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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집중이수제'를 아십니까?"

'집중이수제'는 2009개정교육과정의 핵심운영방안이다. 2009개정교육과정이 도입되면서 학교현장의 반응은 다양하다.

"초중고생들이 대학생인가?"
"그 많은 분량의 지식을 한 학기에 소화해야 한다니!"
"독일의 발도르프학교*처럼 교과서 없이 학습자 스스로 주도하는 학습환경도 아니지 않는가?"
"하루 종일 같은 과목을 2, 3시간씩 책상머리에 앉아 지식만 넣고 있으란 말인가?"

볼멘소리를 한 두 곳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신음소리는 더 크다.

"지겨워죽겠어요! 똑같은 과목이 하루에 세네 시간씩 들었어요!"
"배우는 양이 많으니 공부해야 할 양이 보통이 아니예요. 시험공부를 못하겠어요."
"체육시간이 없어졌어요. 보장해 주세요."
"학습동기와 의욕이 더 생기지 않아요."

교육과정을 손대야 하는 시기 앞에서 교무실은 여러모로 긴장이 팽팽하다. 새롭게 운영해야 할 학년의 교육과정을 검토하여 새 학년들에게 진로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다음 학년도 교사정원문제를 신청하는 것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수업부담 축소라면서 제시한 한 학기당 8과목 제한은 교육과정운영에서 갈등의 진앙지가 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2009개정교육과정방향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학생이 한 학기에 배우는 과목수를 줄여 학습 부담은 줄여주고 학습 효과는 높여준다.'
둘째, '교과 외에도 다양하고 실질적인 '창의적 체험활동'을 전개하여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창의인재로 키운다.'
셋째, '고교생의 시초교육을 강화하여 진로·적성문제에 적합한 핵심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개선했다.'
넷째, '학교가 과목을 가르치는 시기와 시간수를 결정하게 하여 학교별로 특색 있고 다양한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교과부의 주장은 진정 충정어린 교육적 고민을 담은 교육과정 개정방향이리라. 하지만 현실은 과연 '수업부담을 줄이고' '학습효과를 높이고' '창의적 체험활동의 전개'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이상실현은 현실 안에서 싹트지 않는가. 현실을 보라. 불만스런 소리가 봇몰처럼 터져나오는 것을.

여전히 대학입시에 매달리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 교과수업총량은 조정되지 않은 채 과목 수만 감소시킨 현실, 학생 스스로 자율적인 문제해결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학생자치 현실, 학생들의 수요와 교사수급의 불균형. 학교 시스템은 여전히 7차 교육과정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초중등학생들은 집중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기 어려운 시기다. 어찌 홀로 지식습득이 가능할 것인가. 게다가 양적인 지식습득이 최대 목표라고 생각하는 현실에서 체험활동은 힘을 받을 수 없다. 자기주도 학습요령이 체득되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는 1년이나 2년 동안 단계적인 방향에서 지속적으로 배워야할 과목들이 더 많다.

더더욱 우스꽝스런 일은 음악, 미술, 체육마저 한 학기에 집중해서 끝내는 것이니 문제가 아니겠는가. 물론 국,영,수는 그렇지 않다. 하루에도 1,2시간 수업이 더 늘었고 그 증가배경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비중이 크다는 명분 앞에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현실이다.

교육과정이 이렇다 보니 우스꽝스런 일이 한두 가지 아니다. 얼마 전 학교 체육대회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체육시간 배정문제에 대한 논란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보여주었다.

잘 알다시피 한창 때의 아이들, 특히 남학생들은 틈만 나면 공을 차고 운동을 즐긴다. 그런 만큼 학교의 다른 행사보다도 체육대회는 모든 학생들이 열광한다. 그런데 교육과정 개편으로 인해 고3 아이들은 체육시간이 없기에 체육대회 예선전을 치룰 시간확보가 안 된 것이다. 평상시에는 체육정규수업시간을 조정하여 예선전을 치렀지만 말이다.

3학년만 체육대회를 하지 말자는 의견까지 있었다. 아이들은 실망이 아니라 절망의 눈빛으로 현실에 분노했다. 결국 일과시간이 끝나고 길어진 햇살을 이용하여 예선전을 치르는 것으로 겨우 해결책을 찾았지만 만족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2009개정교육과정의 학교적용은 많은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학교마다 몸살을 앓고 있다.

예컨대 전학생은 교육과정의 차이로 인해 이론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학기 중에는 전학을 갈 수 없다. 그 말 많던 예상들이 여기저기 현실로 나타난 사례이다. 교사들도 당황하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과서가 6개월 전에 배포되어 수업준비가 되어 학기가 시작된 것도 아니다. 그뿐이랴. 8과목으로 매 학기 제한되면서 첫 번째 희생을 요구하는 과목들은 탐구영역이거나 음악, 미술, 체육(음미체)영역이다. 그러니 인성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국,영,수 교사들은 수업부담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이래저래 음,미,체 교사들은 더욱 슬프기만 하다. 

음악 하나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던 어느 음악교사의 푸념이 귀전을 맴돈다. "지금 이 땅의 교육은 의사나 판검사만 시킬 요량이다." "너, 노래 좋아하냐? 1년 노래 부를 것을 노래방 가서 6개월치 실컷 불러라. 그리고 너 6개월은 노래를 부르지 말아라"는 황당한 논리가 되고 말았다는 그의 지적이 슬픈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학교현장에서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반문이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심성을 가꾸지 않고 어찌 교육을 완결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학입시 위주의 학습문화가 종식되지 않는 채 1,2년치를 한 학기에 끝내는 집중이수제로 교육의 지속적 성과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학교권한을 강화한다는 말은 허울뿐이다. 교육과정의 갈등을 일선학교에 위임한 꼴이다."

2009개정교육과정은 종합적인 차원에서 재차 점검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으리라.

* 1919년 독일의 에밀 몰트(Emil Molt)가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철학에 감명 받아 공장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면서 공장이름을 따서 발도르프 학교가 되었다. 교과서 없이 수업이 진행되는 개방적 대안학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의 소리'에 실렸던 내용을 재작성하여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2009개정교육과정, #집중이수제, #학교교육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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