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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사회 여성의 지위는 낮아도 법제도적으로는 차별 없이 보호되고 있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들, 특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매일같이 결혼에서부터 임신·출산·육아까지 전 과정에 걸쳐 그야말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국의 15개의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고용평등상담실에는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고 있는 차별 상담이 끊임없다. 전국 15개 고용평등상담실의 연대체인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가 2011년 1월부터 2011년 5월까지(5월 31일 기준) 임신·출산·양육을 이유로 한 차별 상담은 748건이었다. 상담건수만 보더라도 '저출산이 문제이니 출산을 장려해야 한다!'는 정부의 언설이 얼마나 공허하고 낯 뜨거운지 실감하게 된다.

임신을 알리는 순간(또는 알리지 않고 있다가 배가 불러 알려지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언어폭력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공공기관인 경북의 의료기관 ○○원에서 근무하는 여성노동자는 임신사실을 알리고 나서부터 팀장으로부터 "거추장스러운 존재", "임신을 하면 유세나 부리고 동료들에게 피해나 준다" 는 등 숱한 언어폭력을 당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출혈이 심해 병가를 내고 싶었지만 팀장은 "임신하고 그 정도 출혈은 누구나 있는 것 아니냐"며 출근을 강요했고 결국 유산하고 말았다. 또 다른 사업장에서는 임산부에게 노동강도가 높은 일을 시킬 수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 근로기준법에는 임산부의 요구가 있는 경우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쉬운 종류의 근로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런 "보호"를 기대할 수 있기는커녕 임신을 이유로 한 폭언과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임산부가 아니라면 이러한 부당한 차별과 폭력에 힘을 내어 싸워볼 수도 있겠으나 임산부들은 본인이 아니라 태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이러한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기업은 이러한 임산부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하여 부당한 압박을 '유효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산전후휴가 종료 후 복귀하니 엉뚱한 부서로 발령?

법에 정해진 권리로서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은 어떤가. 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당연한 듯이 "우리 회사는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나가라"는 말이 돌아온다. 다른 건 몰라도 법에 정한 것은 잘 지킨다고 생각되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서울노동자회에서 상담한 한 여성노동자는 지자체에서 출자한 어느 지방공기업은 출산휴가 후 복귀한 여성노동자들을 정리해고 대상자로 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도 이러할진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는 오죽할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불안한 고용형태 때문에 법으로 정한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조차 어렵다. 용역회사에 근무하던 임산부 여성은 사용사업주가 해고를 요청하여 해고위기에 처하고, 매년 아무 일 없이 재계약되던 계약직 노동자는 임신을 알리고 출산휴가를 쓸 거라고 했더니 근로계약 만료를 통보받는다. 학교의 기간제교사가 임신을 하자 학교장이 출산휴가는 없다, 방학 때까지는 봐줄테니 개인 사정으로 사직서 쓰고 나가라고 한다.

이 위기를 잘 넘기고 휴가를 끝내고 복귀하면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린다. 복귀하려고 했더니 사무직이었던 노동자를 웨이트리스로 발령하거나, 출산하고 났으니 힘들지 않겠냐며 팀장이었던 직위를 해제하고 다른 사람을 배치하거나, 같이 일하던 팀원들은 전부 다른 곳으로 옮기고 혼자만 남기고 업무를 주지 않거나 하는 식으로 그야말로 본인이 알아서 나가떨어지게 한다.

이렇게 나가 떨어져 결국 타의에 의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음에도 회사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이직사유를 인정해주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육아휴직을 받고 계속 일하기는커녕 타의에 의해 쫓겨나고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역경을 모두 이겨내고 어렵게 결혼하고 어렵게 임산부 시절을 거쳐 어렵게 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받고 복귀하면, 이번에는 날벼락같은 연차휴가가 하나도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똑같은 10년차 노동자인데 누구는 20개씩 연차휴가를 다 쓰는데, 육아휴직을 갔다왔다고 아이 병원에 갈 연차가 하나도 없다며 울분을 토하는 여성노동자도 있었다.

인식의 변화없는 말들은 모두 면피용 선전일 뿐

전국고용평등상담실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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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연차유급휴가를 그 해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쉼'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연차유급휴가를 전년도 노동의 '보상'으로 인식하는 노동부의 행정지침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노동자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기도 버거운데 연차휴가까지 삭감되어 발만 동동 구르게 되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문제는 절대 '엄마''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아이 낳아 기르며 직장생활하는 여성들은 그야말로 원더우먼이라도 돼야 하는 것인가? 그냥 모두들 아이 낳고 기르며 사는 것을 평범하게 여기는 것처럼, 딱 그만큼만 평범하게 살게 해 줄 수는 없는 걸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평범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임신·출산을 이유로 사직을 종용하거나, 관행적으로 반복하던 재계약을 임신·출산을 이유로 거부하는 것 등 임신출산을 이유로 한 불이익을 명확한 성차별로 규정하고 성차별금지법제의 적극적인 적용을 통해 규제하여야 한다. 노동부는 더 이상 사직종용을 받으며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임산부 여성노동자에게 '해고되면 부당해고구제 신청하세요'라며 성차별적 관행을 방기해서는 안된다.

또한 비정규직의 경우 산전후휴가기간 90일 중에 계약만료 시점이 오는 경우 계약만료와 관계없이 산전후휴가만이라도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것도 고통스러운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법률이 보장한 산전후휴가의 권리까지 침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사례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기업의 임신출산에 관한 인식은 거의 치외법권이다. 마치 법이 없는 상태와 같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최대한 적극적으로 임신출산관련 법령과 임신출산자에 대한 권리보호와 위반시 처벌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도 여성과 똑같이 육아에 참여하고 그러한 참여가 자식가진 부모라면 남녀 상관없이 당연한 것이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하루빨리 형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없이는 저출산 문제 해결이니 일가정양립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육아를 방기한 자들의 면피용 선전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영희 기자는 노무사입니다.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는 이 땅의 일하는 여성이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상담활동', '대응활동'과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입사부터 퇴직까지 성차별, 성희롱 등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겪는 바로 그 문제를 상담하고 있습니다. 전국 고용평등상담실 네트워크 http://kwwnet.org/equaline/



태그:#워킹맘, #고용평당상담실, #노동, #산전후휴가,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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