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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 흑설(Scorched Earth, Black Snow)> 책 표지.
 <초토화, 흑설(Scorched Earth, Black Snow)> 책 표지.
ⓒ Auru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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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초토화, 흑설(Scorched Earth, Black Snow)>인데 왜 이렇게 지었나?
"'초토화(Scorched Earth)'는 군사전술의 하나로 후퇴하는 군대가 모든 것을 초토화시켜버리는 전술을 말한다. 초토화전술은 1941년 독일군이 러시아를 침략했을 때 러시아군이 쓰던 전술이고, 1942년 일본군이 미얀마를 침략했을 때 영국군이 쓰던 전술이며, 1950년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과 중공군이 공격했을 때 후퇴하던 유엔군이 쓰던 전술이다.

당시 물론 상부명령에 의해 초토화전술이 행해졌지만 내가 인터뷰한 많은 참전용사들은 이런 전술에 공감하지 않았다. 유엔군이 마을, 식량보급로, 교량, 통신시설 등을 초토화시켜버렸을 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는 민간인들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참전용사들이 왜 초토화명령에 공감하기 힘들어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흑설(Black snow)'은 네이팜탄으로 공중에서 폭격하는 것을 암시한다. 네이팜탄은 석유가 그 원료로 백설을 흑설로 만든다. 네이팜탄의 온도는 끓는 물의 8배다. 사람의 피부에 네이팜탄이 닿는 순간 피부가 즉시 타버린다. 한국전쟁에선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은 이렇게 지독하게 파괴적인 전쟁이었고 그런 전쟁은 오늘날 서구에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내 책의 제목은 한국전쟁의 파괴적 특성을 알려주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지었다."

- 영국군이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숫자가 포클랜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희생된 총 사망자 숫자보다 많다. 또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게 두 달 동안 패배한 것은 그 후 베트남에서 10년에 걸쳐 패배한 것보다 미국에게 더욱 큰 고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전쟁은 왜 서구, 특히 미국과 영국인들에게 잊힌 전쟁이 되고 말았을까?
"한국전쟁은 인류역사상 가장 컸던 2차대전과 컬러텔레비전으로 전쟁의 참상이 서구인들의 거실에서 매일 보이는 베트남전쟁 사이에 발생했다. 부분적으로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서구인들의 대중문화 속에서 한국전쟁은 비껴갔다. 더욱이 한국전쟁을 주제로 다룬 시, 소설, 영화의 수도 아주 적다."

-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직업이 언론인이고 훈련을 통해 역사가가 되었다. 영국과 한국 참전용사의 증언을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운 적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눈물겨운 증언들을 기록하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나는 쓰기를 좋아하고 적절한 단어도 잘 생각난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내가 큰 비극, 엄청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단순히 쓸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나는 전속 작가가 아니고 언론인이다. 그래서 이 책의 대부분은 자정 후에 쓰여졌다."

2009년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유해 발굴 광경: 유해 사이로 피난 온 가족들의 숟가락들이 보인다.
 2009년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유해 발굴 광경: 유해 사이로 피난 온 가족들의 숟가락들이 보인다.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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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마치 물처럼 트럭에서 쏟아져내렸다"


- 이 책에는 연합군 종군기자, 한국 민간인, 영국과 호주군인들의 시각이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분들이 겪은 엄청난 체험과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달라.
"백병전을 몸으로 겪은 참전용사들의 증언도 들었다. 백병전 중에 적의 대검에 찔려 죽은 전우 이야기, 치명상을 입고 유언을 남기며 죽어가는 전우들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군인들의 이야기, 오순도순 단란하게 함께 살던 가족과 집을 영원히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피난 갈 수 밖에 없었던 한국 피난민 이야기,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피난선을 타기위해 결사적으로 배를 기다리고 또 목숨 걸고 승선을 시도했던 분들의 이야기 등. 정말 절망적 인간의 고뇌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갈등을 보여준 극적인 드라마와 같은 여러분들의 증언을 들었다.

당시 한 영국 의무관은 폭격으로 파괴된 북한에 진입하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우리가 북한을 해방시키러 온줄 알았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통째로 파괴해버린 것 같다.' 전투 중 다리에 총을 맞은 한 참전용사는 이렇게 그때 느낌을 이야기했다. '마치 누가 큰 집을 들어서 내게 힘껏 던져서 맞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아팠다.'

또 눈앞에서 군인들이 가득 탔던 트럭이 폭탄에 터지는 장면을 목격한 한 참전용사의 증언은 이랬다. '나는 이것이 육상전이 아니라 해전같이 느꼈다. 트럭에서 즉사한 사람들의 피가 마치 물처럼 트럭에서 땅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당시 한 종군사진기자는 한국의 추운 날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힘들었다. 너무 손가락이 춥고 떨려서 하루 종일 사진을 8개밖에 못 찍었다.' 한 참전용사는 얼어 죽은 북한군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마치 그 북한군인의 시신은 얼음조각처럼 보였다.'"

- 한국에는 얼마나 살았나? 한국에 살면서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와 후유증을 느끼거나 본 적이 있나?
"한국전쟁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 또 같은 인간을 눈앞에서 직접 총칼로 찌르거나 때려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전투에 직접 몸으로 참여한 분들이 겪은 분들의 악몽과도 같은 고통과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내가 느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1950년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분들이 갖고 있는 개인적 트라우마와 후유증을 생각하면 내가 느끼는 감정을 감히 그분들의 아픔에 비교할 수조차 없다.

반면 지난 4년 동안 나는 한국전쟁에 관해 읽고, 쓰고 연구하며 지냈다. 그동안 나는 하루 한 순간도 한국전쟁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내가 길에서 한국노인들을 마주칠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분들은 한국전쟁 중 어떤 고통을 겪었을까?' 나는 모든 한국인들은 그 가족의 일부가 한국전쟁의 비극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해질녘 한국의 산을 볼 때마다 한국인들이 겪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수많은 분들이 수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한국전쟁 당시와 현재 한국의 지리와 날씨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아마 조금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알 것 같다. 특별히 한국의 젊은 세대 중 그 할아버지 세대가 겪은 기억을 한 번도 제대로 탐구해보지 않은 사람들과 비교해 나는 조금은 더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와 후유증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예를 들자. 내 가까운 한 한국친구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나를 소개시켜준 적이 있었다. 그 어머니는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에서 미군 피난선을 타고 탈출한 분이었다. 그녀는 1950년 12월 흥남부두에서 피난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시 미 해군에서 쏘아대는 포탄의 지독한 쇳소리에 겁에 질려 꼼작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 친구이자 그녀의 딸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과장하지 마!' 그러나 나는 그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계속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상황을 묘사한 다른 기록을 읽었기 때문에 그녀 어머니의 진술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서 정말 그런 일이 정확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 한국의 젊은 세대는 할아버지 세대의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들이 과장되었거나 지나치게 극적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한국전쟁 1세대 분들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당시의 역사적 기록과 일치한다."

현재 경남대학교 박물관 옆 컨테이너에 보관 중인 경남 마산 여양리 발굴 유해.
 현재 경남대학교 박물관 옆 컨테이너에 보관 중인 경남 마산 여양리 발굴 유해.
ⓒ 노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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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일 뿐"

- 오늘 한국인들과 크게는 세계인들에게 한국전쟁이 주는 가장 소중한 교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교훈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직업이 언론인이고 훈련받은 역사가다. 언론인에는 2종류가 있다. 한 부류는 자기 주장을 쓰는 언론인이고 또 다른 부류는 자기 주장을 배제하고 객관적 자료와 사실만을 쓰는 언론인이다. 이 책 서문에서 나는 내 주장을 좀 피력했다. 그러나 이 책 대부분에서 나는 그저 냉담하게 내 주장을 배제하고 사실만을 보여준다. 나는 도덕교사가 아니다. 전쟁은 전쟁이고 역사는 역사며 인간본성은 인간본성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그러나 인간사에는 항상 전쟁의 필요성을 강변하는 설교가들이 있을 것이다. 또 전쟁에 참전할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젊은이들도 항상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유전인자와 같지 않을까. 나는 대답을 줄 수 없다. 이 책은 단지 참혹한 전쟁에 대한 기록이고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떨 때는 싸우는 것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인터뷰한 많은 한국인 참전용사들 중엔 한국전쟁의 정의(justice) 문제에 확신이 없는 분도 있었다. 그러나 외국 참전용사 중 한국을 다시 방문한 분들은 100% 모두, 한 분도 빠짐없이, 한국전쟁이 옳았고 정당했다고 믿었다.

오늘날 북한을 보자. 지상에서 가장 비참한 공산국가이며, 경제 빈곤국이고, 인권과 인간정신이 말살되고 있는 나라이며, 세계에 주는 것은 군사적 위협뿐이고, 1950년 그때와 똑같이 지금도 동일한 정권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반면 남한을 보자. 한국은 20세기 가장 놀라운 성공 사례를 세계에 보여준 국가다. 1950년대와 비교하면 남한은 경제, 정치, 사회분야에 기적을 이루었고 권위주의 정권의 사슬을 끊고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분명한 것은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과 수많은 한국인들이 치른 죽음과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1950년 한국은 서구인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외국이었다. 한국의 문화, 사회, 사람들은 서구와 너무 달랐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을 봐라. 한국문화는 여전히 서구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을지 몰라도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 교육수준, 경제력, 직장환경, 정치적 견해, 철학적 사고, 민주주의, 인권, 관용, 포용성, 자유 등은 서구인들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유엔이 한국에 있어서 이룩한 가장 훌륭한 불후의 업적은 그저 전쟁기념물이 아닐 것이다. 아마 그것은 지금 한국이 세계에서 존중받는 글로벌 멤버의 한 나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앤드류 사몬(Andrew Salmon) : 한국 관련 기사를 Forbes, Monocle, The South China Morning Post, The Washington Times 등지에 쓰고 있는 영국언론인이다. 그의 저서 <마지막 한발 : 1951년 임진강에서의 영국군, To the Last Round: The Epic British Stand on the Imjin River, Korea, 1951) 은 2009년 햄프셔도서관과 오스피리 출판사에 의해 '2009년 베스트 군사책' 상과 2010년 월스트리저널에 의해 '한국 최고의 책 10' 상을 받았다. 2010년 앤드류는 한국 국회에 의해 한국전쟁문학에 대한 '한류'상을 받기도 했다.



태그:#한국전쟁, #6.25, 유엔군, 초토화 흑설, 김성수, 함석헌, 영국, #앤드류 사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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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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