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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을 돌고 돌아

메주고리에 고원으로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네레트바강
 메주고리에 고원으로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 본 네레트바강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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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에 가는 길은 네레트바 강을 따라 나있다. 그러다가 치트루크로 갈라지는 길에서 우회전하면서 네레트바 강을 건넌다. 여기서부터는 버스가 정말 높은 고원을 향해 지그재그식 운행을 한다. 똑바로 올라갈 수 없으니 왔다갔다 하는 식으로 길을 낸 것이다. 길옆은 천 길 낭떠러지다. 커브에서 버스 두 대가 만나면 상호 교차가 불가능할 정도다. 마음은 조마조마하지만 내려다보는 경치는 정말 멋지다.

그리고 메주고리에로 가고 오는 차들이 의외로 많다. 알고 보니 매월 25일 메주고리에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사자들이 여러 나라 언어로 성모 마리아의 말씀을 전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나라 가톨릭 신자들이 메주고리에를 찾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2010년 12월 25일에 보내진 바 있고, 가장 최근에는 2011년 8월 25일에 보냈다고 한다. 지난 해 12월 25일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메주고리에 평원
 메주고리에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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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자식들아. 나와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충만한 기쁨과 평화를 너희들에게 주고 싶구나. 너희들 모두는 너희들이 사는 곳에서 기쁨과 평화를 즐겁게 전달하고 증거 하는 사람이 되어라. 내 사랑하는 자식들아. 축복과 평화를 받아라. 너희들이 나의 외침을 들어주어서 고맙다." 

버스가 가파르고 구불거리는 길을 힘겹게 오르니 넓은 고원지대가 펼쳐진다. 이곳이 치트루크 고원지대다. 여기서부터 8㎞쯤 떨어진 곳에 메주고리에가 있다. 메주고리에는 '산악 속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크로아티아계의 주민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라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메주고리에의 기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100만 명 정도의 신자와 관광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메주고리에 이야기

성모발현지로 오르는 어린이
 성모발현지로 오르는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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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에의 기적은 1981년 6월 24일 처음 나타났다. 오후 6시 메주고리에 출신의 어린이 여섯이 츠르니카 산에서 팔에 아이를 안은 하얀 형체를 보았고, 놀랍고 무서워 더 이상 가까이 가질 못했다. 이튿날 그중 네 명(이반카 이반코비치, 미리야나 드라기체비치, 비카 이반코비치, 이반 드라기체비치)의 어린이가 그곳엘 다시 갔고, 전날 보았던 것과 똑같은 형상을 볼 수 있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그것이 성모 마리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 네 명의 어린이가 본 것을 마리아 파블로비치, 야콥 콜로가 증언하게 되면서, 이들은 메주고리에의 예언자(Seher)가 되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성모 마리아의 출현을 빌고, 또 성모 마리아와 대화를 나눈다. 그 후 밀카 파블로비치와 이반 이반코비치에게는 그런 현상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다른 여섯 사람은 함께 또는 따로 그런 현상을 계속 체험한다.

성 야곱교회
 성 야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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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중 미리야나와 야콥만 사라예보 출신이며, 이반카, 이반, 비카, 마리아는 메주고리에 비야코비치 출신이다. 미리야나 드라기체비치(1965년생)에 따르면, 1981년 6월 24일부터 1982년 12월 25일까지 매일 성모 마리아를 보았고, 평생 동안 나타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1987년 8월 2일에는 성모 마리아와 함께 신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고, 앞으로는 매월 2일에 나타날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두 자녀를 낳았으며 현재도 메주고리에에 살고 있다.

메주고리에 신앙의 중심은 성 야곱 교회다.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감사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종교 프로그램이 행해진다. 천주교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는 메주고리에 순례를 주관하는 단체들이 결성되었다. 2010년 8월에는 무려 7,742명의 신부가 메주고리에를 방문했고, 33만 명이 성체성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1991년 바티칸의 신앙교리성에서는, 메주고리에의 성모 발현을 초자연적인 현상 또는 계시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성모발현지에 사람이 그렇게나 많다

메주고리에 성모발현지로 오르는 사람들
 메주고리에 성모발현지로 오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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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발현지를 찾아가는 길을 의외로 꼬불꼬불하고 좁다. 그리고 성모발현지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없다. 그래서 우리 버스는 한두 번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한다. 이곳 주민들에게도 묻고, 택시 기사에게도 묻고 해서 간신히 찾아간 곳은 아주 울퉁불퉁하고 좁은 산길 앞이었다. 우리는 1시간 여유를 가지고 성모발현지까지 갔다 오기로 한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날씨가 여의치 않다. 우산을 준비한다.

도로 주변으로는 일반 상점과 기념품 가게가 많다.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오르자 바로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진다. 돌길 정도가 아니라 시련의 길이다. 그런 길을 맨발로 오르는 사람도 있다. 조금 더 오르니 단체로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앞에서는 신부님이 이들을 인도하고 있다. 중간 중간 잠시 멈춰서 신부가 기도를 하고 신도들이 성모송으로 화답한다. 그들의 언어를 통해 이탈리아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또 할머니의 손을 잡고 오르는 손녀도 보인다. 개들도 따라 오른다.

메주고리에 성모발현상
 메주고리에 성모발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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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 중간 중간에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 관련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 나도 잠시 쉬며 올라온 길을 잠시 되돌아본다. 멀리 메주고리에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옆에는 나무로 만든 십자가도 보인다. 15분쯤 길을 오르자 성모 마리아 상이 나타난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리아상 주변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마리아상 앞에는 신도들이 바친 꽃들이 가득하다. 신도들은 주변에서 기도를 올린다.

마리아상 옆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있다. 이곳에서 어떤 신도는 맨발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비신자인 나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마리아상과 예수상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난다. 현장으로 오르는 척박한 산길, 변화무쌍한 날씨 변화, 멀리 보이는 메주고리에 평원의 광대함, 이런 환경 때문에 이곳에서는 신심이 절로 우러나는 모양이다.

성모발현 30주년 기념 십자가

성모발현 30주년 기념 십자가
 성모발현 30주년 기념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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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와 아내는 올라갈 때와는 다른 길로 내려간다. 역시 아이들도 보이고 신부님도 보인다.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내려오면서는 메주고리에 평원이 더 잘 내려다보인다. 베네치아와 아드리아해 연안 그리고 남유럽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의 붉은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메주고리에에는 현재 43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한참을 더 내려오니 성모발현 30주년 기념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상이 세워져 있다. 성모발현 30주년이라면 2011년 6월 24일이다. 그럼 이들 조형물은 세워진 지 한 달 밖에 안 된 것이다. 이 기념물은 높지 않은 곳에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까지 와서 기도를 드린다. 주변에 온 사람들이 그녀를 격려한다. 독실한 신자들의 신심에 나의 가슴도 메어진다. 마리아상 앞에는 하얀 백합이 바쳐져 있다.

메주고리에 성모발현지
 메주고리에 성모발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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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발현지의 돌길은 거의 끝났다. 돌길이 끝나는 곳에서 아내는 기념으로 묵주를 몇 개 산다. 이제 버스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주변의 상점에 들러 책자라도 하나 사려고 하는데, 별로 마땅한 게 없다. 비는 이제 그쳤다. 버스로 돌아가니 이곳에서 포도를 산 분이 그것을 나눠준다. 짧은 시간동안 산길을 올라갔다 내려와서 그런지 포도맛이 더 좋다.

아드리아해의 네움으로 가는 길 

메주고리에를 떠난 우리는 아드리아해의 네움으로 간다. 먼저 차플리나로 내려간 다음 네레트바강을 따라 메트코비치까지 간다. 메트코비치는 크로아티아 땅이지만 우리가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네움까지 갈 것이기 때문에 별 검문이 없다. 메트코비치에서 오푸젠을 거쳐 아드리아해 쪽으로 나가면서 보니 이 지역이 간척지임을 알겠다. 완전한 평지인데다, 농토가 잘 구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움
 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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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지나 고개를 넘자 아드리아해가 나타난다. 앞에 섬 형태의 펠리에샤치가 있어 전망이 확 트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산악지대에서만 노닐다 바다를 보니 속이 시원해진다. 다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국경을 넘자 바로 네움이 나온다. 메주고리에에서 네움까지는 50㎞쯤 된다. 네움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유일한 항구이자 해변휴양지다. 보스니아는 네움 해변의 25㎞를 통해서만 아드리아해로 나갈 수 있다.

네움에 도착해 네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네움 호텔은 이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호텔이다. 호텔방에서 바다가 바로 내려다 보여 전망은 아주 좋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경제 시절 리모델링을 하지 않아선지 시설이 낡은 편이다. 아내와 나는 바로 바닷가로 내려간다. 물이 정말 깨끗하다. 바다 속에는 조개와 고동 등이 많다. 그리고 수온이 높아 해수욕하기도 좋다.

네움 해변
 네움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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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반대편 쪽으로는 유람이 가능한 작은 배들도 있다. 이곳 네움에는 4600명 정도의 주민이 주로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아드리아해의 다른 지역보다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와 몬테네그로의 코토르를 관광해야 할 우리들이 숙소를 이곳 네움으로 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해변을 좀 더 산책한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오면서 석양을 만끽한다.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바다, 섬과 산들이 이루는 실루엣이 잘 어울린다. 이제 사람들은 서서히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호텔이 대형이라서 식당에도 사람들이 많다. 이곳은 또한 학생들의 단체숙소로 사용되는지, 청소년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심지어는 폴란드에서 온 젊은이들도 있다. 이 호텔이 과거 공산당 간부들이 휴양을 즐기던 곳이라고 가이드가 귀띔해 준다.


태그:#메주고리에, #성모발현지, #성모발현 30주년, #성 야곱교회, #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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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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