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뱌야흐로 소비자 주권시대입니다. 그러나 예외인 곳도 있죠. 바로 병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 앞에서는 유독 고개를 숙이는 '약자'가 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마이뉴스>와 <건강세상네트워크>는 환자들의 당당한 권리를 찾고자 '대형병원부당이용백서'를 공동기획하였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사례1] 신복순(48, 여, 사망)씨는 십년 전 루프스 진단을 받고, 장기간 아스피린을 복용해왔다. 다리 통증으로 2010년 1월 8일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신씨는 병동으로 옮겨졌지만 계속되는 출혈로 1월 10일 사망했다. 국과수는 아스피린 중단으로 인해 발생한 수술 부위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부검 감정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지병인 루프스로 혈관이 약해져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씨 사건은 형사고소 상태로, 졸지에 엄마를 잃은 두 자매는 원인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사례2] 2009년 부산에 사는 김경숙(가명, 42, 여, 사망)씨는 한 성형외과에서 지방흡입 및 지방주입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수술 부위인 양측 대퇴부에 심한 통증과 함께 오심, 구토 등의 증상을 느꼈고 그 후 수포와 부종도 발생했다. 이같은 증상을 보이던 환자는 수술 다음날 괴사성 근막염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해당 병·의원에서는 김경숙씨를 포함, 3명의 환자가 집단으로 의료사고를 당해 2명은 사망했고 1명은 생명은 건졌으나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했다. 이 역시 사고 원인을 두고 의사 측과의 갈등으로 민·형사 소송 중이다.

[사례3] 산모 박현주씨는 산전 진료를 정기적으로 받다 2007년 8월 22일경 40주 6일째 분만에 들어갔다. 분만실 대기 과정에서 2시간 동안 여러 차례 태아 상태를 알려주는 기계(태아심박동)에서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 보호자들이 여러 차례 이를 알렸으나, 간호사는 기계가 그럴 수 있다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중에야 산모의 상태를 보러 온 의사가 경고음을 듣고 태아의 상태를 청진기로 확인한 뒤 응급제왕절개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결국 태어난 아이(남, 뇌병변 장애1급)는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간호기록상 태아심박동은 수기로 정상으로만 기재되어 있는 등 현재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형사 소송 중이다.

의료사고를 다룬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중 한 장면.
 의료사고를 다룬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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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행위 중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악결과를 통틀어서 '의료사고'라 한다. 미국의 경우,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연간 19만 5000명이고(2006년 병원 감염관리 정책 토론회 자료)이고, 영국 역시 지난 2004년 병원이나 의사의 실수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4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영국의 독립적인 의료서비스 조사기관 닥터포스트는 밝혔다. 이는 영국에서 4번째로 높은 사망요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사고 전체 규모나 상황을 알 수 있는 통계도 없고 이를 조사할 수 있는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 고작 몇몇 논문이나 학회 발표를 통해서만 간간이 예측된 통계나 일부 분야에 대한 자료가 있을 뿐이다.

2010년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의 '환자안전(patient safety)'이라는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의료사고로 인한 사망자수는 연간 1만~2만7000명에 이르고 이중 의료과오로 인한 사망자수는 4500~1만 명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여 년 전인 1989년, 의료분쟁의 합리적 해결을 위해 처음으로 가칭 '의료피해구제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그 후 여러 번의 공청회와 법안 상정이 이뤄졌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다가 결국 지난 3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2012년 4월 이후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 피해자는 120일 이내에 보상받을 길이 생길 전망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우선 특수법인으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고, 조정중재원에 의료분쟁조정위원회와 의료사고 감정단을 두어 의료분쟁을 조정하거나 중재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 수년간 의료시민단체들이 바란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법안의 주요 문제점 5가지를 짚어본다.

핵심 알맹이 빠진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입증책임은?

언제라도 누구나 닥칠 수 있는 의료사고. 사진은 MBC 드라마 <하얀거탑>에서의 의료소송 재판 장면.
 언제라도 누구나 닥칠 수 있는 의료사고. 사진은 MBC 드라마 <하얀거탑>에서의 의료소송 재판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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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피해구제를 담보할 수 있는 입증책임전환 규정을 도입하지 않았다.

의료사고는 과실 유무에 대한 평가가 매우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실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진료기록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료기록은 의료사고 당사자인 의료인들에 의해 작성되고 보관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나 가족이 수술실에서의 수술 상황이나 수술 기술 문제, 또 감염이 어떻게 어떤 경로로 이뤄졌는지를 입증하고,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여 의사 혹은 병원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기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 민법은 어떤 손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피해자가 손해본 사실과 상대의 과실, 피해 정도를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대의 과실과 피해 정도를 피해자가 입증해야만 과실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과실책임주의).

물론 현대로 오면서 전문분야가 발달하고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들이 많이 생기는 특수 영역에 대해서는 피해자나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 입증의 책임정도를 대폭 줄여주거나(입증완화) 오히려 반대로 가해자 또는 상대에게 과실 없음을 입증하도록(입증책임 전환) 하고 있다. 즉, 과실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과실이 인정되는 것.

의료사고의 경우에도, 의료가 특수한 영역임을 고려해 의료인 자신이 무과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것만이 현재 의료인과 환자의 불균형적인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는 시민·사회단체가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오던 바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인센티브적인 규정인 형사특례만을 받아들이고 입증책임전환규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의료법 상 의료심사조정위원회는 각 시도에 7~10인의 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30년간 방대하게 운영됐으나, 결국 아무런 실적없이 사문화되어 대안으로 이 법이 제안된 것이다. 이는 곧 감정부의 구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특정 직역(의료인)에 대한 예외적인 형사특례를 적용했다.

형사처벌 특례 & 무과실 사고에 대한 국가보상

「형법」제 268조의 죄 중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범한 보건의료인에 대하여는 제36조 제3항에 따른 조정이 성립하거나 제 37조 제2항에 따라 조정절차 중 합의로 조정조서가 작성된 경우, 피해자의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 또는 불치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무과실에 대한 국가 보상은 의료인이 충분한 주의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고에 대하여 환자 측이 입은 손실을 일정 범위에서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하는데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를 대상으로 추진된다.

의료인을 조정에 참여시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의 입법사상 전례가 없는 특정 직역에 대한 예외적인 특례를 인정했다. 특례를 인정하게 되면 사건 해결에만 주안점을 두거나 의료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규명하지 못한 채 의사에게 면제부만 주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조정 과정을 통한 환자들의 실보상이 안 되고 형식적인 조정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어 피해 구제의 실익과 실효성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인의 위축으로 방어적 의료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과잉검사, 위험환자의 기피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또 그 이익이 모든 국민에게 미치므로 평등권에도 위반되지 않는다며) 형사처벌특례를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진료권이 위축될 정도로 의사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또한 실제 이익이 국민에게 미친다는 것만으로 의사에게만 특례를 인정하는 것은 타 부문과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할 때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국가 형벌권 행사는 국가 존립의 가장 기본적인 권한임에도 특정 직업에 대해서 그 권한을 배제하는 것을 입법권의 범위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복지부도 신중처리 요구했는데, 무과실 국가배상제도 밀어붙인 정부

의료사고 내용이 방송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의료사고 내용이 방송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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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제한적인 무과실 국가배상제도를 도입했다.

원칙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 및 과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사고(증거부족 등으로 인해) 중 잠정적으로 산부인과 분만사고에 한하여 도입되는 제도이다. 사고 중 높은 발생 빈도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고 건 당 그 피해 정도가 가장 클 수 있는 산부인과 분만사고에 한하여 무과실 국가배상제도를 우선 적용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를 평가하기위한 위원회는 조정위원회내에 둘 것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조차 잡혀있지 않은 상태이다. 급기야 내년도 시행일로부터 1년 유예한다는 웃지 못할 상황마저 연출됐다.

그러나 이 규정은 이번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복지부조차 무과실(의료인이 충분한 주의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제도가 외국에도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영국이나 스웨덴 등 이미 무과실 보상을 허용한 다른 나라에서도 무과실로의 도피로 인한 재정부담 때문에 아주 제한적인 범위로 한정하고 있다) 신중한 처리를 요구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그 대상이나 범위에 대한 데이터를 하나도 갖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재정이 얼마나 소요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과실 보상을 허용하게 될 경우, 과실을 입증하기 보다는 무과실 보상으로 빠지려는 위험성을 높여 의료사고의 원인과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절차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과실에 대한 책임 규명을 소홀하게 만드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엄청난 재원만 소요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더 큰 문제는 진료과목이나 대상을 제한한 것보다 '보상액'을 제한한 것이다. 산부인과 분만사고(태아 뇌손상)의 경우, 대부분 데이터(검사) 등에 의한 기록이 아닌 의료인 개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고, 기록 양이 적으며, 대부분 분만실이나 수술실 등 밀실에서 사고가 나므로 사실상 진료기록으로 과실여부를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법안대로라면 [사례3]의 경우, 이를 무과실 보상 사고로 분리하여 3000만원~5000만원(지난 23년간 이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의료계가 초기 3000만원을 무과실 보상액 상한선으로 제시하였고, 시민단체들은 이 제도의 폐단을 주장하며 폐기를 주장했다. 이에 의료계가 그 금액을 5000만원으로 올려 상한 금액으로 제시하였기에 이 정도의 보상액수를 산정한 것, 아직 정해진 바는 없음) 한도에서 보상(또는 이를 조정의 전제 조건으로)하고 의사의 형사면책이 전제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과연 이를 보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피해자가 얼마나 될까. 

넷째, 보험체계상의 보상제도가 아닌 대불제도를 도입하였다.

손해배상금 대불제도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가 ①조정이 성립되거나 중재판정이 내려진 경우 또는 조정절차 중 합의로 조정 각서가 작성된 경우, ②소비자기본법 제67조 제3항 따라 조정조서가 작성된 경우, ③법원이 의료인 등에 대하여 금원 지급을 명하는 집행권원을 작성한 경우(다만, 판결은 확정된 경우에 한함)에 해당하나 그에 따른 금원을 지급받지 못한 때에 조정중재원에 대불을 청구할 수 있다.

대불제도는 재정이 어려운 의사나 의료기관의 지불을 조정중재원이 담보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의사나 의료기관이 전적으로 사고에 대한 보상을 책임지는 형태로 의사나 의료기관의 주머니 상태가 고려되어야 하는 상태에서의 보상체계다.

그러나 현재 평균 배상액이 350만원(현재 의료사고로 인한 평균 배상액은 1500만원 정도이나 의사협회 공제회의 평균 배상액은 350만원)에 불과한 의사공제회에 '임의가입'형태로 운영하겠다는 것은 시민·사회단체가 그동안 주장하는 완전한 책임보험(강제가입)과 종합보험(임의가입)에 의한 보상체계를 무력화하고 제도를 훨씬 후퇴시키는 것으로, 이는 곧 운전을 하면서 책임보험이나 종합보험에 들지 않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 의사 위한 법 되지 않으려면

의료사고는 의료행위 중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고, 평생 병원을 가지 않을 수 없는 국민이라면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문제다. 

23년 만에 제정된 이번 피해구제법에는 시민·사회단체가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입증책임전환 규정은 빠지고, 오히려 우리나라에 입법례가 없는 특정 직역(의료인)에 대한 예외적인 형사특례를 적용하고, 산부인과 분만 사고에 한하여 제한적인 무과실 국가배상제도도입 근거를 마련해 두었다.

이 법안에 대해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의료사고 분쟁의 진실를 밝히고 억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여야 하는데, 정부가 외국인 환자 유치 정책을 위해 법률 제정을 밀어붙이면서 의료계의 입장을 대폭 반영한 채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및 시민단체는 이 법과 관련해서 시행일로부터 1년 더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되는 형사특례와 무과실 보상제도 모니터를 통해 법안의 부당성과 불합리성 그리고 의료사고를 통계화 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을 주장할 것이다.

의료사고 피해자나 가족들의 피해보상은 담보되지 않으면서 의사들에게 자칫 민·형사적 책임만 면하게 해주는 "의사를 위한 법"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강태언 기자는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입니다.



태그:#병원이용부당백서, #의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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