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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세희 선생.
 소설가 조세희 선생.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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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그는 '소설가'보다 '거리의 기록자'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원고지 더미에 묻히지 않고 거리로 나섰고, '펜'보다는 '카메라'를 드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2005년 12월 이후 거리에서조차 그를 볼 수 없었다. "5가지 병"을 앓게 되면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는 아픈 몸인데도 '꼭 참석해야 할 행사'에는 나와 여전히 남아 있는 '난쏘공'의 현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곤 한다. 

기자가 그를 최근 만난 건 지난 2008년 12월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운영하는 '마들연구소' 특강에서였다. 특강 말미에 그는 이런 말로 우리 시대의 진실을 날카롭게 일깨웠다.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다른 하나는 바보다."

"가난한 식당의 백구가 우는 게 슬펐다"

그로부터 2년 반 만인 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소설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씨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행사에서였다. 그는 최근 "가난한 식당"에서 보았던 백구(흰둥이개) 얘기를 꺼내들었다.

"밥을 먹고 있는데 두 마리 개가 짖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왜 저렇게 짖는 걸까?'라고 묻길래, 내가 '통역해줄까?' 하면서 '배고파 밥줘라는 뜻이야'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개가 그렇게 '멍멍' 짖어대는데도 (주인이) 밥을 안줬다. 식당 건너편에 있던 개도 '멍멍' 짖어댔다. 내가 '나도 안먹었는데, 너도 안먹었어?라는 뜻이야'라고 얘기해줬다."

'가난한 식당의 주인'이 '배고픈 개'를 외면하는 풍경이다. 이는 약자들끼리조차 서로 연대하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과 겹쳐졌다. 오창익 인권연대 국장은 "연대의 감수성이 낮아진 걸 꼬집은 것 같다"고 풀이했다.

조씨는 "요즘에는 자다가 눈물이 나온다"며 "한국 현실에도 울고, 이루지 못한 일이 많아서 운다"고 말했다.

"난쏘공을 써놓고 가만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세상은) 엉뚱한 곳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숨막히고 몸도 나빠졌다.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가난한 식당의) 백구가 우는 게 슬펐다. 300년 전 동학 할아버지들은 싸우고 피해 다니면서도 그 땅 민중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민중들을 위해 개 한마리도 잡아먹지 않았다. 개는 인간하고 가장 가깝다."

물론 난쏘공의 현실을 바꾸지 못한 데는 '낮아진 연대의 감수성'에도 있지만, '성장주의 신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성장주의 신화는 과거 박정희 시대부터 현재 이명박 시대까지를 관통하고 있다.

"박정희 때도 '곧 선진국 된다'고 했다.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전두환, 노태우 때도 그랬다.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사람마다 '가장 뛰어난 국가, 선두에 서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허깨비 같은 소리를 해댔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도 이상한 소리를 한다. 서양에서 500년, 600년 동안 해온 것을 (지금 대통령은)  단숨에 하려고 한다."

그렇게 "선진국 진입"을 외쳤고, "악에 굴복한 제3세계의 아버지"들이 열심히 살아왔건만 한국은 지금 '2세계'도 아니고, '1세계'는 더더욱 아니고, 이제 겨우 '2.5세계'에 다다랐다는 것이 조씨의 생각이다.

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기념행사.
 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인권연대 창립 12주년 기념행사.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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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세대가 무얼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진행하는 '4대강 사업'도 "단숨에 하려"는 것 중 하나다. 조씨는 "토건사업 때문에 죽겠어"라면서 '4대강 사업'을 입에 올렸다.

"박정희의 도덕이나 윤리를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자본(가)의 윤리도 믿을 수 없다. 그들과 일하는 관리들도 믿을 수 없다. 4대강에 아무 일 없다? 다른 나라에서 30년 하는 4대강 사업을 단숨에 하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왜 그렇게 조급한가? 외국도 못나갔나 보다. (서양에서는) 건축물 하나가, 다리 하나가 몇백년 유지되는데…. 그 무식한 이에게 끌려 다니고…. 우리가 엉망진창이 됐다."

이어 조씨는 "이런 사람(지도자)과 엉망진창인 민중 속에서 좋은 일이 갑자기 생길 수가 있겠냐?라고 물었다. '선진국 담론'을 유포해온 지도자뿐만 아니라 "엉망진창인 민중"도 오랫동안 '성장주의 신화'를 지속해온 한 축이라는 지적으로 들렸다.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 동족을 학살한 원흉들에게 인사하러 가고, 전․노를 위해 한해 15억원을 쓰고, 독재자의 딸이 뭔가 뭔가 되려고 하고. (도대체 이런 속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나?"

조씨는 이날 "엉망진창"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한국의 미래는 답답하다"고 말했다. "지난 100년은 악인들의 세대"라고 규정한 그는 "다음 100년의 좋은 성장을 위해서 '적들'과 빨리 헤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의 말을 상기시켰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한다. 잘못된 일과 불의, 그 앞에서 저질러진 범죄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 악을 저지하는 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그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

연대하지 못해 일어난 불행은 그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얘기다. 조씨는 "우리 세대가 싸우지 못했고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을 겪지 못했다"며 "(그래서) 범죄자들이 감옥에도 안가고 쌓아놓은 부도 내놓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조씨는 "대학생들의 지적 능력이 퇴보했고 (진지한) 고민도 하지 않는다"고 걱정하면서 젊은 층의 냉소주의, 비관주의를 경계했다. 그는 "나는 독재자들이 계속 태어나고 그들이 지배하는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비관주의자가 됐는데) 비관주의자는 나 한사람으로 충분하다"며 "냉소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조씨는 "냉소주의는 나쁜 정치인이나 무식한 정치인이 가장 좋아하는 얘기"라며 "20대가 (냉소주의자나 비관주의자 같은) 엉망진창이 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요즘 유행하는 것이 '분노하라'다. 그런데 나는 힘을 다 잃어버려 분노할 수가 없다. 분노하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 공부가 필요하다. (특히) 아버지 세대가 무얼 못했는지 알아야 한다."

발언대를 내려온 조씨는 기자가 '냉소주의자가 되지 말라'는 충고의 의미를 묻자 "(한진중) 희망버스가 가는 걸 두고 '니들 잘났어'라고 하는 것"이라고 답한 뒤 "노동 얘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시간 때문에) 못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태그:#조세희, #인권연대, #오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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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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