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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1월 국가인권위는 당시 행정안전부가 입법예고 중이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일부개정안'에 "개정내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의견을 냈던 국가인권위가 한 조사관의 계약해지에 항의해 1인시위를 벌였던 11명의 직원들을 징계위에 회부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의견'을 냈던 국가인권위가 정작 내부직원들의 표현의 자유는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 위반 인정-재발방지 약속' 하면 선처한다고 회유"

 

지난 6일 국가인권위는 올 초 강인영 전 조사관의 계약해지(재계약 거부)에 항의해 1인시위를 벌인 직원 3명에게는 중징계, 8명에게는 경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18일(6급 이하 직원 7명)과 21일(5급 이상 직원 4명)에 고등징계위가 열릴 예정이다.

 

국가인권위는 지난 1월 28일 강 조사관의 재계약여부를 심사한 끝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지난 2009년 5월부터 전국공무원노조 국가인권위 지부 간부로 활동해왔으며, 현병철 위원장의 비민주적 조직운영 등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당시 국가인권위 지부는 "계약연장 거부 결정은 해당 직원의 노조 활동, 특히 현 위원장 체제를 비판하는 활동에 대한 보복적 인사 조치"라고 주장했다. "노조 무력화 시도"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후 2월부터 내부 직원들이 위원회의 '계약해지'에 항의해 1인시위를 벌였고, <오마이뉴스>와 <경향신문> 등 언론매체에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지난 4월부터 이들의 1인시위와 언론매체 기고 활동 등과 관련해 감사를 벌였다. 감사를 벌인 끝에 이들이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와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지난 6일 5급 이상 직원 3명에게는 중징계, 5급 이상 직원 1명과 6급 이하 직원 7명 등 8명에게는 경징계 의결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인권위에서 '징계 의결'을 요구하기 전 위원회는 징계 대상자들에게 '공무원법 위반 사실'과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징계 대상자들은 이 같은 위원회의 요구를 '신준법서약서'로 규정하고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며칠 뒤 위원회는 이들의 '징계의결'을 요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위원회는 반성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면 선처해주겠다고 여러 번 회유했다"며 "하지만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신준법서약서'는 수용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광주, 대구, 부산지역 사무소 소장들이 탄원서를 돌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 지부는 지난 12일 "개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야 할 기관의 지도부가 취해야 할 행위가 이들에게 법 위반 사실의 일방적 인정과 '준법서약' 요구여야 했는지에 절망감을 느낀다"고 밝힌 바 있다.

 

공무원 표현의 자유 옹호해놓고 1인시위 직원들은 징계위 회부

 

하지만 국가인권위가 1인시위와 언론매체 기고 등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내부에서부터 나오고 있다.

 

내부직원인 A씨는 자유게시판에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 관련 우리 위원회의 권고를 기억하여 주십시오'라는 글을 올려 "이번 징계위 심의에서 그동안 우리 위원회가 다른 국가기관에 권고했던 내용이나 취지를 감안하여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지난 2009년 11월 국가인권위가 행정안전부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일부개정안'에 "헌법상으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개정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권고한 것을 상기시켰다.

 

당시 행정안전부는 '국가공무원 복뮤규정'에 ▲정치지향적 목적으로 특정 정책을 주장, 반대, 국가기관의 정책결정과 집행 방해를 금지한다 ▲민원인에게 불편을 초래하거나 근무여건을 해할 수 있는 정치적 구호를 금한다 등을 포함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공무원이 개인으로서 갖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고, 공무원의 신분상 불이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개정안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A씨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자유로운 의사에 반한 정치적 압력 행사로부터 공무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공무원 개인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이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의 정치적 행위를 억압하는 수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고등징계위가 모든 인간이 언제든 어디서든지 누려야 할 기본적 인권 중의 인권인 '표현의 자유'의 보호와 향상을 지향하는 위원회의 역할을 확인시키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다른 직원 B씨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번 국가인권위의 징계의결 요구를 "위원회의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헌법이나 국제조약 등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포괄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며 "공무원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국가인권위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고 권고했고, 공무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개정'에도 반대했다"며 "그런데 내부의 비정규직은 잘라버리고, 내부 공무원들이 1인시위를 벌였다고 중징계 의결까지 요구한 것은 후안무치이자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올해는 국가인권위가 설립된 지 10년이 되는 해"라고 강조한 뒤 "이번 징계위의 심의 결과는 한국사회에서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국가인권위, #1인시위, #징계위, #현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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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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