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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다산플라자 로비에서 장애인 복지예산 집행을 촉구하며 이상호 서울시의회 의원이 108배를 하고 있다.
▲ 108배하는 이상호 서울시의회 의원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다산플라자 로비에서 장애인 복지예산 집행을 촉구하며 이상호 서울시의회 의원이 108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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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배."

13일 오후 5시 30분께, 서울 중구 서소문동 다산플라자 1층. 대리석 바닥에 '쿵' 하고 무릎을 찧는 소리가 들렸다. 민주당 소속 이상호 서울시의원이 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한참 후에야 이 의원은 신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108배."

주위를 맴돌며 한 시간이 넘게 이를 지켜보던 20여 명의 서울시의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크게 한숨을 쉬는 이도 있었다. 한명희 서울시의원이 다가갔다.

"수고했어."

그리고 이상호 의원을 일으켰다. 보좌진은 황급히 휠체어를 가져와 이 의원이 자리에 앉는 것을 도왔다. 이 의원은 108배 후 "(서울시가) 조속히 (예산을) 집행해주시길 기원한다"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108배. 비장애인이라면 별 무리 없이 빠른 시간 내에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장애 때문에 스스로 "제 신체 구조에선 고통스러운 일이다"고 말하는 이 의원이 108배를 하려면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런데 이게 4일째다. 게다가 13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서울시의회에서 의결한 장애인 복지 예산을 서울시가 신속히 집행하라는 것이다.

"비극을 대가로 한 예산 집행 발목 잡는 서울시, 비겁하다"

이로부터 3시간여 전. 서울시의회에선 제230회 임시회 1차 본회의가 열렸다. 회의 막바지에 휠체어를 탄 이상호 의원이 의원들 앞에 등장했다. 이 의원은 담담한 목소리로 신상발언을 시작했다.

"장애인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릅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르면,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낙태'의 위기에서 살아남았다는 의미에서 '생존자'라는 명칭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 의원은 "미국의 경우, 보수와 진보를 넘어 장애인을 낙태시키거나 시설에 감금해 지역 사회와 분리하지 않고 자립을 보장했을 때 지역생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며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동등한 기회 평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의원은 현재 서울시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시간 확대',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장애인 전세주택 제공사업' 등 장애인의 생존과 밀접한 예산을 집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는 "4·20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는 서울시가 1억여 원이 넘는 전시예산을 책정했다"며 "시의회에 5개월 넘게 출석하지 않은 오세훈 시장이 이미지 홍보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비극을 대가로 한 가장 절박한 예산에 발목을 잡고 있는 서울시의 판단은 분명히 잘못됐으며 비겁한 행위"며 "예산이 집행되기 위해 시장이 만 배를 하라면, 십만 배를 하라면 하겠다. 쓰러질 때까지 단식을 시켜도 하겠다"고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자리에 돌아가는 이 의원을 향해 의원석에서는 "수고했다", "잘했다"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허광태 서울시의회 의장은 "무엇이 서민들에게 도움이 될지를 (서울시가) 생각하는 것이 민정일 것"이라며 이 의원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동료 의원들 지켜보는 가운데 이상호 의원 108배... 몸싸움도 벌어져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다산플라자에서 108배를 하기 위해 들어오려던 이상호 의원 일행과 다산플라자 경비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 경비원들과 실랑이 벌이는 이상호 의원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다산플라자에서 108배를 하기 위해 들어오려던 이상호 의원 일행과 다산플라자 경비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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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종료 후 이 의원과 보좌진, 서울시의회 의원들, 그리고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온 장애인들은 현수막을 앞세워 다산플라자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문을 열라"는 이 의원 일행과 "그럴 수 없다"는 경비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며 몸싸움이 벌어졌다.

실랑이 끝에 다산플라자 로비에 자리한 이 의원은 "(오세훈 시장) 자신이 불법을 저질렀으면서 시의회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발목을 잡고 있다"며 108배를 시작했다. 이는 지난 1월 서울시가 서울시의회에서 의결한 2011년도 예산에 대해 '불법증액'이라며 재의를 요구한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기옥 의원은 "가슴이 무너진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는 "(의회에서) 증액한 예산이 전부 복지예산"이라며 "오 시장에게 양심이 있다면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갑 의원은 "(오 시장과 서울시가) 복지를 부르짖으면서 편성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이상호 의원이) 너무 성격이 좋아 모든 의원들이 존경한다. (108배를) 대신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명희 의원이 "이상호 의원과 함께 하겠다며 배낭을 챙겨온 의원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산플라자에 들어오며 있었던 몸싸움에 관해 묻자, 한 의원은 "일정에 대해 (이상호 의원실에서) 미리 보도자료를 냈으니 막은 것 아니겠냐"며 "의원들이 없었다면 큰 충돌이 있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동안에도 그는 이상호 의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상호 의원이 소속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규영 의원도 한쪽에서 이 의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 의원은 "(이상호) 의원님 말처럼 장애인 활동보조 예산은 하면 좋고 안 하면 어쩔 수 없는 예산이 아니라, 장애인의 생존이 담보된 예산"이라며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많은 토론 끝에 의결했는데도 (서울시가) 불법이라 주장하며 예산을 집행하지 않는 것에 의원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규영 의원은 이상호 의원이 108배를 시작한 지난 8일 몸이 불편한 이상호 의원을 대신하겠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이 의원의 뜻을 꺾지 못하고 곁에서 함께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 "모두들 (이 의원의 뜻에) 동의하고 지지한다"며 "민주당 소속이 아닌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마저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못하지만 마음 아파하고 안타깝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정의와 안전을 지켜준다'는 서울시 상징 해치, 정말 상상 속에만 있나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다산플라자 로비에서 장애인 복지예산 집행을 촉구하며 108배를 마친 후 이상호 의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108배 후 눈물 흘리는 이상호 의원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다산플라자 로비에서 장애인 복지예산 집행을 촉구하며 108배를 마친 후 이상호 의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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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운데 이상호 의원은 묵묵히 108배를 시작했다. 숨이 가빠오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신음소리를 뱉어내기도 했지만 단호한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 번씩 절을 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이 길어졌다. 시의원들은 "힘내라"를 연호하며 곁에서 이 의원을 응원했다.

그리고 108배를 다한 이 의원이 휠체어에 앉았다. 함께 있던 서울시 의원들은 이 의원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 의원도 이들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 의원이 "서울시의회 만세!"라고 외치자, 커다란 박수가 터졌다.

이후 이들은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108배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밖에 있었던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장애인들이 합류했다. 이 의원과 서울시 의원들, 그리고 장애인들은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김종욱 의원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는 이 의원에게 "오래 (투쟁을) 하려면 책을 갖고 와야겠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할 일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자리를 뜬 김 의원은 "(이상호 의원이) 짠하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김 의원은 "장애 문제를 장애인에게만 넘기는 건 천박한 사회"라며 "국격을 이야기하는데, 소외된 사회적 약자에게 배려할 줄 아는 것이 진짜 국격이라고 생각한다"고 서울시와 오 시장을 향해 날을 세웠다.

"의원이 108배나 단식농성 말고 의회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일부의 반론을 들려주자, 김 의원은 "의원이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하지만 이것(108배와 단식)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서울시와) 협상이라도 이루어지면 모르겠는데,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이상호 의원은) 아주 훌륭한 의원이다. 이번 일도 힘 있게 승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나도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단식에 들어간다. 이상호가 끝낼 때까지!"

한편, 이상호 의원실의 정현지 의정조사원은 "앞으로 이상호 의원이 108배와 단식 농성을 하는 동시에 의원으로서의 활동도 수행할 것"이라며 "많은 의원들이 릴레이 단식이나 지지 단식 등 참여 의사를 밝혀 날짜를 조율 중"이라 전했다.

이상호 의원이 108배를 한 다산플라자 입구에는 활짝 웃는 해치상이 있다. 이 해치상 밑에는 "서울 상징 '해치'는 정의와 안전을 지켜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상의 동물"이라고 적혀 있다.

이날 한 시의원은 해치상의 사진을 찍으며 "해치가 상상 속의 동물이라는데, 진짜 (복지는) 상상만 하나 보다"고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다른 시의원이 답했다.

"참, 아이러니하네."

그리고 이들은 이상호 의원과 해치상을 번갈아 보며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108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상호 의원과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규영, 김종욱, 이상호 의원.
▲ 이상호 의원과 함께하는 서울시의회 의원들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108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상호 의원과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조규영, 김종욱, 이상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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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상호, #장애인 복지예산, #오세훈, #서울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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