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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김윤옥 한식당'이 올해 안에 뉴욕에 문을 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가 5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미국 뉴욕 번화가에 세계 최고급 한식당을 세우겠다던 '플래그십 한식당' 프로젝트가 사실상 전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농림수산식품부(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현재 플래그십 한식당 사업 진행이 안 되고 있는 것은 맞다"며 "(예산을 사용하지 않고 불용시키는)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목 잡힌 상황 선결 안 되면 '플래그십 한식당' 설립 어렵다"

 

지난 2010년 3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가 명예회장을 지낸 '한식세계화추진단'을 모태로 한식재단이 만들어졌고,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이 이사장에 취임했다. 특히 정운천 이사장은 "2011년에 미국 뉴욕에 표준화된 김치의 플래그십 식당을 개점하겠다"며 "세계의 대도시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실제 농식품부는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2011년 예산안에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개설 사업비 50억 원을 포함시켰다.

 

이런 배경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영부인 홍보용 사업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는 "정부가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이 관료적인 발상인지, 사회주의적인 발상인지 모르겠다"(전병헌 의원)는 여야 의원들의 반대로 보류 됐지만, 한나라당에 의한 국회 예산안 날치기 처리 때 함께 처리돼 논란이 일었다.

 

이후 농식품부는 세종대학교에 '플래그십 한식당'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를 통해 당초 올해 4월까지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질 예정이었지만, 2개월이나 늦은 지난 6월 말에야 겨우 연구보고서가 제출됐다. 올해 절반이 지나갔지만 '플래그십 한식당' 예산으로 받아놓은 50억 원은 거의 사용하지 못한 채 묵혀 두었던 셈이다.

 

게다가 '전 세계 플래그십 한식당'을 목소리 높여 주창했던 정운천 이사장마저 지난 6월 초 슬그머니 사표를 냈다.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그동안 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한식재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는 한식재단 이사장 취임 직후 6.2 지방선거에서 전북도지사로 출마했고, 특정 정당(한나라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김우남 민주당 의원은 "한식재단마저 정치화시킬 거냐"며 당시 유정복 전 농식품부 장관을 상대로 정운천 이사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그러나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프로젝트가 중단된 것은 마스터플랜이 늦게 나오거나 추진 주체가 부재해서가 아니라는 게 농식품부 측의 주장이다. 농식품부는 그 책임을 국회로 돌렸다.

 

당초 농식품부는 식당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추진했지만, 지난해 연말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매입'으로 변경하는 바람에 기업들이 수익확보에 불리하다며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뉴욕에서 1년 상가 임차비용이 30억 원이라고 할 경우 그것을 사려면 거의 땅값만 200억 원 가까이 줘야 한다"며 "이 때문에 어떤 기업도 쉽게 우리와 컨소시엄을 맺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식당을 개설할 때 매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주로 임대를 하는데, 국회에서 그런 사항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매입 하라'는 단서를 붙였다"며 "외식업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뉴욕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특히 "이미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부터 족쇄가 채워져 있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 선결 되지 않으면 (플래그십 한식당 설립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의 '자승자박'... '임대'에서 '매입'으로 변경

 

그러나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농식품부의 해명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여야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힌 농식품부가 무리하게 '플래그십 한식당' 예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무마시키기 위해 스스로 '임대' 방식에서 '매입'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 변경된 예산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됐다. 결국 농식품부 스스로 '플래그십 한식당'의 발목에 족쇄를 채운 셈이다.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16일 열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예결소위에서 정승 농식품부 2차관은 맨해튼(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설립을 위한 임차료, 인테리어 비용 등 5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강봉균 민주당 의원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지도 못하는데 (정부가) 해마다 (임차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의원들 간에 논란이 벌어졌다.

 

성윤환 한나라당 의원은 "돈 50억 원을 아끼자고 우리 음식을 세계에 갖다가 선뵈는 일을 안 하는 것은 문제"라며 정부 측을 거든 반면 같은 당의 강석호 의원은 "정부가 식당을 직영화하면 뉴욕에 있는 기존 한식당들이 난리가 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정범구 민주당 의원도 "국가가 직접 이런 국영식당을 운영하는 데 이런 식의 돈을 배치하는 것을 도대체 누가 납득하겠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승 2차관은 "취지가 좋다고 판단해서 시작을 했지만 위원님들 말씀을 듣고 보니, 추진 방식에 여러 가지 우려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충분히 검토해서 내년도 아니면 다음에 다시 한번 해 보겠다"고 물러섰다. 이에 따라 이날 회의에서 '플래그십 한식당' 예산 50억 원은 삭감됐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2주 후에 재개된 농식품위 예결소위에서 '플래그십 한식당' 예산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정승 2차관은 "당초 논의됐던 임차방식으로 할 경우 정부투자 분을 까먹으면 확보가 안 되니까 그걸 매입방식으로 (변경)하고, 민간인들과 컨소시엄을 통해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가 2주 만에 스스로 '플래그십 한식당'을 '임차'가 아닌 '매입' 방식으로 변경해서 추진하는 안을 만들어온 것이다.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이 사전 준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농식품부가 왜 "내년 이후에나 추진해 보겠다"던 입장까지 번복하면서 무리하게 '플래그십 한식당' 예산을 따내려고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농식품부의 요구대로 5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주는 대신, 추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마련되면 국회 농식품위원회에 보고한 뒤 집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세종대학교로부터 마스터플랜을 받은 지 한 달 가까이 됐지만 현재까지 국회에 사업 보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현 상태로는 '플래그십 한식당'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만약 플래그십 한식당 사업이 예정대로 되지 않을 경우 예산을 전용할 것인지, 쓰지 않고 불용처리 할 것인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워낙 '플래그십 한식당'이 외부로 많이 알려진 상황이라, 전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불용 처리 쪽에 무게를 실었다. 

 

 

"마구잡이로 밀어붙여 예산만 따 놓고 결국..."

 

이와 관련 정범구 의원은 지난 6월 서규용 신임 농식품부 장관을 상대로 한 국회 질의에서 "처음부터 많은 위원(의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안 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을 갖고 있었던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농림부가 마구잡이로 밀어붙여서 예산만 따 놓고 결국 아무것도 안 됐다"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업을 벌여 놨다가 못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뉴욕 현지 반응 역시 싸늘하다. 뉴욕 한식업계의 한 관계자는 "갑자기 한식세계화를 하겠다는 영부인의 말 한마디에 충성어린 공무원들이 예산을 무조건 받아놓고 나니 (식당) 매입도 안 되고, (예산) 전용도 안 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며 "한심하다 못해 우습다"고 꼬집었다.

 

뉴욕 맨해튼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아무개(39)씨는 "한국 정부가 정말 한식세계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며 "공무원들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자기 밥줄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사람들 같다"고 지적했다.

 

뉴욕 퀸즈대학 '재외한인사회연구소' 방문연구원인 이규진(이화여대 식품영양학 박사)씨는 "경제적, 문화적 측면의 가치를 고려할 때 한식세계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한식세계화는 거창한 구호나 일회성 행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 한식당 종업원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메뉴판을 고치는 가장 기초적인 일부터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있는 고객층에 대한 치밀한 사전 조사와 메뉴 개발, 음식 문화적 연구 등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태그:#김윤옥 한식당, #플래그십 한식당, #한식세계화, #농림수산식품부, #정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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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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