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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일 년 중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계절이다. 옛날에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통용되는 춘궁기였지만, 이제는 보릿고개니 춘궁기니 하는 단어들을 향수(鄕愁) 속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게 되었다.

5월은 세상 만물이 발랄하고 풍성하다. 5월을 풍미하는 날들도 많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등…. 5월을 통째로 '가정의 달'로 삼아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공통적 현상이다.

세계 각국이 5월 안에다 어버이날(미국은 어머니날)을 두고 5월을 '가정의 달로' 삼고 있는 것에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크다. 가톨릭교회는 일찍이 5월을 '성모의 달'로 정해 기념해오고 있다. 가톨릭교회의 '성모의 달' 제정과 풍습으로부터 세계 각국의 갖가지 5월 축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5월은 '변혁의 달'이이기도 하다. 5월에는 유난히 큰 사건들이 많다. 5․16쿠데타와 5․17쿠데타가 있고, 5․18광주민주화 운동이 있다. 그리고 2009년 이후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投身)'이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나는 일찍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계절 5월을 제대로 가꾸지 못하고 정치군인들이 더럽힌 것을 슬퍼한 적이 있다. 그리고 5·18의 참혹한 피가 궁극적으로는 5월을 진정 가장 아름다운 달로 승화시켜 주고 있음을 술회한 적이 있다.

5·16과 5·17로 더렵혀진 우리의 5월을 진정 가장 아름다운 달로 승화시켜 주는 또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을 꼽게 되었다. 그의 투신은 단순한 투신이 아니다. 민주 제단에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투신이고, 억만 송이의 꽃으로 피어나는 투신이며, 대변혁과 역사발전을 가져오는 부활의 투신이었다.  

일찍이 함세웅 신부는 노무현 대통령의 투신을 일러 '창조적 죽음'이라고 했다. 그 말의 깊은 의미를 헤아릴 길 없는 사람들은 길길이 흥분하며 온갖 비난을 퍼부었지만, 생각할수록 절묘한 말이다. 그의 '창조적 죽음'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새로운 실존, 새 역사의 길을 열어가고 있다. 그것은 그대로 미래를 창조해내는 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잔명(殘命)을 필경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여 겨우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임에도 아직은 이명박 정권에 장악되어 충성을 다하고 있는 방송매체들과 수구족벌언론 들이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았을 뿐이지,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모 물결은 나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인터넷 매체들은 서울광장과 봉하마을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용솟음치는 듯한 추모 열기를 실시간으로 실감시켜 주었다.

이런 일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하직한 후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더욱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며 길고 긴 추모 대열에 참여하여 꽃송이를 바치는 국민들의 모습을 어디에서 또 볼 것인가. 국민들의 그 '그리움'은 앞으로도 오래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추모 대열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에는 현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악정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이들도 많다. 투표를 잘못한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심정으로, 또 참회하는 마음으로 노 대통령의 영전에 사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은 여러 가지 계기와 사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경험'이다 '겪어봐야 안다'는 것은 경험의 가치를 직시하는 말이다. 하지만 겪고도 모르는 사람들, 경험법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부류도 있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한계가 극명하게 노정되기도 한다.        

우리 국민 다수는 한때 괴이한 미혹에 빠져 있었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라는 천박한 가치관에 매몰되어 있었다.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이니 경제도 중요하지만, 경제와 함께 다른 중요한 가치들도 균형 있게 종합적으로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유기적 관련 속에서 여러 가지 가치들이 상호 연동하며 발전할 때 진정한 경제발전도 이룰 수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법은 중요치 않다. 여러 가치들의 상호 연동이 활력을 얻게 되면 경제발전은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건만 우리는 무식하게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라는 쪽에 철저하게 매달렸다. 다른 것은 다 죽어도 좋고 그저 경제만 살면 된다는 식이었고, '배부른 돼지'가 최고라는 태도이기도 했다. 그런 천박한 사고 구조를 가지고서는 경제도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결국 모든 게 처참하게 망가진 상황이다. 경제는 더욱 피폐해졌고, 민주주의는 30년 전으로 후퇴했고, 60년이 넘도록 횡행하는 이념이라는 이름의 유령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세상만사의 기본인 상식은 온갖 거짓과 억지와 술수와 조작 속에서 힘을 잃기 일쑤다.

가장 참담한 일은 70·8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의 유물인 개발제일주의가 21세기에 단국 이래 최대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국토훼손을 자행한 일이다. 조물주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자연을 유린한 4대강 파괴사업은 두고두고 우리나라의 큰 문젯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 것들은 생각하면 5월의 신록 속으로 스러져 간 노무현 대통령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 그리움 속에서 5월이 간다. 올해도 5월은 덧없이 가지만, 5월은 내년에도, 또 해마다 이 땅에 신록을 가져다 줄 것이다. 희망의 신록, 변화 속에서 생성할 수 있는 '희망'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추모, #이명박 정권, #5월 신록, #4대강 파괴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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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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