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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제주에서 열린 <진보집권플랜> 북콘서트를 가로막은 장벽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날 하루종일 전국엔 비가 내렸다. 오후 5시경 조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잇따른 비행기 연착소식. 북콘서트를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서서히 '만약…'을 떠올리며 긴장감을 높이기 시작했다.

 

빅뱅도 꺾지 못한 <진보집권플랜> 북콘서트 열기

 

나쁜 날씨로 참석자 수에 대한 예측도 비관적으로 흘렀다. 제주지역 특유의 매서운 바람을 앞세운 비가 외출을 꺼리게 만들 법했다. 게다가 이날은 최근 <오마이뉴스>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세계7대경관' 선정 200일을 앞둔 이틀 전이었다. 제주도가 며칠 전부터 대대적으로 'D-200일 기념행사'를 열겠노라 선언했다.

 

특히 행사 당일 오후에는 SBS가 7대경관 선정을 기원하는 'SBS인기가요' 생방송을 예정했다. 출연진에 빅뱅, 소녀시대, 비스트, 동방신기 등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조국 교수, 오연호 대표가 이들을 감당키나 할까. <진보집권플랜> 북콘서트가 SBS인기가요에 묻힐 가능성은 충분했다.

 

어디 이 뿐인가. 북콘서트가 열리는 시각 KBS에서는 연일 시청률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는 드라마 <웃어라! 동해야>가 방영 중이었다. 북콘서트가 끝날 즈음에는 '아이돌 특집'으로 TOP8에서 두 명이 떨어질 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보집권플랜> 북콘서트에는 3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리를 채웠다. 조국 교수와 오연호 대표는? 콘서트 시작 10여 분을 남기고 '드라마틱'하게 행사장에 도착했다. 그 다음은? '집권의지'를 확인했으니, 이를 불태우며 '집권플랜'을 짜는 일 밖에 없었다. 경쾌하고 신명나는 진보와 함께.

 

<진보집권플랜> 출판 기념 '조국·오연호 제주 BOOK 콘서트'가 22일 오후 7시30분 제주상공회의소 5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서울을 시작으로 광주를 찍고 대전, 춘천, 대구를 지나 제주에서 여섯 번째로 올려지는 무대였다.

 

제주희망정치와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 제주도당, 인문학을 공부하는 제주지역대학생모임과 <오마이뉴스>가 공동 주최한 이번 콘서트의 사회는 제주 탑동365의원 원장인 고병수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이사장이 맡았다.

 

"진보도 신나고 신명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조 교수나 나나 40대지만 젊은 세대에 악수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우릴 받아줘서 감사하게 느낍니다. 각 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신명납니다." (오연호 대표)

 

"2012년은 입법·행정권력이 모두 바뀌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올해는 밑에서부터 진보세력의 집권을 위한 분위기가 떠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분위기를 띄우는 그 주체는 보통 시민들입니다.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조국 교수)

 

"<진보집권플랜>은 표준 전과 같은 책"

 

 

<진보집권플랜>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두 사람은 "경쾌하고 신명나는 진보로 내년 집권을 위한 분위기를 밑에서부터 띄우기 위해"라는 요지의 답을 전했다.

 

오연호 기자는 <진보집권플랜>을 "표준 전과 같은 책"이라고 규정했다.

 

"아마 시민단체나 진보정당 관계자들이 보면 뻔한 내용이라서 심심하거나 실망할 수도 있을 겁니다".

 

뒤이어 오 대표는 대구에서 겪은 일화를 전했다.

 

"대구에서 한 여대생이 저를 보고는 '조국 교수님이시군요'라더군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겁니다. (일동 폭소) 이는 조국·오연호를 구분하지 못해도 집권플랜에 대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일반인과 어깨동무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병수 이사장이 "책을 보니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 절박함은 뭘까"라고 물은 데에 조 교수는 "진보를 이야기할 때 요체는 세 가지"라고 전제한 뒤 찬찬히 생각을 펼쳤다. 조 교수는 "먼저 정치적 민주주의가 이명박 정부 이후 급속히 후퇴했다"면서 "시민과 언론의 표현의 자유, 말과 입을 묶고 있다. 시민들이 스스로 검열하며 숨막혀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후퇴도 있다. 노동·복지 문제로 정리할 수 있는데, 우리사회 복지와 비정규직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고 이었다.

 

"OECD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복지수준은 꼴찌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노동문제에 관심이 없다. 복지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친재벌·부자감세를 밀어붙였다."

 

다음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위기'를 꺼낸 조 교수는 "남북관계가 급속히 냉각됐다. 현 정부는 북한이 굴복하고 망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계속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런 상태가 내년부터 5년 다시 연장된다고 생각해보자"며 "제2의 이명박 정부가 같은 정책을 5년 더 하는 2017년 한국사회에서 살면 암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동 웃음) 건강을 위해서라도 2012년 꼭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현재 병원 원장인 고병수 이사장이 거들었다.

 

"암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원인이 담배입니다. 그 다음 요인이 MB정부라고 학회에 보고해야 할 듯 합니다"(폭소).

 

"노동 빠진 박근혜식 복지는 허구"

 

'복지'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박근혜식 복지를 극복할 수 있는 진보만의 복지정책 차별성에 조 교수는 "보편적 복지가 유행한다. 개념은 알지만 통상 유권자에게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운 개념"이라며 "반면 박근혜씨는 '평생복지'라는 쉬운 용어를 쓴다. 용어부터 대중화해야 한다. 너무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사실 복지는 진보나 보수만의 것이 아니"라고 언급한 뒤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인 박근혜씨 마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왔다. 그만큼 한국사회 복지수준이 최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하위 계급의 복지문제를 돌파하지 못하면 진보는 승리할 수 없다"며 "복지의 구체적인 비전이 필요하다. 야5당이 복지정책으로 매우 가까워져 좋긴 하지만 시민들은 정치적인 실현능력을 보여주길 원한다. 야당들이 정책·정치문제를 결합하는 사고를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교수는 더 나아가 복지정책에 반드시 노동이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OECD국가도 비정규직이 있지만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정규직과 같은 양과 질의 노동을 하면 동일한 임금을 받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한국의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양과 질의 노동을 해도 정규직 임금의 60% 수준만 받는다"면서 "만약 내년 선거에서 야권이 집권하면 가장 먼저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 노동문제를 해결한 뒤 복지문제로 가야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기반으로 조 교수는 '박근혜식 복지'의 허구성을 짚었다. 조 교수는 "박근혜식 복지는 노동이 없다"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없다. 한쪽에서는 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겠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복지국가를 하자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줄푸세와 복지국가는 완전히 모순"이라며 "진보세력이 모순을 치열하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노동없는 복지가 실현될 수 있는지 논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 젊은이들은 광장으로 나가야"

 

오연호 대표는 복지에 앞서 '정의' '상생'이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정의와 상생이 없는 복지는 위험하다"면서 "삼성·현대 등 대기업은 편법으로 재산을 상속하지만 법은 솜방망이로 집행한다. 정의로운 국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제도는 개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정한 기회를 주지 못하는 요소들이 우리사회 곳곳에 깔렸다"면서 "이를 바로잡으면서 정의·상생을 실현해야 복지담론도 더 확산될 수 있다"고 밝혔다.

 

논의의 방향이 교육문제로 향했다. 고병수 이사장은 "만약 두 사람이 현재 대학 3·4학년이라면 취직을 준비하겠나, 등록금 투쟁 등을 위해 광장으로 나가겠나"라고 물었다. 오연호 대표는 "소설을 쓰려고 국문과에 갔는데, 지금쯤이면 인터넷 소설 연재를 준비할 것 같다"고, 조국 교수는 "법대를 안 갔다면 국사학과에 갔을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조 교수는 이 시대 청년들이 광장에 나와 현실과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스펙을 쌓은 것으로 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청년학생들 자신의 문제다. 광장에 나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내년 '진보세력 집권'의 희망을 전하며, "북콘서트는 우리가 진행하는 모임일 뿐이다. 참석자들 모두 다양한 사회·공간의 연출자가 돼서 진보진영의 부족한 부분을 널리 알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오 대표는 진보진영 스스로 진보의 장점을 북돋는 일에 게을리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참석자 중에 수 많은 조국 교수가 있다. 시민단체와 각종 동아리, 마을 모임 중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우리에게는 매력있는 진보·멋있는 진보가 있다. 제주에서도 마을·학교·시민단체마다 포진된 수 많은 멋있는 진보를 생각해야 한다. 이들과 길을 북돋고, 부족한 대로 동지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조국 교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작은 실천'을 주문했다.

 

조 교수는 "앞으로 청중이 일상으로 돌아가 학교·직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며 "작은 실천을 통해 사회가 바뀔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당연히 다르다. 한계·편향을 가진 사람들의 손을 잡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칭찬에 인색하고 비판에 과한 경향이 있다"면서 "칭찬을 많이 하자. 할퀴지 말고, 따뜻한 비판하면서 잘하는 것은 키우자"고 말했다.

 

20대 청년들을 향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청년들은 단군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그것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조 교수는 "앞으로 청년들이 광장에 나가는 연습을 하면 좋을 듯하다"며 "시민단체 활동가도 좋고, 트위터·페이스북 등을 활용한 참여도 좋다. 우리 사회를 책임지는 생각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국 교수 '팝 명곡'에 오연호 대표 '트로트' 응수

 

 

오연호 대표는 5월말 인천에서 열리는 마지막 북콘서트의 계획을 일부 공개했다. 오 대표는 "인천에서 열리는 북콘서트에는 그동안 행사를 개최했던 각 지역의 관계자들을 공식 초대할 것"이라며 "7개 지역에서 모인 이들과 어우러지는 마당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조국 교수와 오연호 대표는 감칠맛나는(?) 노래를 선사해 행사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조국 교수는 다른 지역에서 부르지 않았던 팝 명곡을 꺼내들었다. 무반주 속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특유의 묵직한 저음으로 부른 조 교수는 관객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오연호 대표는 미리 반주를 준비하는 준비성을 보였다. "초심을 잃지말자는 뜻으로 준비했다"며 공개한 노래는 남진의 대표곡 '그대여 변치마오'. '신명나는 진보'를 유난히 강조했던 오 대표 답게 시종일관 경쾌한 노래로 분위기를 한껏 달궜다.

 

한편 이날 행사장 바깥에서는 지난 6일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다 업무집행방해죄로 제주교도소에 구속·수감된 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을 석방시키기 위한 탄원서 서명이 진행됐다. 양 전 회장은 해군기지 건설중단 등을 요구하며 옥중에서 무기한 단식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진보집권플랜 북 콘서트,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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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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