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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리쿠젠타카타의 해질녘 전경.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폐허가 된 리쿠젠타카타의 해질녘 전경.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 류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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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는 울트라맨이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나는 후쿠시마 공항 로비에 서 있는 울트라맨을 보자마자 '왜 후쿠시마를 지키지 못했느냐'고 원망했다. - 2011년 3월 14일 후쿠시마 공항.

어떤 말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중소도시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군데군데 뒤집혀 있는 차량들, 지붕만 남아 논바닥에 자리를 틀고 앉은 집들이 간간히 보이고, 그나마 형체를 갖춘 집은 열채도 안 된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지옥이다. 삶 저편의 세상이 있다고 믿어 본 적은 없지만,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이 세상이야말로 지옥이다. 현지 소식에 따르면 이 도시에는 5개의 마을이 있었고, 그 마을에서 살던 1만여 명의 사람들이 지금 실종된 상태라고 했다. -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류승일 저, 전나무숲 펴냄)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열도를 덮친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 참사 현장을 기록한 책이다. 위의 기록은 이 책에 나오는 것들이다.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겉그림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겉그림
ⓒ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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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때 외신사 사진 기자 및 인터넷뉴스, 시사주간지 등의 매체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하며 국·내외 크고 작은 사건 사고 현장을 취재한 사진작가 류승일씨.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사고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는 그는,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 직후 교통과 통신시설이 거의 마비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이 쉽지 않았던 일본 대지진 현장 그 참상 속속들을 들려준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참사 현장은 3월 14일부터 3월 29일까지 약 보름 동안.

책은 방사능 누출 공포로 어떻게든 후쿠시마를 탈출하려고 기약 없는 비행편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초조한 후쿠시마 공항의 다양한 상황을 시작으로 후쿠시마 원전과 근접한 센다이 거리의 스산함, 쓰나미로 초토화 된 미나미산리쿠와 주민 1만여 명이 일시에 사라진 라쿠젠타카타의 지옥을 방불케 하는 풍경, 임시대피소의 사람들, 일본 자위대 및 경찰 소방대원들의 구조 현장, 자신들이 살았던 집에서 실종된 가족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등을 사진과 글로 보여준다.

일본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대지진 참사 2개월여가 지난 5월 10일 현재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는 1만 4949명, 실종자 수는 9880명. 사망자의 15%인 2193명은 신원을 확인할 수 지경이란다. 경제적 피해규모는 최대 25조 엔(한화로 약 332조 원)으로 추산하지만, 이는 간접손실과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액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일본 경찰청의 이 발표 이후 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공포는 여전하며 그로 인한 피해 사실이 계속 보도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후쿠시마현 아동의 소변에서 방사성물질인 세슘이 검출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니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정확한 손실 규모를 계산해 낼 수 없다. 다만 천문학적 규모에 달할 것이라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데 이는 단지 일본만의 사정에 불과할까? 일본의 대지진 참사 현장을 방송을 통해 보는 동안 '우리나라에 초강력 지진이 발생한다면?'의 염려를 떨칠 수 없었다. 이는 단지 나만의 염려일까?

일본 후쿠시마 참사 현장, 보름간의 기록 담은 책

지진으로 파괴된 철로 위에서 바라본 미나미산리쿠 지역. 쓰나미로 초토화된 도시를 본 순간 아무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2011년 3월 17일 미나미산리쿠(책속 설명)
 지진으로 파괴된 철로 위에서 바라본 미나미산리쿠 지역. 쓰나미로 초토화된 도시를 본 순간 아무 말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2011년 3월 17일 미나미산리쿠(책속 설명)
ⓒ 류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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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인들은 우리에게 재난·재해 대비에 철저한 사람들로 알려졌다. 건물을 지을 때 내진 설계를 한다거나, 쓰나미를 막을 용도로 제방을 쌓는다거나, 지진 발생 시의 대피 요령을 어릴 적부터 훈련하고 그 매뉴얼을 숙지시키는 등, 일본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진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지라 우리는 종종 재난·재해 대비에 관한한, 특히 지진발생시 일본의 대비책 사례를 들곤 했다. 하지만 자연은 일본의 이와 같은 오랜 노력들을 한순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100년 만에 발생한 엄청난 규모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 그저 지푸라기처럼 나약한 인간임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여지없이 느끼게 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가장 가까운 나라임에도 그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의 잦은 지진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지켜보기만 해왔다. 우린 아직 내진 설계가 된 건물도 몇 되지 않고 인식도 거의 없다. 지진이나 쓰나미에 대한 공포는 있지만, 지진에 대비한 훈련이나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토록 철저하게 대비했던 일본도 한순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는데,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에게 일본과 같은 일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자연재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책은 끊임없이 묻는다. 

폐허더미를 서성이는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물건은 사진, 앨범, 홈 비디오테이프 같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이었다. 통상적으로 난민들은 실생활에 쓸만한 물건을 찾는데 이곳 사람들은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주로 찾고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의 삶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신들의 지나온 삶과 추억에 더 가치를 두는 듯했다.

그들이 사진, 앨범, 홈 비디오테이프에 집착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쓰나미가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든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지만 여전히 실종된 가족의 생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생존해 있거나, 사망한 가족을 만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닷물에 절어 잉크가 번질 대로 번진 사진 한 장이라도 찾아서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폐허더미나 파헤치지도 들춰보지도 않았다. 자신의 집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그저 주변만 서성였다.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에서

임시 대피소 벽마다 가족들을 찾는 쪽지들로 가득하다. 생존자들은 틈이 날 때마다 쪽지에 적힌 이름들을 애타게 찾아보고 있었다. 2011년 3월 20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임시 대피소 벽마다 가족들을 찾는 쪽지들로 가득하다. 생존자들은 틈이 날 때마다 쪽지에 적힌 이름들을 애타게 찾아보고 있었다. 2011년 3월 20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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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대피소의 전경.지역 구호단체에서 기증한 대형 텐트가 이색적이다. 2011년 3월 22일 오후나토(책속 설명)
 임시 대피소의 전경.지역 구호단체에서 기증한 대형 텐트가 이색적이다. 2011년 3월 22일 오후나토(책속 설명)
ⓒ 류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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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마다 대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책속 가족들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찾아 그 숨결을 느끼고 간직하고자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폐허를 헤매는 일본 사람들을 보며 내가 다시 절실하게 느끼고 새삼 확인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오늘 내게 닿아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멍한 눈으로 어린 아들과 앉아 있는 어떤 남자의 모습과 갓 태어난 아기를 업고 자신들이 살던 집을 찾아 헤매는 젊은 부부의 모습 등,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속 사진 한 장 한 장은 아프고 쓰리며 절망스럽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 대지진 그 폐허만을 전하지 않는다. 폐허 속 절망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와 사랑 등을 함께 전한다. 그래서 이 책의 기록들은 소중하다.

사건사고 현장을 촬영하다보면 위험이 뒤따르지만, 항상 그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현장에는 척박한 사건 사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들의 고통이 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끈이 보인다. 사진은 그 모든 것을 담아 전달하는 도구이자 생명이다."

일본 동북부의 쓰나미 피해 현장으로 달려간 것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그 곳에서 자연의 위력과 인간의 무기력함을 보았고, 가족의 정을 보았으며, 다시 일어서려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를 보았다고 한다. 그 모든 것을 담은 사진들과 취재 일지를 엮어 만든 이 책은 그래서 더더욱 의미가 깊다.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저자 프로필 중에서

때로는 쵸코파이 하나로 하루를 버티며, 때로는 질펀하게 물이 스며드는 천막에서 오한을 견뎌내며, 때로는 일본 자위대 등에 저지 당하며 기록한 사진들이란다.

일본 대지진 직후 얼마간 어느 방송을 막론하고 같은 화면, 같은 내용들이 중복 보도되곤 했다. 이 책은 방송을 통해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일본 동북부 대지진 그 현장들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방송을 보면서 한편 궁금했던 시신 수습 그 현장 사진들 중 일부를 덧붙인다.

기자들에게 시신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시신이 위치한 자리를 이불로 덮어둔 채 발굴대원들을 기다리는 수색대원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기자들에게 시신을 보이지 않기 위해 시신이 위치한 자리를 이불로 덮어둔 채 발굴대원들을 기다리는 수색대원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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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이 수습되는 동안 시신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위해 파란 천막으로 현장을 가리는 경찰과 소방구조대원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시신이 수습되는 동안 시신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위해 파란 천막으로 현장을 가리는 경찰과 소방구조대원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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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에 묻혔거나 고립된 주민들을 수색하는 소방구조대원들. 그들 너머로 시신을 수습하는 구조대의 모습이 보인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폐허 속에 묻혔거나 고립된 주민들을 수색하는 소방구조대원들. 그들 너머로 시신을 수습하는 구조대의 모습이 보인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 류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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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의 발굴과 수습이 끝난 후 시신의 최초 발견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있는 소방구조대원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시신의 발굴과 수습이 끝난 후 시신의 최초 발견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있는 소방구조대원들. 2011년 3월 18일 라쿠젠타카타(책속 설명)
ⓒ 류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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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글과 사진:류승일|전나무숲|2011-06-01| 정가 :13,800원



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 일본 동북부 대지진, 그 생생한 현장기록

류승일 지음, 전나무숲(2011)


태그:#일본 대지진(쓰나미), #일본 동북부, #재난 재해, #후쿠시마 원전, #전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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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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