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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현충일 황금 연휴를 맞아 출장 반 나들이 반 삼아 처가가 있는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와이프는 연휴 전 비행기표 쌀 때 먼저 내려갔고, 전 3일 금요일 저녁에 내려가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급성 장염이랍니다. 장이 비비 꼬이고 아프기를 이틀. 혼자서 아무것도 못 먹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 마음 아팠는지 장모님은 사위가 내려오면 죽을 끓여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완전 감동.^^

비행기에서 내려, 마중나온 와이프와 손윗처남과 함께 간 곳은 처가가 아니라 '보말잡이' 현장입니다. 바닷가에서 장난 삼아 채취하는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갔는데, 이거 장난이 아닙니다. 일 다녀오신 장인어른을 비롯해 처가 식구들 모두 출동해 작업에 나섰습니다. 얼마나 열중이신지 사위가 왔는데도 쳐다도 안 보시고 채취에만 열을 올리시네요.

이 모든 책임은 성게 때문입니다. 어찌된 게 돌맹이만 들추면 성게들이 흔들흔들 '나 잡아갑서~' 하고 있으니 안 잡아갈 수가 없지요. 그 덕택에 울 장인어른 장모님 완전 '필' 받으셨고요. 

성게잡이에 함참인 장인, 장모님. 사위가 왔는데 쳐다보시지도 않아요 ㅠㅠ
 성게잡이에 함참인 장인, 장모님. 사위가 왔는데 쳐다보시지도 않아요 ㅠㅠ
ⓒ 전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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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잡이에 한참인 장인어른
 성게잡이에 한참인 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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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 계신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채집' 본능이 불끈불끈 솟아올랐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고 긴 바지를 입고 있어서 대략 패쓰~. 다음을 기약하며 구경하기를 한참, 어느덧 해도 뉘엿뉘엿 지고, 물이 스멀스멀 차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자 의견 충돌이 빚어졌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이 성게들이 다 사라질 것이니 조금 더 잡고 가자'는 의견과 '오늘은 많이 잡았다. 다음에 와서 또 잡으면 된다'는 의견이 맞선 거죠. 결국엔 사위 밥 줘야 한다고 장모님이 먼저 나오시고 조금 후에 장인어른이 나오는 걸로 마무리 됐답니다.

아 참, 제주바다 대부분은 해녀분들이 관리하고 계십니다. 소라를 비롯해 전복 등의 씨를 뿌려서 이를 수확해 생활하시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잠수복을 갖춰 입고 물속에 들어가 채취하거나, 채취금지 표시판이 있는 곳에 가서 채취하면 해녀분들의 생계에 막대한 지장을 끼칠뿐만 아니라 벌금도 물어야 한답니다.

저희가 간 곳은 해녀분들이 공동관리 하는 곳이 아니어서 마음껏 채취할 수 있었지만, 혹시 제주 가시더라도 이 점 꼭 기억하세요.

오늘의 전리품(?)을 살펴보니 엄청납니다. 주 메뉴인 보말을 비롯해 성게, 배말, 우뭇가사리, 군소가 바구니마다 가득가득.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잡아온 성게
 잡아온 성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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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놈은 아시다시피 성게입니다. 제주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놈. 전 성게 미역국을 결혼잔치 때 처음 먹어봤어요. 예전에 <1박2일> 멤버들이 함덕해수욕장 앞에서 성게국수를 먹어서 한동안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죠.

우뭇가사리
 우뭇가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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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우뭇가사리. 저흰 성게랑 보말 채취에 열을 올렸는데, 성산에서 오셨다는 여성분 몇 분은 우뭇가사리랑 미역만 열심히 채취하시더군요. 요놈을 다시마 말리듯 바닥에 깔아 말린 다음에 묵을 해서 먹으면 그렇게 맛나다고 하던데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다음번에 내려가면 먹어볼 수 있겠죠?

잡아온 보말.
 잡아온 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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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보말입니다. 보말이 뭔지는 다들 아시죠? 제주도 지역에선 고둥류를 통틀어 보말이라고 부른답니다. 제주바다 돌 사이를 뒤지면 지천으로 깔려 있죠. 다만 횟집에서 파는 것과 같이 통통하고 큰 놈은 인근에선 잡기 힘들어요. 저희처럼 하도 채취해대니 씨가 말라서 그렇겠죠. 어쨌든 삶아도 먹고 조림으로도 먹고, 라면에 넣어서 먹어도 아주 맛난 놈입니다. 

전복 새끼로 착각했던 배말
 전복 새끼로 착각했던 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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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배말. 예전에 요게 전복 새끼인 줄 알고 바윗틈에서 낑낑대며 따던 기억이. 와이프께서 예전에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엄청 많이 잡았다고 자랑했는데 분류작업 해보니 얼마 안나와 아쉬워합니다. 도망간 걸까요?

아 참, 새우처럼 배말에도 하얀색 내장이 있는데 그걸 꼭 떼고 먹어야 한다네요. 안 그럼 식중독 걸린다고.

먹음직(?)스러운 게
 먹음직(?)스러운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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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뱃속으로 들어갈 운명의 게. 큰 놈보다 작은 놈이 휠씬 맛나요.

처음 본 군소
 처음 본 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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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군소라는 놈입니다. 전 처음 봤는데 횟집에 가면 서비스 메뉴로 나오기도 하고, 요놈만 팔기도 한다더군요. 제주도 말로는 '굴멩이'라고 불린답니다. 해삼 비스므리하게 생겨서 좀 징그럽습니다. 내장을 놔두면 녹는다며 잡자마자 떼어내니 연보라색 물이 나오는데 색깔이 예쁩니다. 옛날 선원들은 이걸 가지고 옷을 염색해 입기도 했다는군요.

자 이제 분류작업도 마치고 세척까지 끝냈으니 먹어주시는 일만 남았습니다. 첫번째 시식대상은 보말죽! 안 드셔보셨으면 말을 마시라니까요. 전복보다야 못하지만 고소한 게 맛있습니다.

우선 잡아온 보말을 깨끗하게 씻어낸 후 요렇게 잘 삶습니다. 보말죽 끓이는 거, 일반 죽 끓이는 것과 방식은 똑같아요. 전복에 게우(전복 내장)를 갈아넣는 것처럼 보말을 삶은 후 껍질을 떼낸 뒤 으깨서 넣으면 요런 색이 나옵니다. 먹음직스럽죠?

잡아온 보말은 냄비에 넣고 팔팔 끓여줍니다
 잡아온 보말은 냄비에 넣고 팔팔 끓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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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는 보셨나요 보말죽
 들어는 보셨나요 보말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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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완성품입니다. 보말 죽에다가 어랭이 튀김, 돼지머리 삶은 놈이랑 냠냠냠~.

죽에 들어간 놈을 제외한 나머지 보말들은 바늘로 콕 찍어 내용물만 빼내는 해체작업에 들어갑니다. 먹을 땐 참으로 좋은데 이거 해체작업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네요. 이날 밥 다 먹고 새벽까지 보말 해체작업하고 잤습니다.

그래서인지 보말 전문점 가면 가격이 상당히 비싸요. 흔하게 볼 수 있는 보말을 왜 이렇케 비싸게 파냐고 하시는 분, 잡아서 내용물만 뽑아보시라니까요. 완전 노가다예요.

삶은 성게를 우선 반토막을 냅니다
 삶은 성게를 우선 반토막을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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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으로 알과 내장을 쏙 퍼먹으면 끝! 완전 맛나요
 숟가락으로 알과 내장을 쏙 퍼먹으면 끝! 완전 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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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심혈을 기울여 잡아온 성게입니다. 보통은 성게를 반 토막 내 숟가락으로 내장은 빼고 알만 쏙 빼서 먹는데, 장인어른은 "그렇게 먹으면 양이 너무 적다"며 전부다 삶아버렸습니다.

삶으니 내장도 함께 먹을 수 있는데, 생각보다 고소하네요. 제 입맛에는 날 것보다는 삶은 게 더 낫더라고요. 삶은 다음에는 칼로 조심조심 반 토막을 냅니다. 그 다음엔 숟가락으로 콕 찍어서 꼴딱~. 잔치음식에나 쓰이는 귀한 성게를 배 터지게 먹어봤더랬죠.

삶은 군소
 삶은 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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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아까 해삼 비스므리 징그럽게 생긴 군소입니다. 요놈은 내장 떼고 삶아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으면 된답니다. 먹어보니 쫄깃쫄깃한 게 씹는 맛이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비주얼' 때문인지 다른 맛난 놈들이 많아서인지, 남은 놈은 모두 장인어른 뱃속으로~.

튀김옷 입은 게
 튀김옷 입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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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장 맛났던 게 튀김! 잡아온 게를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씻은 뒤 튀김옷을 입혀줍니다. 그런 다음 끓는 기름 속에 투하하면 잠시 후 바삭바삭 고소한 게튀김이 완성되죠.

어때요 먹음직스럽죠? 제주 바다 준 선물 덕분에 일곱 식구가 즐겁게 놀고 먹었답니다. 올레길 걷는 것도, 차고 넘치도록 많은 관광지 돌아보는 것도 재밌지만 가족끼리 자연이 준 먹거리 잡으면서 추억 만들기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저희처럼 꼭 취식하지 않고 놔줘도 상관없습니다.


태그:#제주도, #성게, #보말, #배말, #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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