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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순시대 이야기

 

아득한 옛날 중국의 전설상 임금인 요순시대 이야기이다. 어느 하루, 요 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하여 미복(微服,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한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마을로 나갔다. 한 마을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지만

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

 

그 노래 소리에 요 임금은 마음이 흡족했다. 요 임금이 마을을 지나 들길을 가는데 두세 노인들이 밭에서 괭이로 흙덩이를 깨트리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

밭을 갈아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요 임금은 그 노래에 정말 기뻤다. 백성들이 아무 불만 없이 흥겹게 일하면서 임금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요순시대의 이야기로, 내가 교단에 있을 때 '격양가'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자주 들려준 이야기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야기

 

사실 백성의 처지에서는 나라님이 누군지, 정치를 잘 모르고 사는 게 행복한 세상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그렇지 못하다. 날마다 신문을 펼치면 제1면부터 대통령에 관한 기사가 빠지는 날이 거의 없고,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도 뉴스시간에는 대통령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날이 드물다.

 

아마도 대한민국 백성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은 전 현직 대통령일 것이다. 왜 백성들 입에 대통령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릴까?

 

오늘날 대통령은 옛날 임금과는 달리 백성들이 자기들 손으로 뽑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제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바로 우리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어느 날 대통령의 담화에 국회가 해산되는 비상사태를 맛보기도 했고, 또 대통령 한 마디에 금융실명제가 시행되거나, 숱한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보기도 했고, 주식 값이 춤을 추는 것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백성들에게 '대통령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처럼 뗄 수가 없다.

 

최근 작가 강준식씨가 당신이 쓴 <대통령 이야기>라는 책을 나에게 한 권 보내주었다. 그는 몽양 여운형의 일대기 <혈농어수>를 쓴 작가로, 몇 해 전 몽양 여운형 60주기를 맞아 몽양 생애를 조명할 때, 시인 이기형 선생과 함께 인터뷰한 인연 때문이다.

 

이즈음 나는 올 여름에 펴낼 책의 원고 집필 마무리 기간으로, 내가 무척 좋아하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조차 삼가는 때인데도, 이 책을 펼치고는 곧 책 속에 빠지고 말았다. 이 책에는 이승만 대통령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아홉 분의 대통령과 내각책임제 시절의 장면 총리를 포함한 꼭 열 분의 대한민국 역대 지도자의 생애와 업적, 일화들을 알뜰히 모아 한 권에 담았다.

 

나는 해방둥이로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현 대통령까지 그분들의 집권시절을 지켜보았고, 또 몇 분은 이런저런 인연으로 직접 만나 뵙기도 한 분들이고, 또 몇 분은 내 나름대로 언젠가 작품으로 쓰고자 골똘히 공부한 분들이라 더 흥미로웠는지 모르겠다.

 

 

역대 대통령의 빛과 그늘

 

저자 강준식은 문학과 정치학 ․ 경제학을 공부하고, 한때 언론에 종사한 전력 때문인지, 매우 해박한 지식으로 역대 대통령(이하 장면 국무총리 포함)의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 비평하였으며, 그분들의 빛과 그늘을 함께 들려주고 있다.

 

건국의 공을 세운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했고, 민주적인 장면은 민주정체를 빼앗겼으며, 실권 없는 윤보선은 쿠데타를 시인함으로써 군사정권의 길을 터주었고, 경제개발을 일으킨 박정희는 부하에게 피살되는 비운을 맞았으며, 민중의 원망보다 총구를 더 두려워한 최규하는 짧은 서울의 봄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져야 했고, 권위주의적인 전두환은 안전장치로 세운 친구에 의해 백담사로 유배되었으며, 거대공사를 일으킨 노태우는 정경유착으로 투옥되었고, 신한국을 창조하겠다던 김영삼은 IMF 환란을 맞았으며, 햇볕정책의 김대중은 특검에 의해 그 정당성이 부정되는 곤욕을 치렀고, 서민들의 꿈이었던 노무현은 퇴임 후에 자살하고 말았다. - 강준식 <대통령 이야기> 21쪽 

 

저자 강준식은 역대 대통령들의 아픔을 나름대로 촌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의 비극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비극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그의 통치를 받은 한국인 전체의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대통령의 비극은 한국인 전체의 비극으로 보았다.

 

역사와 대화하지 않았던 대통령들

 

저자 강준식은 대통령 비극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그들의 정치 행적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그건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가령 장기집권의 끝을 보고서도 영구집권의 길을 걷는가 하면 정경유착의 폐해를 적시하면서도 이를 답습하고, 권력 집중을 비난하면서도 그것을 즐겼다.

 

거기에 욕망을 채워주는 달콤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달콤함을 즐기느라 그들은 역사와 대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반 국민이 익히 알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역사의 교훈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역사의 학습효과가 없었다. 대통령 비극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 강준식은 역대 대통령의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 나름의 시대적 역할이 있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령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자유민주체제가 선택될 수 있었을까? 장면을 겪지 않았다면 역설적으로 대통령제가 확립될 수 있었을까?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경제개발이 가능했을까? 전두환이 아니었다면 역설적으로 격렬한 운동권이 형성되었을까?

 

노태우의 징검다리 역할이 없었다면 민간 정부의 등장에 대한 군부의 거부반응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을까? 김영삼이 아니었다면 하나회를 제거할 수 있었을까? 김대중이 아니었다면 남북화해 무드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권위주의를 타파할 수 있었을까?

 

나는 몇 해 전 미국 메릴랜드 주 칼리지파크에 있는 국립문서기록보관청을 드나들면서 한국전쟁 사진을 검색하는 기간, 박유종(임정 박은식 대통령 손자) 선생과 당시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환경문제를 공부하는 유학생 권헌열씨의 안내로 워싱턴 내셔널 몰 주변의 워싱턴 기념탑, 링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과 근교 워싱턴 저택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그때 박 선생과 권씨는 워싱턴도, 제퍼슨도, 심지어 링컨도 흠이 많은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교과서를 통해 자기네 나라 대통령을 계속 띄워 올리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정통성과 자기 나라를 다음 세대에게 자랑스럽게 여기게 하는 미국인들의 깊은 뜻이 숨겨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귀국 후, 역대 대통령 자료수집 차 한 대통령의 사저를 찾았더니, 대통령 기념관은커녕 매우 귀한 사진 자료조차 사저 바깥에 걸린 채 햇볕에 바래지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 이른 책임은 대통령 재임 때의 행장이 공(功)보다 과(過)가 더 컸기에 빚어진 결과이리라.

 

 

이에 저자는 "우리가 (대통령을) 뽑아 놓고 흔들어 모두를 실패자의 카테고리로 밀어 넣지 말자"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470쪽이 넘는 <대통령 이야기>를 하룻밤에 흥미진진하게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정치지망생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일독한다면 보다 역대 대통령을 바로 이해하고, 아울러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백성들은 너무 책을 읽지 않고, 역사에 대한 공부가 적기에 아직도 정치 경제 생활 등 각 분야에서 후진국의 잔재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야기 - 국민을 받들고 시대정신을 구현한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강준식 지음, 예스위캔(2011)


태그:#대통령, #강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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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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