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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지급된 성과급
▲ 학교별 차등 성과급 지급표 나에게 지급된 성과급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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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매년 교사들에게 지급되는 차등 성과급을 받고 마음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일부 교사 단체들은 반납을 하는 등 집단적 움직임이 있었으나 교사들의 특성상 그 일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그나마 아직 학교 현장에서는 그 돈을 공평하게 분배해야 된다는 인식이 있어 교육청에서는 여러 가지 엄포를 놓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균등분배를 실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와중에 A, B, C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는 자신들의 등급과 그에 따른 돈 액수와 약간의 세금문제 등이 혼선을 빚었지만 큰 문제없이 여러 학교들이 선생님 수로 나눈 금액을 받았다.

우리 교사들은 이 돈을 받으면서 어려운 경제난과 취업난 속에서도 월급 외에 이러한 성과급까지 받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이 돈을 이렇게 등급을 나누어 주는 정부의 생색내기와 차등에 대해 또한 몹시 못마땅해 했다.

더 큰 문제, 학교별 차등 성과급

그런데 이번에는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이제는 같은 학교에 있는 교사들의 합의와 무관하게 학교 별로 차등해서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다. 올해 처음 도입되는 '2011년 학교별성과급 지급계획'에 따르면 각 지역의 학교를 각각 S(30%), A(40%), B(30%)등급으로 나누어 등급에 따라 해당학교 교사에게 각각 43만3250원, 28만8830원, 14만4410원씩 차등지급한다는 것이다.

차등의 근거는 학교평가이고 학교평가의 내부적 근거는 정량평가와 정성평가가 있는데 구체적 내용은 학생 1인당 봉사활동 시간, 방과 후 학교 참여율, 교원 1인당 직무연수 이수 시간,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 대학 진학률, 학교폭력 발생비율 등이 있다.

우리학교는 2010년 기준 A등급을 받아 최고등급인 S등급 학교와는 약 14만원의 차이가 나고, 우리보다 더 못한 학교는 B등급을 받아 우리보다 역시 14만원이 적다. 최고등급이래야 겨우 50만 원도 되지 않는 돈이지만 교사들의 자존심과 학교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되었다.

위 학교평가의 근거기준 중에 과연 교육적 지표는 무엇인가? 학교가 일반 관공서처럼 조직 운영이나 그 일의 성과를 단지 비율로 따질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을 키우고 미래의 희망을 만드는 중차대한 일이라고 모두 입을 모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교사를 등급으로 나누어 돈을 지급했다.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학교의 교육환경과 성과를 몇 %의 수치로 단순 비교하여 나누어 준 학교별 차등 성과급은 분명히 뭔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러한 비교육적, 일방적, 몰아붙이기식의 성과급 문제는 이 제도가 생길 때부터 있었다.

처음에는 교사들의 반납으로 골머리를 앓는가 했더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내 잠잠해지고 이제는 교사단체의 반납 에너지도 거의 떨어진 듯 보인다. 올해도 일부 교사들은 차등분배에 항의하는 뜻으로 반납투쟁을 벌였지만 그 효과나 반향은 크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교육의 본질을 침해하는 정량평가의 문제이다. 전체 중에 누가 얼마나 잘했는가는 그 모집단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농촌학교는 모집단의 질이 도시학교의 모집단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학교를 동일한 기준으로 자르는 것은 교육문제 이전에 현대적 평등의 배분적 정의에 위배된다. 2011학년도부터는 학교 급별(지역별, 규모별)로 세분화하여 성과를 나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교육효과를 수치화하는 것이다.

둘째 정성평가의 문제도 없지 않다. 한 명의 학생을 두고도 평가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정성평가이다. 흔히 말하는 관점과 기준의 차이는 대단히 주관적이어서 그것을 표준화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일반 관공서의 경우, 민원처리의 객관적 지표가 나올 수 있는 데는 민원의 대부분이 단기적 결과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친절도나 응대 공무원의 태도등은 그 민원인의 민원업무 중에만 생기는 일이므로 쉽게 지표화해 낼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교육은 단기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고 짧으면 고등학교의 경우 2년에서 3년, 길게 보면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과정을 거쳐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교육을 백년지대계라 하지 않는가! 지금 수많은 교육적 의제와 담론들, 이를테면 체벌문제, 인성교육문제 등은 모두 그러한 바탕 위에서 설정된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을 단기적으로 몇 사람의 관료가 단 며칠 동안 평가해 낼 수 있는 문제란 말인가? 설사 평가할 수 있다고 해도 그 평가를 토대로 이러한 차등을 지우는 만용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대안

백번 양보해서 평가를 회피할 생각은 없다. 신자유주의 교육의 첨단에 있는 현재의 우리 상황에서 이러한 평가의 기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평가를 하라! 평가를 하고 차등을 두라! 그러나 그 차등에 대한 결과를 취합해 그 결과를 분석하고 부족한 학교, 어려운 학교, 개선이 더딘 학교에, 진정 교육적 효과를 생각한다면 지금 학교별로 푼돈처럼 나눠주는 그 돈을 모아 교육적 지원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교사 개인별 차등 성과급도 차라리 이런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이 전체 교육발전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고등학교에 한정된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농촌의 아이들과 도시 빈민층의 아이들 중 일부는 학비 조달과 교육여건의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대학진학을 해도 등록금과 생활비에 대학의 본래 목적과는 먼 아르바이트에 시달리고, 그 결과 취업 또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전국의 교사들 중 대부분은 이러한 아이들을 위해 그 재원이 쓰이게 되는 것에 동의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그:#차등 성과급, #학교별 성과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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