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제가 된 <조선일보> 4일자 보도.
 문제가 된 <조선일보> 4일자 보도.
ⓒ 조선PDF

관련사진보기


<조선일보>는 지난 4일 'EBS 인기 강사의 황당한 근현대사 강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사의 부제를 ""북한은 美식민지 남한을 해방시키기 위해"," 빨갱이 골라낸다면서 머리 짧다고 그냥 죽여"라고 달기도 했다.

이 기사를 통해 EBS의 인기 강사인 최태성 교사의 수능특강 현대사 강의에 대해 "공영방송이… 왜곡된 근현대사 강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고 수능 전문 채널로 방영. 사교육업체 인터넷 강의도 문제 - 80년대 이념교육 받은 이들이.... 편향된 史觀 그대로 가르쳐… 강의 도중 "이승만 ×새끼"라는 소제목도 달았다.

이 기사는 대표적인 우익 언론단체로 알려진 공정언론시민연대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EBS 인기강사의 강의가 반미 친소적이며 북한 우호적 내용.... 최씨의 대부분의 강의가 반한(反韓) 친북(親北)적 입장으로 일관돼 있다. 이런 강의를 사설 학원도 아닌 공영방송 EBS에서 듣게 되는 고등학생들은 반대한민국적 역사의식에 물들 수밖에 없다"라는 평가했다. 또한 "1980년대 이념적으로 치우친 근현대사 세례를 받았던 상당수 교사 강사들이 여전히 그 세계관 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명지대 교수의 코멘트까지 달려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기사는 최소한 당사자에게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다. 영문도 모르고 친북반미 교사로 매도 당한 최 교사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사를 쓰려면 적어도 저한테 확인 전화 한 번은 해야 하는 게 기본 아니냐? 조선일보사와 기사를 쓴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분노했다.

<조선일보> 기사와 공정언론시민연대가 밝힌 강의 내용은 자신의 생각이나 사실이 아니라 북한의 주장을 소개하거나 사실을 전달하는 일부 내용이라는 것이다. EBS나 자신에게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강의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왜곡보도했다는 것.

또 다른 당사자인 EBS 역시 5일 입장을 내어 "(조선일보는) 강의내용 중 특정 부분만 발췌하여 마치 강의 내용이 좌편향적인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왜곡했고 이를 본 국민들로 하여금 수능강의가 이념적 편파성을 가진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 기사 작성 과정에서 EBS 관계자나 해당 강사 누구에게도 어떤 형태의 확인 작업을 거치지 않아 기사의 신뢰도를 낮췄다"고 반발했다.

더 큰 문제는 보수언론들의 '받아쓰기 관행'

EBS로 하여금 "단순한 신뢰의 문제를 넘어 성실히 강의해온 한 교사 강사의 열정과 교권에 대해 사회적 매장선고가 돼 가고 있다"며 분개하도록 만든 이 기사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냈다. <조선일보> 기자가 당사자 확인도 않고 왜곡보도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쓰기한 다른 보수언론들의 보도 관행도 문제다.

<조선일보> 기사를 받아서 "미제 팬티 입었다고 그냥 죽여"…EBS강사의 황당한 강의(매일경제), "EBS 수능강의에서 '北미화' 현대사 강연 이뤄져"(데일리NK) 라고 보도했다.  더 나아가 <EBS가 현대사를 이 따위로 가르치니… 세계일보>, <역사왜곡 EBS, 이러고도 수신료 받나...국민일보>, <從北현대사 전파 무대된 공영 EBS 수능특강... 문화일보>, <EBS 편향역사 강의 스스로 걸러내라... 서울신문> 등이 사설까지 동원되어 최 교사를 난도질했다.

이렇게 보수언론의 사설로까지 확대되는 과정에서 EBS나 최교사에게 해명의 기회도 주지 않았고,  사실 확인도 없이 <조선일보> 보도를 사실로 받아썼다. 하루 아침에 최 교사는 학생들에게 친북반미 의식을 주입시키는 '빨갱이 교사'가 되어 버렸다. 최 교사가 소송을 통해 <조선일보>에게 손해배상을 받아낸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의 이마에 새겨진 주홍글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수업 내용까지도 자기들 뜻대로 재단할 수 있다는 <조선일보>의 전지전능함(?)이 두렵기까지 하다.

보수인터넷 언론인 <데일리안>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강의의 주인공이 이전에 전교조 교사였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강의를 한 시점에는 이미 전교조 조합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도 않았고,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의 인터뷰를 통하여 "이래서 전교조 조합원 명단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명단 공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영국 체벌 부활' 기사도 오보 확대 재생산
위 내용과 비슷한 장면은 지난 7월 초 영국의 No-touch 정책의 폐기를 두고서도 벌어졌다. 싸움을 말리거나 학생 지도를 위한 신체접촉의 허용을 두고 '영국이 체벌을 부활'했다고 오버를 한 것이다. 이 오보의 출발은 중앙일보였다. 7월 12일 중앙일보는 영국 <데일리메일> 이라는 언론을 인용하면서 "영국 '노 터치' 폐기…13년 만에 학생 체벌 허용"이라는 기사와 "13년 만에 결국 '노 터치' 폐기한 영국"이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조선일보> "英 교육당국, 학생 체벌 금지하는 '노터치' 규정 폐기", <동아일보> "英, 학생체벌 전면 금지 '노터치 정책' 포기", <매일경제> "영국 학교 교사체벌권 부활. 잇따른 교내 폭력에 `노터치 정책` 폐기" 등의 기사가 이어졌다.

<영국이 13년만에 학생 '노터치' 정책 폐기한 이유... 문화일보>, <교육적 완력 써도 좋다는 英 새 훈육지침... 서울신문>, <다시 '사랑의 매' 드는 英 교사들... 국민일보> 등의 사설까지 동원되었다. 이를 통해 보수언론들은 영국의 체벌 부활을 기정사실화 하며 체벌을 금지한 곽노현 서울교육감 등 진보교육감 공격에 나섰다.

압권은 한나라당이다. 다음 날 "좌파교육감, 영국의 훈육정책 전환에서 배우라"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 논평 2011.7.13)를 내놓으면서 합세했다. 이를 통하여 "영국 정부는 학생체벌 전면금지를 의미하는 '노터치' 정책을 시행 13년 만에 전면 폐기하였다. ... 영국의 교육정책 전환은 우리나라 좌파교육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진보교육감에게 훈수를 두었다.

교총도 가세했다. '영국의 체벌금지 '노 터치' 정책 폐기 발표에 대한 교총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진보교육감, 노터치 폐기한 영국 교육 '반면교사'로 삼아야! 세계교육 흐름과 배치, 교실위기, 교권추락 가속화 막을 대안 마련해야"라고 주장했다.

교총은 이를 통해 영국이 학생체벌 전면금지 정책(노 터치 정책)을 폐기했다면서 "학생인권조례 및 체벌전면금지를 시행하는 일부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면밀히 살펴 세계교육의 흐름에 역주행하는 부분에 대해 크게 자성하고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교총은 "학생을 체벌하는 것이 세계 교육의 추세"라는 황당한 결론을 내놓은 것이다.

보수언론과 보수단체· 보수정당의 압묵적 연대가 오보 확대 재생산

그런데 <중앙일보>가 스타트를 끊고, 다른 보수언론들이 바통을 이어받고, 한나라당과 교총 등 보수세력까지 가세한 "영국의 체벌 부활" 기사는 오보로 밝혀졌다. 누리꾼들이 <중앙일보>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영국교육부의 홈페이지와 교육부 장관의 발언 등을 인용하면서 '영국 체벌 부활'은 명백한 오보임이 밝혀졌다. 직접 영국 교육청이 공개한 훈육지침에 따르면 "물리력을 체벌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조금만 성의를 가지고 영국 교육부 홈페이지를 가보거나 원문 자료를 확인했다면, <동아일보> 등 다른 보수언론들이 <중앙일보> 기사에 대해서 한 시간만 찾아보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고였다. 그러나 오보를 낸 <중앙일보>를 비롯하여 어떤 언론도 오보를 사과했다는 기사를 찾기보고 어렵다.


태그:#조선일보, #현대사, #EB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