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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화재를 계기로 주민들을 내쫓으려는 서울시와 강남구청에 맞서 포이동 주민공동체를 지키려는 눈물겨운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생활근거도 없는 여러 지역으로 주민들을 분산시키려는 당국에 맞서 포이동 마을을 재건하고 다시 삶의 터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지난 25일(토요일) 여름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여러 단체들이 포이동에 모였다. 사회당, 행동하는 의사회, 전국노동자회를 중심으로는 하는 사람연대와 새로운 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새노추) 등 30여 명이 참여했다. 망루와 골목 천막에서 임시 기거 중인 마을 주민들도 함께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오전 오후에 걸쳐 화재현장을 정리했다. 주민들이 살던 판잣집과 비닐하우스는 처참하게 불에 탔고 온갖 생활도구들은 불에 탄 채 뒤엉켜 있다. 힘없이 내려앉은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가난한 판자촌의 지붕이나 벽으로 사용되었을 법한 양철들이 우그려지고 그을려 있다. 옷걸이에 널려 있었던 옷가지들은 불에 타 엉켜있다.

아이들의 쉼터였던 좁은 방 책꽂이에는 '구룡초등학교'에 다닌 아이들의 타버린 책과 공책이 가지런히 꽂혀있다. 문고집이나 소설책도 보이고 재활용품을 모아 팔아 저축했을 통장들도 불에 탔거나 타다 말았다. 인생의 나침반이었을까? 불에 타다 만 나침반도 주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구룡초등학교' 노트와 주인 잃은 나침판

냉장고는 타고 녹아내렸지만 그 속 김치는 속을 드러낸 채 파리가 달려들고 있다. 고추장, 된장독도 여기 흩어지고 널부러져 있고 마늘 장아찌도  보인다. 아이들이 꿈을 갖고 모았을 돼지저금통은 불에 녹아 동전과 뒤엉켜 있다. 숟가락, 젓가락, 밥그릇, 냄비 등 좁은 부엌에서 검은 재를 뒤집어쓴 채 뒹굴고 있다. 피복이 벗겨진 구릿빛 전기선들이 여기저기 엉켜 있다. 재활용품을 실어 날랐을 소형트럭은 완전히 전소되었고 자전거도 타다 만 채 흉물스럽게 쓰러져 있다. 냉장고, 보일러, 가스통 등 모든 것이 타고 녹아내렸다.

화재 잔해를 중장비를 동원해 한꺼번에 철거하면 매우 손쉬운 일이지만 돈이 될 만한 고철이나 재활용품을 먼저 분류하기로 했다. 보일러나 냉장고 그리고 전기선의 구리나 동은 철보다는 돈이 더 나가는 것이니까 따로 모은다. 양은이나 쇠붙이 등도 각자 분류했다. 무너진 화재잔해 더미에서 보물 찾듯 한다.

빗속 작업이라 먼지는 없었지만 타고 난 잔해들로부터 나오는 냄새도 지독하다. 내리는 비에 녹물도 녹아내린다. 어느 정도 손작업이 끝나고 난 뒤 큰 양철이나 철근 등은 중장비를 빌려와 한 곳으로 모으면서 일차적인 작업이 끝났다. 비가 그치고 돈이 되는 고철을 다 치우고 잔해를 걷어내고 나면 포이동 주민들의 주거 공간 재건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망루와 골목 천막에서 주민들과 반계탕을

점심은 연대단위에서 닭 70마리를 준비했다. 한 쪽에선 오전부터 장작불을 지피며 삼계탕을 준비했다. 연대단위들과 주민들은 반계탕으로 점심을 함께 하며 서로 연대의 정을 나눴다. 한 때나마 푸짐한 공동체 밥상이었다. 골목길 천막이나 3층 망루 전체가 사람 분위기로 시끌벅적이다.

망루 3층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 날 자원봉사 공부방 선생님들과 즐거운 점심을 먹었다. 당국의 강제 이주 방침에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은 망루 1층에서 점심을 함께 했다. 1981년 이래 정부당국에 의해 강제이주당해 재건마을 주민으로 살아 온 모진 30년 세월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양재천 건너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대조되는 이기적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포이동에서 서민정치를

포이동 재건 연대 다음 날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사회당 대회가 열렸다. 이날 포이동 주민대책위원장이 연대사를 위해 찾아왔다. 연단에 올라 인사말을 하던 그녀는 목이 메여 말을 다 이어가지 못한다. 조손가정의 아이들이 길거리를 떠돌지 않도록 보살펴 준 공부방 선생님들, 가난하지만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지 못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무료봉사활동을 펼치는 행동하는 의사들과 철거의 위협이 있을 때 언제나 달려오는 연대단위들이 이 날 당대회에 대부분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나 지방의회에서 항상 떠들어대는 서민정치는 그들만의 말잔치일 뿐 진짜 서민들 특히 빈민들은 억압받고 차별받고 멸시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진정한 진보정치는 이런 현장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주민들을 쫓아내고 아파트 지어 돈 벌겠다는 권력과 자본에 맞서 포이동을 지키는 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


태그:#포이동, #재건마을, #망루, #재활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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