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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이다. 누구나 알만한 원로 한 분이 이야기 중에 집안일을 털어놓았다.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주위에 덕을 많이 베풀어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분이다. 오래토록 교분이 있었지만 집안 얘기는 처음이었다.

 

 "아들에게 얼마나 레일을 깔아주어야 할까요!"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분도 혼잣말처럼 내던진 자신의 질문이 갑작스럽다고 느꼈던지 한숨을 쉬더니 '아들 사업을 도와주었는데 너무 많이 베푼 것 같다'고 자탄조로 덧붙였다.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니 속 시원한 대답이 나올 리 없다. "대개 능력이 없어서 아들을 못 도와주어 걱정인데, 아버지가 능력이 있으면 많이 도와줄수록 좋은 것 아닙니까" 통상적인 생각을 말했다.

 

 듣기만하고 다음 말을 잇지 않으셔서 얘기는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나중에 보게 된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 아들은 다른 형제들과 불화를 일으키면서 사업을 너무 키우다가 부도를 냈고 보증을 선 아버지는 칠십 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압류당하고 늙은 몸이 법정에 까지 서게 되는 곤욕을 치른다.

 

 꼭 그 원로의 일만은 아니다. 요즘 주위에서 상속분쟁이 다반사가 되었다. 부모가 타계한 후 유산싸움도 보기 흉한데, 아파 누워있는 앞에서 재산 더 차지하려 서로 치고받는 것은 정말 못 볼 짓이다. 예전에는 재벌이나 돈 많은 집안만 유산분쟁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았다. 적으면 적은대로 다툼 없는 집이 드물다. 가까운 친척 집은 최근 소송까지는 안 갔지만 7남매가 남남 대하듯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다.

 

  '아들에게 너무 베풀었다'고 그 분은 고백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니다. '베풀다'의 뜻은 '남에게 돈을 주거나 일을 돕는 것'이다. 아들딸은 '남'이 아니다. 그런데 그 분은 왜 아들 도와주는 것을 베푼다고 했을까.

 

 아들도와 주는 것도 자선사업처럼 생각하고 싶은 심정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 재산을 불우한 사람에게 베풀었더라면 말년에 자신의 이름도 더욱 빛나고 덩달아 아들들에게 그 후광까지 물려줄 수 있었을 터인데.

 

 아들이 남보다 멀리 빨리 달리도록 레일을 깔아주고 싶은 것은 '능력 있는 아버지'의 당연한 정이다. 자식사랑의 한 방법이다. 평생 심혈을 기울여 모은 재산을 혈육에게 주겠다는데 좋다 나쁘다 말할 수도 없다. 다만 넘치거나 공정분배가 안 되면 탈이 날 수 밖에 없다.

 

  막상 자식들의 입장에서도 쉽지만은 않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함정이 많다. 스스로 땀 흘려 벌지 않은 재물에는 마가 끼기 마련이다. 로또복권에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사람의 대다수가 다시 빈 털털이가 되었다는 통계가 말해준다. '그릇'이 못되면 주는 복도 못 받아먹는다. 오히려 그릇이 깨지는 비극도 생긴다. 

 

 그러나 '능력 없는 아버지'에게 이런 얘기들은 '있는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으로 들린다. 있는 아버지는 레일을 깔아주는데 '보통 아버지'는 무엇을 남겨 주어야하나.  남겨줄 것이 재산뿐일까?

 

 자식들 다 도시에 보내고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짓는 노인들이 부럽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줄 것이 있다. 70-80대 늙은 나이에도 땅을 고르고 씨를 뿌려 배추 고추 깨 쌀을 길러낸다. 때마다 손수지은 농산물을 아들딸들이 받고서 즐거워할 것을 생각하면서 힘든 줄 모른다.

 

 실학의 대가 정약용선생은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500여권의 저서 외에도 수많은 편지를 썼다. 특히 두 아들에게 쓴 편지는 자식 아끼는 마음이 구절구절 마다 넘친다. "중국 글만 본 따지 말고  개성 있는 글을 쓰라-- 가문이 망했기에 오히려 너희가 학문하기에 좋은 처지가 되었다.-- 우리 역사를 읽어라--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다스리는데 근면과 검소 두 글자를 삶의 지침으로 삼으라--"

 

 농부처럼 무언가 짓지 못하면, 다산 선생처럼 편지는 쓸 수 있지 않나. 자식을 향한 것만으로 끝내지 말고, 이 기회에 세상을 향해 한 번 베풀어 보자. 어차피 베풂은 빚 갚음 이니까. 세상에서 받은 은덕을 세상에 되갚는 편지를 쓴다.  

 


태그:#베풂, #다산, #상속분쟁, #편지, #자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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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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