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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을 얼마나 하셨죠?"
기자의 질문에 허권만 씨(전 알파도매문구 대표)는 딱 잘라 말한다.
"8년하고 2달요"
얼마나 치열했으면 저리도 정확하게 대답할까.

"내가 봐도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이런 말을 본인의 입으로 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에겐 진실이다. 2003년에 처음 문구점을 시작할 때는 '뭐라도 해야 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파탄할 수 있는 지경이었다. 대한민국 서민들의 '벼랑 끝 심정'이 그에게도 있었던 것.

평생 월급쟁이만 하던 그가 빚으로 시작했다. 여기서 무너지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투지로 싸웠다. 덕분에 약 2년 만에 모든 빚을 갚았다. 절박감이 만든 신화라고나 할까. 주변에서도 다들 놀랐다.

허권만 씨는 "기부하는 게 이렇게 좋을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며 하얀 이를 맘껏 드러내며 웃었다.
▲ 허권만 허권만 씨는 "기부하는 게 이렇게 좋을 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며 하얀 이를 맘껏 드러내며 웃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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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밤 10시나 되어야 퇴근이었다. 1년에 노는 날은 3일. 추석, 설날, 그리고 여름휴가가 다였다. 1년 362일 쉬지 않고 일을 했다. 그의 아내는 가정도 꾸리고, 이일도 함께 했다. 매일 같이 점심 도시락을 싸와서 가게에서 먹었다. '내조의 여왕', 바로 그의 아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랴.

그래도 다행히 장사가 잘되어서 재밌었다고. 가정의 힘을 '올인'해서 시작한 문구점. 만일 장사가 안 되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순항을 하고 있었다.

건강 악화는 다른 길을 생각하게 해

하지만, 인생이 어찌 순항만 있으랴. 2년 전,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말로만 듣던 '간경화 초기'가 그에게도 닥쳤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일의 스트레스로 인해 술을 자주 한 것과 피로가 누적된 것이 겹쳐 간이 상했던 것. 그야말로 "간 때문이야. 피곤한 간 때문이야"란 CF처럼 되었다.

'이제 그만둘 때가 되었구나'
아내와 함께 문구점을 내놓았다. 주변에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알음알음 내놓았었다. 쉽게 팔리지 않았다. 이왕이면 문구점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요즘 누가 문구점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지. 결국 다른 업종이라도 시작하도록 광고를 내었다. 다른 업종의 사람이 가게를 인수했다.

문제는 자식 같은 많은 문구들이었다. 그 문구들을 어찌 처리해야 할까. 업자를 불렀다. 지나치게 싸게 먹으려 했다. 문구점을 그만두기 쉽지 않았다. 이런 고민을 그의 친구 권용일 씨(안성시민연대 기획실장)와 나누었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가게 물품 기부'라는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유종의 미'란 바로 이런 것.

5월 16일엔 1000만 원 상당의 각종 종이류들을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했다. 5월 31일엔 또 다시 2000만 원 상당의 모든 문구를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했다. 이날은 안성 노인복지회관 소속 조손가정에도 각종 학용품을 기부했다.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에도 각종 사무비품을 기증했다.

"만약 업자들에게 싼 값으로 이 문구들을 처리했으면, 내 맘이 안 좋았을 거예요. 결과적으로 이렇게 처리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권만 씨는 생전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가게를 해봤고, 또한 생전 처음으로 거액의 물품을 기부해보았단다. 아름다운가게 도우미들이 문구 이름을 잘 모르면, 지속해서 도와주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내가 필요하다면 달려가겠다"는 심정이다.

그렇다. '유종의 미'란 바로 이런 것이렷다. 마지막이 좋아야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니던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과 나누는 기쁨이 이리 클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남에게 나누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한다는 걸 이번 경험으로 알았지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감동이 바로 앞에 있는 기자의 마음에도 전해온다. 그에겐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번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3일 권용일 씨(허권만 씨의 친구)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태그:#아름다운가게 , #허권만, #안성, #문구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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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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