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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후 2시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임병석 C&그룹 회장은 여전히 '사업가'의 모습이었다. 지난 27일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위축될 수 있는데도 그는 면회 온 직원들에게 사업지시를 하느라 바빴다. 자신이 지시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사정없이 호통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임 회장은 지난 27일 자신이 작성한 옥중메모를 바탕으로 "C&그룹 수사는 박지원·정두언·이성헌 의원을 겨냥했다"고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었고, 다음날(28일) 정치권에서 벌어진 '정치인 표적수사 논란'까지도 알고 있었다. 날마다 접견오는 변호사를 통해 '바깥소식'을 꼼꼼하게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정관계 로비가 안나오니까 기업수사로 전환했다"

기자는 임 회장이 면회실에서 직원들과 대화하는 중간중간에 '정치인 표적수사 의혹'과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이미 그는 지난 24일 작성한 '옥중메모'에서 이렇게 적었다. 

"(대검) 중수부는 박지원 장관과 민주당, 친이계 소장파(정두언 의원), 친박계 의원(이성헌 의원) 등을 겨냥한 것으로 느꼈음. 이것은 확실함."

임 회장은 이날 '구치소 인터뷰'에서 "대검 중수부에서 '박지원, 정두언, 이성헌' 이름을 직접 거론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수사를 받았다"며 "그쪽으로 불라고 유도했고, 그런 암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임 회장은 '정치인 표적수사'를 진행한 핵심인물로 대검 중수부의 Y검사를 지목했다. Y검사는 지난 2006년 대검 중수부에서 '김재록 게이트'와 관련해 임 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직접 조사한 인물이다. 그런 인연 때문에 대검쪽에서는 "대한민국 검사 중 임 회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Y검사"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임 회장은 "(정치인들에게 돈 준 사실을 불라고 한 것은) Y검사가 다 한 것"이라며 "6일간 조사해서 (정관계 로비사실이) 안 나오자 기업수사로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 회장은 "Y검사가 '내가 윤상림을 17번(17개의 공소사실로) 기소했다, 정몽구 회장은 10명 불었고 박연차 회장은 20명 불었다, 나는 장가도 안가고 수사할 거다'라고 나를 압박했다"며 "기업인들은 대부분 정치인들한테 돈 준 것 불고 나갔으니 나한테도 불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기업인들이 정치인들에게 돈 뿌린 것을 불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내 경우에도 (정관계 로비를 불지 않으니까) 기업수사로 전환해서 (아내에게 매달) 200만원 준 것까지 다 털었다"고 토로했다.

임 회장은 "내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에게 매달 1만5000원 후원했다는 것이 언론에 났던데 그게 기업인의 책무라고 생각해 정치인에게 10만 원, 20만 원 정도 후원해왔다"며 "하지만 법의 한도를 넘어선 돈(불법 정치자금)을 정치인들에게 건넨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검 중수부는 임 회장과 그 주변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계좌추적을 벌였지만 정관계 로비 흔적을 찾지 못했다. 차명계좌나 비자금 통장 등과 로비와 관련된 '증거들'이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받을 당시 "1억 원의 비자금이라도 발견되면 검찰이 주장하는 모든 혐의를 인정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정관계 로비에 관한 한 '결백'을 강하게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의 거듭된 주장에도 대검 중수부는 "그런 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정관계 로비 수사'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다만 지난 24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대검의 한 관계자가 "지난해 수사 초기 C&그룹의 로비를 들여다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맞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그렇지만 임 회장측이 '무슨 정치인에 대해 묻는다'고 쇼를 하기에 검사들에게 '전혀 묻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정치인도 아닌 내가 왜 '중수부 폐지'를 얘기하겠나?"

임 회장은 2006년과 2010년 두 차례 대검 중수부에서 수사를 받았다. 참고인이었던 2006년 수사에서는 C&해운 선박매각대금 횡령, C&우방과 C&우방랜드 주식 고가매수 등이 드러났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는 그로부터 "대출청탁 대가로 김재록씨에게 10억여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내는 대가로 C&그룹의 범죄 혐의를 덮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 중수부와 임 회장이 '플리바게닝'을 했다는 것이다. '플리바게닝'이란 수사에 협조한 범죄자의 기소를 면제해주거나 형을 줄여주는 '유죄협상제도'를 말한다. 미국의 형사재판 절차에 있는 제도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2006년 수사' 당시 플리바게닝을 통해 덮었던 C&해운 선박매각대금 횡령건 등을 다시 조사한 뒤 공소사실에도 포함시켰다.

임 회장은 지난 24일자 옥중메모에서 "이번 (대검 중수부 소속 검사인) Y나 P에게 수사받을 당시 '정관계 로비를 불지 않으면 2006년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내가 '이것은 그 당시 이미 플리바게닝한 사안이므로 기소하면 안된다'고 누차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임 회장은 "당시 C&해운 횡령 등은 검찰과 플리바게닝을 했는데 (이번에) 정관계 로비가 안나오니까 (2006년건을) 다시 기소했다"며 "도대체 누가 중수부를 믿고 수사받을 수 있겠나?"라고 목청을 높였다.  

특히 임 회장은 지난 28일 아들과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상은 항상 사실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현실은 냉혹하고 돈과 권력에 (의해) 움직인다. 아빠가 그런 것을 의식 안 하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많이 느끼고 있다."

임 회장은 "내 수사를 들여다 보면 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며 "내가 왜 정치인도 아닌데 대검 중수부 폐지 등 검찰개혁을 얘기하는지 잘 헤아려 달라"고 말했다. 


태그:#임병석, #C&그룹, #대검 중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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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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