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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저는 이 주제에 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의 죽음에 대해서 제가 별로 알고 있는 게 없거든요. 알고 있는 게 없는데 무슨 말을 한다는 게 무의미합니다. 정치적 소수파가 집권에 성공한 예가 드문 사회에서 그 분은 대통령까지 했거든요? 그런 분의 죽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얘깃거리가 아닐 겁니다. 더군다나 그분의 죽음에 관한 어떤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나누는 것이 자칫 그분의 죽음이 담고 있을 의미를 왜소화 하거나 훼손할 수 있거든요. 저는 이 소수파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비극에 대해 우리 사회가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이것에 관한 논픽션이 열 개, 스무 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야기 할 수 있겠죠. 그 전에는 누구도 이 부분에 관해서 뭐라고 단정해서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게 제 생각입니다."
-<2009년 5월>에서((탁석산(철학자), <MBC>-'100분토론(2009년 12월 17일)')

그해의 이슈를 두고 패널들이 토론을 벌인 12월 17일자 <MBC> '100분토론'에 참여한 탁석산(<한국의 정체성>(2000) 저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9년 5월> 겉그림
 <2009년 5월> 겉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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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그 실체(혹은 진실)가 결코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 못했다는, 아직 밝혀내야 할 것도 많고 이야기 할 것도 많다는 이야기다.
어느덧 추모 2주기가 지났다. 그렇건만 2009년이나 지금이나 검찰 수사 도중 죽음을 선택한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서거 당시 회자됐던, '독도문제 둘러싼 일본과 MB의 합작 타살설'을 비롯한 온갖 타살설들이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2주기 무렵, 어디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올해 고등학생이 된 둘째가 문득 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자살한 걸까요?"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이든, 혹자들의 말대로 타살이든, 이처럼 고등학생 아이들 사이에까지 그의 죽음이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의문이 많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사실, 당시 대다수 국민의 눈에는 막 등장한 새 권력이 '죽은 권력'을 손본다는 속셈이 또렷하게 비쳤고, 그 과정에서 검찰이 악역을 맡아서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가족과 후원 기업을 표적으로 한 수사에서 칼자루를 쥔 검찰이 오히려 수사 대상에 대한 혐의 못지않은 의혹을 사기도 했다. 저자는 그런 현장을 보면서 공정을 잃은 검찰의 수사 태도, 언론의 받아쓰기 및 '유죄 몰이' 보도 등에 대하여 절실한 반성의 필요를 절감한다. 양심적 저널리스트의 고뇌와 용기가 한갓 자괴의 넋두리에 그치지 않고, 검찰의 책임, 언론의 책임을 정면으로 따지고 나섰다.-<2009년 5월> 추천사(한승헌)에서

<2009년 5월>(웅진 지식하우스 펴냄)은 이처럼 밝혀내야 할 것도 많고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을 취재한 KBS 김정은 기자.

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는 촉각의 사태를 수많은 취재진들과 함께 취재했던 저자는, 2009년 5월 23일 죽음 몇 시간 전까지 벌떼처럼 달라 들어 잡아먹을 듯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유죄'로 몰아붙이다가 '죽음'과 함께 느닷없이 종결해버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실체와 사건들을 헤집는다.

입헌주의 원리에 따라 검찰 수사관은 피의자에게도 헌법이 명시하는 인간의 기본법을 보장해야하고 재판을 통해 유죄가 인정되기 전까지는 그 어떤 피의자도 무죄로 추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피의 사실을 공표에서도 안 된다. 뿐만 아니라 검찰 수사관의 유죄 설득 절차는 오직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로만 만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검찰 수사관들에게 이렇게 법과 윤리를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왜 언론은 그처럼 자신감 있게 전직 대통령의 유죄를 추정하고 나섰을까? 게다가 여전히 수사과정에 있는 피의 사실들을 왜 그렇게 서로 다투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경쟁적으로 공개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떻게 모든 언론이 그처럼 한결같이 전직 대통령은 유죄라는 검찰수사관들의 확고한 판단을 열렬하게 지지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우리는 아직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2009년 5월>에서


일반인들에게 언론의 역할은 지대하다. 언론 보도가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보도에 종종 낚이곤 한다.

2009년 봄은 참 슬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조차 매일 보도되는 전직 대통령의 비리 관련 뉴스에 설왕설래 하면서도 어느새 낚이어 100% 가까운 진실로 받아들이며 "노무현도 별 수 없네!"라며 욕하는 것을 쉽게 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국민 한사람으로서 전직 대통령을 그 지경까지 몰고 가는 사태가 슬펐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지지하고 믿어왔던 어제의 대통령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일부 사람들의 별 수 없는 가벼운 근성이 슬펐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땠노라. 의심을 받고 있는 박연차 게이트를 비롯하여 여러 비리와의 연루, 실은 이렇노라'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돌연 서거하고 말았다.

이에 정부와 검찰, 언론들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한편 시민들이 마련한 분향소와 시민 조문객들을 핍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추모 2주기가 지났지만 죽음에 대해 딱히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반갑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는 2009년 3월,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가 약 2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2008년 초 새 정부 출범 후,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권력기관의 수장들이 대부분 교체되는 상황에서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청장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가 자신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 정부의 신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태광실업 세무조사 결과는 한 전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실업이 세무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기준과 선정절차부터 논란거리다.…선정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았다.…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심의위원회 심사 없이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의 하명으로 전격 이뤄졌다. 게다가 국세청은 내부 규정 22조에 따른 사전 통보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2009년 5월>에서

저자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을 취재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바탕으로 박연차 게이트, 태광실업 세무조사, 세종증권 매각 비리 수사 관련 언론들의 보도, 관련 수사기록과 재판 기록 등을 다시 들춰봄으로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파헤친다.

그리하여 묻는다. 법과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얼마나 되며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가.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얼마나 이성적이며 얼마나 도덕적인가. 2009년 5월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는가.

책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숭례문 방화사건, 용산 철거민 참사, 신종플루 대재앙 등을 현장에서 취재하기도 했던 저자의 특정 자료들이 근거가 되고 있는 '글'과 몇몇 사람들 인터뷰.

이중 인터뷰는 문재인 변호사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 가까이 있던 사람들부터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까지 모두 6명.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정점으로 서거 전과 서거 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사자는 물론 주변에 일어났던 일들과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을 들려준다.

워낙 많은 보도들이 있었다. 어찌나 많은 말들이 난무하는지 일개 시민인 난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었다. 당연 쉽게 정리하지 못한 채 지지했던 대통령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고 죽음을 명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충격과 슬픔을 다독여야만 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러기에 마음 한쪽은 늘 개운치 않았다.

이 책은 이처럼 당시 어떻게 정리해 보려야 정리할 수 없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많은 것들(사건의 실체나 뉴스 등)을 정리해 보는데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덧붙이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된 정치계나 검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압박했던 수사 등과 관련 전문적인 견해가 턱없이 부족한 일개 시민의 입장으로 책을 읽고 '어떤 책이노라' 쓰는지라 코끼리 다리만 보고 코끼리를 판단하는 것처럼 글이 참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럼에도 이 책을 어떻게든 소개하고자 그 누구보다 나 같은 서민 가까이에 있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봤으면, 무엇보다 나 같은 일개 시민 독자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이제 내 아이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금이나마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 사회의 정치적 단면에는 그 사회의 이성, 그 사회의 도덕, 그 사회의 정의, 그 사회의 행복이 녹아 있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 수사 도중에 투신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오늘날 한국사회가 얼마나 이성적이고 얼마나 도덕적인지, 또 얼마만큼 정의로운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각자 현명한 답을 추론해 보길 바란다. 이 책을 구상하면서 나는 줄곧 나의 다음 세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시대의 섭리에 반성 없이 순응했던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그들이 지금 이 세대보다는 더 세련된 정치적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초라하고 부끄럽지만 이 책이 그들의 정치적 소양을 위한 아주 작은 참고 자료라도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저자의 말 중에서

덧붙이는 글 | <2009년 5월>|김정은 |웅진지식하우스|2011.5.13|정가:14000



2009년 5월 - 노무현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남겼는가

김정은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1)


태그:#노무현, #박연차 게이트, #세종증권, #태광실업,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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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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