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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한 고발서도, 단순한 야구 에세이도 아니다

2009년 5월 말, 전직 야구선수가 낸 책이 화제가 됐다. 이 책에는 프로야구계에 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들을 언급했고, 한국판 'Juiced(전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호세 칸세코가 쓴 스테로이드 사용에 관한 논픽션)'라는 소문이 야구팬 사이에 돌았다. 야구팬들은 실제로 약물을 사용한 프로야구 선수가 누구인지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시끌했던 여론은 잠잠해졌다. 그 책도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이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약물 복용 선수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데에만 집중했고 책의 내용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은 약물 고발서가 아니었다. 프로야구의 한 역사를 장식했던 강타자 마해영은 프로야구에서 '드문' 학구파 야구인이란 평가를 받았다. 누구나 프로야구에 대해 한두 마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안쪽의 사정까지 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수 출신으로서 프로야구 현장의 숨결을 그대로 전한 보기 드문 야구서적인 것이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집중된 관심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큰 화제로 만들어냈다. 프로야구 9구단 창단, 선수들의 사생활 문제,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 경질 등. 마해영의 글은 투박하지만 프로야구의 여러 현안에 닿아있다. 내부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든 뒷이야기부터 프로야구 발전을 위한 고언까지 그 폭이 넓다. 책이 나온 지 2년이 지났지만 마해영이 지적했던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마해영이 바라본 야신 김성근

게임에 임하기 전 스타팅 오더를 작성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 적당히 컨디션 좋은 선수 위주로 멤버를 짜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통계와 계산 하에 작성한다. 경기 전의 오더를 보면 다들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대지만 경기가 끝나면 다들 "아,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김 감독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또 어떤 야구인보다도 선수를 아끼고 존중한다. 쉽게 선수를 버리거나 함부로 과소평가, 평가절하 하지 않는다. 오랜 경험과 뛰어난 능력으로 맡은 팀을 연속 우승시키며 강팀으로 완성시켰다. SK와의 경기 때마다 상대팀들이 받는 느낌은 참으로 이기기 힘든 팀이라는 것이다.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어렵게, 가까스로 이기고, 2, 3점 차이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라도 줄곧 불안하게 느껴진다. - '야신(野神) 김성근' 가운데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고 존중하는 야구의 대가인 김성근 감독은 2000년대 이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재미없는 야구, 심지어 비열한 야구라는 평가까지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SK 와이번스를 맡은 이후 계속 상위권에 위치시키면서 그러한 세간의 평가는 잦아들고 김성근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공 하나를 던져도 그 뒤는 없다는 듯 열심히 뛰어 최선의 결과를 내려는 것이 김성근 감독의 철학이다. 그 철학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됐고 SK 와이번스의 스포테인먼트와 결합해 많은 관중 증가를 이뤄냈다. 마해영이 본 김성근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 상대팀의 선수로 활동하면서도 그 작전과 인품에 감동하는 것. 그것이 마해영이 바라본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구단과의 갈등 끝에 김성근 감독은 재계약 포기를 선택했고, 구단은 경질로 응답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많은 인천 야구팬들은 분노해 아직까지도 상황이 매끄럽게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이다. 재계약 포기와 경질을 두고 많은 말이 오가는 상황이지만 팬들의 여론은  SK 구단에 불리한 상황이다.

야구선수도 인격체다. 프로야구를 위한 선수 인성교육이 절실

현장에서 감독과 코치들이 가끔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은 절대 금지'라는 말로 주의를 주고는 있지만 엄포성 발언에 그칠 뿐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교육효과가 미미하다. 물론 선수들도 성인인 만큼 개개인이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함은 당연하다.

나 역시 현역시절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어디에서,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해야 할 지 난감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예를 들면 상황 대처 요령이다. 성적이 나쁘거나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선수들은 술을 마시며 풀곤 한다. 밤늦게 술을 마시며 휘청거리기라도 하는 것을 본다면 당연히 좋은 말이 나올 수 없다. 간혹 술자리에서 참기 힘들 만큼 모욕적이거나 자극적인 말을 듣게 되면 팬들과 언쟁이나 몸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그것을 일일이 귀담아 듣고는 욱하는 마음에 그들과 상대하여 사소한 싸움이라도 일어난다면 결국 모든 책임과 비난은 선수가 뒤집어쓰게 되는 게 현실이다. -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인성교육의 필요성' 가운데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늘어났다.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사가 되며 사소한 행동도 인터넷에 알려지게 됐고,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에 대해서는 많은 비난이 뒤따랐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선수들의 사생활로 인한 문제가 프로야구계에 충격을 던졌다.

음주사고부터 섹스 스캔들, 인터넷을 통한 내부 갈등의 표출, 인터넷 상에서의 팬들과 선수들의 충돌. 참으로 다사다난하다. 구단에서도 소속 선수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구단과 그룹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관리에 힘을 쓰고 있다.

야구선수 또한 경기가 끝나고 야구장을 나서면 한 사람의 직장인일 뿐이다. 사건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사생활은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래도 팬들의 관심은 뿌리칠 수가 없기 때문에 선수 개개인의 대처와 구단 차원의 인성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야구선수는 야구하는 기계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야구만 했던 사람들은 야구에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 사회에서 자리 잡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미리미리 개선점을 마련해야 한다. 단 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어린 나이에 이리 저리 멀리 원정을 다니는데 낭비되는 시간을 아껴야 한다. 그렇게 버려지는 시간만 아끼더라도 어린 선수들이 반드시 공부해야만 하는 나이에 공부할 수 있는 시간, 학교 교실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두세 배쯤은 늘어날 것이다.

또 아마추어 경기를 체계적으로 조직화하고, 잘 구분하여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항상 주말에 경기를 하도록 하고, 반드시 공부와 병행할 수 있도록 평일에는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둘 다 욕심을 내 보자'는 식이 아니라 '운동하는 놈이 운동만 잘 하면 됐지, 공부는 해서 어디에다 쓸려고!"하는 식의 전근대적인 생각을 버리자는 뜻이다. 또한 야구하는 기계로 살아가기 이전에 '지혜로운 인간'으로 먼저 성장하도록 하자는 말이다. - '먼저 공부하라!' 가운데

지난 24일, 프로야구 신인지명회의, 일명 드래프트를 통해 총 92명의 아마추어 야구선수가 프로야구팀에 지명됐다. 777명의 드래프트 신청자 중 약 11.8%의 선수가 프로야구로 활동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지명받지 못한 고교야구 선수 중 일부는 대학으로 진학한다. 지명받지 못한 대학야구 선수와 대학진학에 실패한 야구선수는 사실상 여기서 선수 생명을 마치게 된다.

그나마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한 선수들은 학교에서 체육교사로 활동할 기회가 있지만 폭이 좁고, 학위가 있어도 할 줄 아는 것은 야구 밖에 없어 다른 일을 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고교야구 주말리그제가 도입되고, 대학 운동부에서도 학생들에게 일정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면 경기 출장을 막고 학기 중의 학업을 장려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야구를 선택했다면 야구에만 올인하게 하는 풍토가 선수들의 지적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프로 선수가 되더라도 선수 생활 중의 이런 저런 문제에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고, 다른 회사원들보다 이른 은퇴 후에도 진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이다. 누구보다 그 사정을 잘 아는 마해영의 외침이 가벼이 들리지 않는 이유다.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으면 선수 사칭을 한다고요?

미국과 일본의 구단들은 주차장 및 부대시설서 상당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수만 대를 주차할 수 있는 넓은 주차 공간과 구매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좋은 품질의 상품, 맛있는 음식, 친절한 안내원, 청결한 경기장 등 경기를 보는 즐거움 이외에도 또 다른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 바로 이들 선진국의 야구장이다. 좋은 환경과 수준 있는 경기가 관중들을 끌어 모으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 '롯데, 스포츠마케팅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팀' 가운데

2000년대 초반 한 야구인과 야구 마케팅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프로야구의 발전과 함께 스포츠 마케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프로야구 유니폼 등의 상품 판매가 활성화되면 인기몰이와 수입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고 다니면 선수를 사칭할 수도 있고…"란 생각 밖의 대답이었다. 지금은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찾는 것이 일반화됐다. 유니폼 뿐만 아니라 수건과 머리띠 같은 각종 액세서리를 판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그 양은 미미하다.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광팬이 사는 집이 나온다. 그의 집안 모든 가재도구는 레드삭스와 관련된 물건이다. 식기부터 가구, 모든 생활용품에 레드삭스의 로고가 찍혀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의 상품점을 방문하면 종류의 다양함에 기가 죽는다. 모자와 유니폼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관중들의 지갑을 열게 한다. 구단 인증제도를 이용하여 상품의 품질을 관리한다. 일본 야구팬들에게 상품은 단순한 응원도구가 아닌 팀과 자신의 유대감을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 인식되는 것이다.

프로야구 30주년을 자축하고 있지만 대도시 구장을 제외하면 편의시설의 부족이 심각한 지경이다. 화장실은 낡고 좌석은 불편하다. 구단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팬들이 스스로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내 '공동구매' 형식으로 소비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구단 판매 상품들을 온라인에서 구입하려면 구단마다 판매하는 상품의 종류가 다르고, 구단 안에서도 상품별로 판매하는 곳이 달라 팬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600만 700만 관중을 논하기 이전에 프로야구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주는 팬들을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더 많은 야구인의 야구 이야기가 필요해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스스로 적은 탓에 자세하고 깊게 파고들어가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하지만 마해영 자신이 프로야구 선수로 살아오며 느꼈던 점을 다양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이 책은 높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자신의 선수 생활을 되돌아보며 겪었던 일에 대한 솔직한 회고록이며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한 제안서다.

마해영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논의할 수 있는 폭넓은 토대가 만들어지면 프로야구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야구 서적들의 발간이 활성화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환경도 발전하는 중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선수들의 자신들의 의견과 생각을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마해영의 야구본색

마해영 지음,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2009)


태그:#프로야구, #마해영, #야구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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