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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에 도착하자말자 포탈라 궁을 오르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라싸는 평균고도가 3650m나 된다. 그런데 110m 높이의 가파른 포탈라 궁을 도착한 날 오르면 십중팔구 고소 증에 시달려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아마 그것은 산악인 엄홍길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라싸에 도착한 첫날 포탈라 궁을 올라갈 생각은 절대로 하지말아야 한다.

해발 3650m에 위치한 라싸 포탈라 궁은 13층 높이의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백궁(정부청사)과 홍궁(사원)으로 나누워진 포탈라 궁은 수천개의 방이 미로처럼 들어 차 있다.
 해발 3650m에 위치한 라싸 포탈라 궁은 13층 높이의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백궁(정부청사)과 홍궁(사원)으로 나누워진 포탈라 궁은 수천개의 방이 미로처럼 들어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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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탈라 궁 신들의 땅 티베트 라싸(3650m)에 위치한 포탈라 궁은 13층 높이의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백궁과 홍궁으로 구성된 포탈라 궁은 110m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므로 라싸에 도착한 첫날 오르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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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크호텔에 투숙하던 일본인 여성 여행자가 어젯밤에 고소증이 심해 병원으로 실려갔다. 도미토리에는 고소증 때문에 물을 마시며 며칠째 누워 있는 여행자들도 있다. 고소증이 심하면 내수종에 걸릴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라싸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며 어느 정도 고도에 적응 다음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패키지여행을 온 여행자들은 일정에 쫓겨 도착한 날 바로 포탈라 궁을 오르는 경우가 많다. 어떻든 하루라도 휴식을 취하며 고도 적응을 한 다음에 포탈라 궁을 오르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관람에도 좋다.

포탈라 궁을 순례하는 티베트 순례자들
 포탈라 궁을 순례하는 티베트 순례자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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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야크호텔에서 나올 때는 하늘이 푸르고 맑았다. 거리는 아침 일찍부터 순례자들로 붐빈다. 갑자기 설산에서 검은 먹구름이 키츄 강을 가로질러 흘러오더니 거센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지라 옷이 젖어 잠시 거리의 숍에 피해있는데, 어럽쇼? 빗줄기가 그만 구슬 같은 우박으로 변하지 않는가? 도로와 지붕에는 우박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콩을 볶는 것처럼 요란하게 탕탕거린다.

포탈라 궁은 향하여 오체투지 참배를 하는 티베트 순례자
 포탈라 궁은 향하여 오체투지 참배를 하는 티베트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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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은 비가 오던, 우박이 떨어지든 상관을 하지 않고 도로 바닥에 온 몸을 밀착하며 오체투지를 하면서 포탈라 궁을 향하여 가고 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도대체 무엇을 간구하며 그들은 가고 있을까?

그렇게 거세게 쏟아지던 비와 우박도 잠시,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푸르고 맑게 갠다. 이처럼 티베트 고원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하기야 우리나라 한라산이나 지리산만 해도 고도에 따라 날씨가 천차만별인데, 세계의 지붕인 티베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인지 이곳 티베트인들은 언제나 긴 소매 옷과 바지, 그리고 모자를 쓰고 다닌다. 더울 때에는 저고리를 벗어 허리에 걸친다. 카디건의 유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포탈라 궁 입구에 있는 사자상에 카따가 어리럽게 걸려 있다.
 포탈라 궁 입구에 있는 사자상에 카따가 어리럽게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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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 궁 앞에 도착하니 순례자들이 구름처럼 물려들고 있다. 내일이 이곳 티베트 월력으로 '부처님 오신 날'이여서인지 티베트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수없이 몰려 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음력 4월 8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지만, 티베트에서는 음력 4월 15일이 부처님 오신 날로 정해져 있다.

라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포탈라 궁은 죠캉, 라모체 사원을 중심으로 '만다라' 형태를 이루고 있다. 북쪽으로는 단라산맥이 동서로 뻗어있고, 남쪽으로는 온골리 산맥이 굽이치고 있다.

그 사이에 라싸는 동서로 60km, 남북으로 8km의 장방형 분지를 이루고 있다. 그 장방형 가운데로 키츄강이 길게 흐르고 있다. 그 강의 북쪽 기슭에 '붉은 산'이라는 뜻의 '마르뽀리'가 솟아있고, 구 정상에 포탈라 궁이 우뚝 솟아있다.

포탈라 궁으로 올라 가는 계단
 포탈라 궁으로 올라 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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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궁은 세계 건축학적 경이로움의 하나이다. 거대한 건축물은 13층 높이에 방이 수천 개나 된다. 포탈라는 관음의 성지 보타낙가산과 연계되어 관음보살의 화신을 상징한다. 원래 '포타'는 범어로 '배', '라'는 '항구'를 뜻하며, 인더스 강 어귀의 항구 이름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포탈라 궁을 멀리서 보면 붉고 흰 돛을 단 범선이 항해를 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미래에 어느 날, 천지가 다시 개벽하는 날 관음보살의 화신이 나타날까? 수많은 사람들이 관음보살의 화신이 나타나기를 기원하며 오체투지로 포탈라 궁을 돌고 있다.

거대한 배처럼 보이는 포탈라 궁. 범어로 '포타'는 '배'를 뜻하며, '라'는 '항구'를 뜻한다.
 거대한 배처럼 보이는 포탈라 궁. 범어로 '포타'는 '배'를 뜻하며, '라'는 '항구'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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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포탈라 궁을 관람한 뒤에 코라를 돌기로 했다. 포탈라 궁은 오전 9시에 문을 열며, 입장료는 100위안으로 만만치가 않다. 하루 입장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미리 표를 사 두어야 한다. 사자상이 있는 입구를 지나 언덕을 천천히 오른다. 아니 숨이 차서 빨리 오를 수도 없다.

궁 앞에는 티베트인들이 건물을 짓고 담을 수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짚신 밟기를 하고 있는 남녀들의 소리가 구성지고도 구슬프고 들려온다. 언덕을 오르는데 숨이 꼴깍 넘어갈 것만 같다. 백궁 위에서 숨을 한 참 고른 뒤 포탈라 궁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포탈라 궁에 올랐네요!"
"당신은 다비드 넬보다 더 용감한 여성이야."
"다비드 넬이라니요?"
"서양 여성으로는 최초로 라싸에 입성을 한 그 프랑스의 여성 말이요."
"아하, 그 용감한 여성 탐험가요. 어찌 저를 그렇게 위대한 여성에 비교할 수 있나요."
"그렇게 힘든 몸으로 이곳에 오른 당신이 더 용감하게만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돛을 단 배처럼 보이는 포탈라 궁
 멀리서 보면 돛을 단 배처럼 보이는 포탈라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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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티베트에 오기 전에 프랑스의 여행가인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1869~1969)의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이란 책을 읽었다. 그녀는 10년 동안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금단의 땅인 티베트 라싸에 육로로 진입하는 데 성공을 한 최초의 서양 여성이다.

그러나 나는 다비드 넬 못지않게 아내의 라싸 입성이 장하게 생각되었다. 아내는 루푸스란 난치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하루에 네 번의 인슐린을 투여하면서까지, 갖은 고난을 극복하며 베트남에서 출발하여 중국 윈난, 쓰촨, 간쑤, 칭하이 성을 거쳐 라싸 입성에 성공을 하였다. 그것도 육로를 통해서 30일만에 입성을 했다. 이는 정말로 값어치 있는 구도여행이란 생각이 든다.

배트남에서 출발하여 30일 만에 육로를 통해 라싸 포탈라 궁에 올라. 하루에 네번의 인슐린을 맞으며 갖은 고난 끝에 라싸에 입성한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한 용간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트남에서 출발하여 30일 만에 육로를 통해 라싸 포탈라 궁에 올라. 하루에 네번의 인슐린을 맞으며 갖은 고난 끝에 라싸에 입성한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한 용간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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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라 궁은 백궁과 홍궁으로 나누어진다. 백궁은 정부청사로 이용하고, 홍궁은 역대 달라이 라마가 주석하고 있는 사원으로 쓰인다. 웅장한 건물은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방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짙은 향과 버터 등잔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방에는 금은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다. 이 척박한 고원에서 이렇게 엄청난 금은보석이 어떻게 모아온 것일까? 포탈라 궁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

어두운 회랑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 본다. 옥상에는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묘탑들이 안치되어 있다. 영묘탑 안에는 제5대 달라이 라마에서부터 13대 달라이 라마의 금칠을 한 육신이 미라로 안치되어 있다. 사람이 생명을 다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로 사라지거늘 그들은 어찌하여 육신을 미라로 만들어 그것도 금칠을 하여 영묘탑에 안치하였을까?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포탈라 궁 옥상
 포탈라 궁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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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는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추억이 서린 곳이 한 곳 있다. 그가 사용했던 거실에는 집기와 가구들이 그대로 진열되어 있다. 오스트리아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1912~2006)가 쓴 <티베트에서의 7년>에 묘사된 방이다. 어린 달라이 라마가 즐겨 듣던 제니스라는 구형 라디오와 쌍안경도 진열되어 있다.

밖으로 나와 눈을 들어보니 설산에 뭉게구름이 요동을 치며 흘러간다. 그 산 아래로 키츄 강이 굽이치며 흘러간다. 세 여인이 검은 순례 복을 입고 키츄 강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긴 여행 끝에 도달하였을까?

포탈라 궁에서 키츄 강을 바라보고 있는 티베트 순례자들. 나라를 잃은 그들의 슬픔은 어떤 심정일까?
 포탈라 궁에서 키츄 강을 바라보고 있는 티베트 순례자들. 나라를 잃은 그들의 슬픔은 어떤 심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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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움직일 줄을 모른 채 영혼의 도시 라싸 주위를 내려다보고 있다. 나라를 잃은 그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과연 달라이 라마는 생전에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입으로 평화를 외치는 자는 평화를 빼앗고 있다. 어쩐지 서글퍼지는 마음으로 안고 우리는 포탈라 궁을 내려왔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세계 70여 개국을 여행한 오지여행가로 저서로는 <사랑할 때 떠나라>가 있다.



태그:#포탈라 궁, #티베트, #라싸,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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