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4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구재단 복귀결정이 내려진 동덕여자대학교.
 지난 14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구재단 복귀결정이 내려진 동덕여자대학교.
ⓒ 홍현진

관련사진보기


한 달 전 삭발한 오렌지 빛 머리 위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쬈다. '그래도 머리가 빨리 자라네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슬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제가 어려서 그렇대요, 89년생이라 공대위(비리사학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어린 편이거든요"라며 밝게 웃는다. 화려한 패턴의 셔츠에 검은색 짧은 치마. 짧은 머리만 아니면 영락없는 23살 여대생이다.

지난 14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후문 앞.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이하 사분위)가 정이사 9명 가운데 과반수인 5명을 구재단 측 추천인사로 선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슬 총학생회장은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21일, 성북구 하월곡동 동덕여대 정문 천막농성장에서 이 총학생회장을 만났다. 햇빛만 겨우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쳐 놓은 천막에는 '구재단 복귀 결사반대!!'라고 적힌 노란색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구재단 떠난 이후 '전국 최저'이던 등록금 환원율 90%까지 올라"

이슬 동덕여대 총학생회장.
 이슬 동덕여대 총학생회장.
ⓒ 홍현진

관련사진보기

이 총학생회장은 "저는 그날 제가 너무 많이 울어서 실신하는 줄 알았다"고 구재단 복귀가 결정 나던 날을 떠올렸다.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낙관주의에 젖으면 안 된다' 이런 얘기를 늘 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아침부터 계속 동덕여대는 8월로 (심의가) 밀렸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덕성여대랑 대구대 대표자들이 홍준표 원내대표 만나러 갈 때도 '잘 돼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식 듣고 놀라서,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 대표들이 다 당황했어요."

당시 오후 2시에 시작한 심의가 오후 8시경이 되어서야 끝날 때까지 동덕여대·대구대·덕성여대·오산대 학생들은 교과부 밖에서 비를 맞으며 초조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이미 구재단이 복귀한 상지대·세종대·서일대 학생들도 함께했다.

현장에서는 대구대와 덕성여대에 구재단 복귀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날벼락'이 떨어진 곳은 덕성여대가 아닌 동덕여대였다. 대구대 역시 17년간의 임시이사체제를 마감하고 옛 비리재단이 돌아오게 되었다. 학생들은 절규하면서 교과부 정문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들이 막아섰다. 

동덕여대 학내분규의 역사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과부 감사 결과, 조원영 전 동덕여대 총장이 교비 78억 원을 불법으로 재단에 빼돌렸고, 조 전 총장의 어머니인 이은주 전 이사장은 8억여 원을 불법으로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학내 구성원들은 수업거부 등을 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2004년 구재단 추천 3명, 구성원 추천 3명, 교과부 추천 3명으로 구성된 이사진이 새롭게 출범했다. 이후 2007년 손봉호 전 총장 해임을 둘러싸고 또 다시 내분이 일어나면서 교과부는 2010년 종전이사들을 모두 해임하고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구재단 축출 이후 혼란이 있긴 했지만 재정투명도와 민주성은 높아졌다. 21일 동덕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유극렬 교수(동덕여대 교수협의회장)는 "비리재단이 있었던 2002년 말만 해도 '등록금 환원율은 전국 최저이면서 등록금은 전국 최고'라는 뉴스가 나올 정도로 학생들에 대한 투자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이후 새로운 이사진이 들어오면서 재정이 투명해지고 2010년에는 등록금 환원율이 약 90%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구재단 조씨 일가, 종전이사도 설립자도 아냐...무슨 논리로"

유극렬 동덕여대 교수협의회장.
 유극렬 동덕여대 교수협의회장.
ⓒ 홍현진

관련사진보기

유 교수는 사분위 결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먼저, 지금까지 사분위는 '종전이사', '설립자'라는 명분을 들어서 구재단에 학교를 돌려줬으나, 구재단인 조씨 일가는 종전이사도 설립자도 아니라는 것이 구성원 측의 주장이다.

유 교수는 "동덕여대의 경우 종전이사가 2004년 교과부가 개편한 9명인데, 이들 가운데 구재단 측 3명을 제외한 6명이 구재단의 복귀를 반대하고 있다"면서 "영남대의 경우 '종전이사의 과반수 찬성과 이해관계가 있는 각 구성원 2/3이상 찬성이 있을 경우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분위 내규를 적용해 임시이사를 파견했지만 동덕여대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 교수는 또한 "올해 초, 구성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0%가 구재단 복귀에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 교수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은 동덕여대의 '진짜' 설립자가 조 전총장의 조부인 고 조동식씨가 아닌 이석구씨라는 판결을 내렸다"면서 "사분위는 '진짜 설립자에게 정이사 추천권을 줘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그렇다면 왜 가짜 설립자에게 과반수의 정이사 추천권을 준 거냐"라고 반문했다. 현재 조씨일가는 1심 판결에 항소한 상태다.

유 교수는 조씨 일가가 횡령액 3억3300만 원을 아직도 갚지 않았다는 점도 사분위 결정의 문제점으로 들었다. 그러면서 "동덕여대의 경우, 지금까지 사분위의 구재단 복귀논리에서 모두 벗어나기 때문에 14일 당일 그러한 결정이 날 줄은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고 말했다.

이슬 총학생회장은 "사분위 민주당 추천 위원인 김형태 변호사를 만났는데 그러시더라, '비리고 뭐고 상관없고 그냥 주인찾아준다는 거, 딱 하나다, 종전이사고 설립자고 모두 주인 돌려주려고 만든 논리일 뿐이다'"라며 "동덕여대는 투쟁력도 없었고 정치적인 압박도 없다보니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총학생회장은 "특히 지난해 취임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던 총장님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 "이번 사분위 결정을 보면서 학생이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 교수가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 총장이 할 수 있는 활동의 범위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총장님을 더 원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 총장인 김영래 총장은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이다.

"언제든 또 비리저지를 수 있어...무기력하게 당할까 걱정"

21일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학생과 교수, 교직원들이 김영래 총장이 구재단 복귀 반대에 앞장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21일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 학생과 교수, 교직원들이 김영래 총장이 구재단 복귀 반대에 앞장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 홍현진

관련사진보기


현재 동덕여대는 교과부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지만, 내부 투쟁동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총학생회장은 "2003년에 구재단을 쫓아내기 위해서 진짜 크게 싸우고 나서 투쟁력을 잃은 측면이 있다"면서 "교과부 후문으로도 당장 나가지 못하는 것이, 학생들 동원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학내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천막 농성을 시작했지만 방학 중이라 천막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총학생회장은 "집집마다 찾아다니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라고 답답해했다. 구재단이 복귀하게 되면 가장 걱정되는 게 뭐냐고 묻자 이 총학생회장이 답했다.

"구재단 추천 인사들이 바보가 아니고서는 한 1, 2년 동안은 아무 것도 안 할 것 같아요. 티나게 활동하지 않고, 이사로서의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하겠죠. 그러면 그동안 학우들 생각하기에 '그때 복귀한다고 난리치더니 별 문제 없네' 하다가 투쟁동력 더 약해질 것 같아요. 재단문제가 우리 학교에 있었고,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감시해야 하는데 사실 학우들이 직접적으로 느껴본 적이 없잖아요. 저도 08학번이니까 잘 모르잖아요. 공부해서 알고 언니들한테 들어서 알고. 지금 학생회장들, 09, 10학번인데 7, 8년 전 이야기하면서 투쟁하라고 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희가 무기력하게 당할까봐,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유극렬 교수는 "구재단이 복귀하면 피바람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옛날로 돌아가는 거죠. 투자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복귀하려고 하겠어요. 이사돼봤자 회의수당밖에 못 받는데 왜 모든 힘을 다해서 돌아오려고 할까요. 돈 때문 아니겠어요?

웃긴 게 사분위가 그날 회의를 6시간 정도 했어요. 그러면서 저희 학교를 포함한 16개 교육기관에 대해 심사를 했어요. 저희학교가 자산이 1조 원 정도가 돼요. 현금은 3000억 정도. 어떻게 1조 원이나 되는 재산을 그렇게 뚝딱 결정할 수 있는 건지... 저희 학교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거든요. 그날 장시간 마라톤 회의를 하면서 16개 교육기관을 심의했어요. 회의라는 게 한 시간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데(웃음), 사분위 위원들은 자기가 무슨 신이라고 생각을 하는 건지."

이날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는 구재단 복귀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학생·교직원·교수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천막 농성과 함께 매주 목요일 마다 학내 집회를 열 예정이다.


태그:#동덕여대, #동덕여자대학교, #사분위, #비리사학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