 정치개념에 대한 이해 없이 진보진영은 그들에게 패할 수밖에 없다.

요즘 시민들이 <나는꼼수다>에 폭발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단지 재미 때문이 아니다. 상대편의 의도를 꿰뚫는 탁월한 직관과 자료에 기초한 유익한 분석 때문이다. 그러한 분석에 기초해 우리 편에게 분명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나꼼수>는 보수진영의 <조선일보>처럼 진보진영의 전략기획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진보진영 시민이 실력 있는 정치논평에 목말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안철수 교수가 양당의 이념적 대결을 비판하며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를 고민하고 있음을 밝혔다. 정치 불신층을 타겟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독하게 높은 정치불신은 꼭 현실정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조중동의 정치불신 조장, 독재정부의 의도적 조작의 영향이 크다. 정치불신을 동력으로 하는 안철수 교수의 출마에 대해 진보언론과 논객이 어떤 논평을 내놓을지 사뭇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곽노현, #안철수, #박경철, #논객, #진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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