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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우디에 있는 오빠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학현에게

너도 그 곳에서 은하수를 보니? 오빠는 전에 은하수라면 별들이 총총 박혀 있는 것일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희미한 구름 같은 거야. 하지만 가을 밤은 달이 있으면 밝은 달빛이 좋고 달이 없어도 맑은 별 빛 속에 인간의 무한한 기쁨을 느낀단다.

 

너의 편지, 오빠는 기쁜 웃음을 줄줄 흘리며 읽고 읽고 또 읽었단다.

백일장에서 차원을 했다고.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해. 참 인사가 늦었다. 엄마도 몸 건강히 편안하시며 가현이는 잘 있겠지. 오빠도 너와 엄마 그리고 가현이의 염려 덕분에 잘 있단다.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돼. 하지만 최저한의 인간의 조건을 지켜가려고 노력해. 그리고 요 며칠사이에 3권으로 된 일본 작가의 '인간의 조건'이란 책을 읽었어, 무척 감명깊게 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면서 읽었다. 너에게도 한번 권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 때를 막론하고 많은 책을 읽기 바란다. 그것이 아무리 하잘 것 없이 보이는 것일지라도 작가는 피를 짜내는 고통 속에서 그것을 썼다고 생각하면 범연히 넘길수가 없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자주 써보도록 해라.

 

물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 하지만 정신적인 것은 갈고 닦지 않으면 녹슬기 싶단다. 그리고 기쁠 때나 슬플 때 그리고 심심할 때 오빠에게 편지해 주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으로 감소되로록. 그리고 집안 소식을 함께 알려 주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언제나 마음은 그리운 집에 가 있단다.

 

언제나 말고 밝은 생활을 하도록 당부한다  -멀리서 오빠가-'

 

나는 언니에게 용돈을 타서 '인간의 조건'이란 책을 당장 사다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오빠 말대로 나 또한 감명 깊게 읽었지만 전쟁하에서 최소한의 인간의 조건을 아니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주인공이 꼭 나처럼 느껴져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나는 어떤 책은 두 번씩 읽을 때도 있었는데 이 책은 너무도 강렬하게 주인공의 심정이 전해져 와서 다시 읽고 싶지 않을 만큼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나 역시 최소한의 인간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으니까요.

 

다행히 우리 집은 오빠가 사우디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빚을 다 갚고 아끼고 아껴 은평구 신사동에 크지는 않았지만 방이 세 개에 거실도 있었고 부엌도 싱크대가 있는 신식 새 빌라를 한 채 살 수 있었습니다. 산동네 무허가 집이 아니라 진짜 우리 땅 우리 집인 것입니다.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자원 사람도 산동네 사람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보통의 집들을 짓고 사는 집 한 가운데로 이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동네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봄이면 장미가 만발하고 가을이면 감나무가 무성한 단독주택들이 많았고 그 동네를 벗어나 위로 올라가면 야트막하지만 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이곳에도 산동네가 있었고 부엌을 통해 방으로 들어가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좁은 골목길을 만들었고 그 골목길은 미로처럼 길에서 또 다른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산동네에 살 때는 산동네가 싫었는데 새로 이사온 다음부터 나는 이 산동네가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산동네에 살지 않는데서 오는 여유 때문이었을까요.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면 방안의 더위를 피해 문 밖에 나와 앉아 있는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이 부채질을 했습니다. 이들도 언젠가는 진짜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겠지요. 나는 그런 마음의 기원을 하며 그 골목길를 통해 얕으막한 언덕을 오르고는 했습니다.

 

그리고 신사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엄마의 병은 점차 나아져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엄마가 아침 밥을 짓습니다. 그리고 저녁밥을 짓고 청소도 매일 했습니다. 엄마는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일까요. 지겹도록 지치도록 가난했던 것이 엄마의 병을 키웠던 것일까요. 오빠와 언니가 벌어 오는 돈으로 우리는 이제 가난에서 조금씩 벗어나 정상적인 가정생활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0대 중반이 되도록 연애 한번 하지 않고 열심히 회사 일에 매달렸던 언니가 엄마와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맞선을 봤습니다. 언젠가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형편이 어려운데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인 것 같고 자존심이 상해."

 

언니는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존심을 지켜 온 덕분에 누가 봐도 요조숙녀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형부가 되었지만 첫 만남이자 첫 남자였던 형부와 언니는 몇 년의 연애기간을 거쳤고 결혼을 했습니다. 몇 년의 연애기간은 형부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고 우리 사돈 어른은 언니를 보자마자 아들의 허락도 없이 결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른들 사이에서 먼저 결혼이 결정되어 버린 것이지만 언니도 형부도 다행히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연애기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형부와 언니는 약혼을 했고 진짜 우리집을 가지게 되었다는 두 개의 경사가 겹쳤지만 내게 크나큰 병마가 찾아올 줄은 나를 비롯해 가족 모두 까마득히 모른 채 우리는 샴페인을 사들고 들어와 서로 축복하며 기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학현이의 성장에피소드 <최초의 거짓말이 있었으니>


태그:#진짜 우리집, #연재동화, #최초의 거짓말, #학현이, #장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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