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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댄스는 20세기 이후, 각 문화의 전통 무용이나 발레, 모던댄스 등의 이른바 순수무용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은 대중문화 기반의 춤을 일컫는 용어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비보잉, 팝핑, 락킹 등의 올드스쿨 장르와 뉴스타일 힙합, 하우스, 크럼프, 왁킹과 같은 뉴스쿨 장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흑인, 히스패닉 기반의 펑크, 힙합 문화로부터 유래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런 스트리트댄스는 역사가 길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그 역사가 더더욱 짧을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그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현재 부산에서 스트리트댄서로 활동하고 있는 서덕구씨와 김성원씨 두 분을 만났다. 서덕구씨는 댄스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이고 김성원씨는 FIZZ라는 팝핀팀의 댄서이다.

 

스트리트댄서와의 만남

 

서덕구씨는 자신이 춤을 시작한 계기와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 해줬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부모님도 반대하시고 정말 친한 친구까지도 반대를 했다. 하지만 춤이 너무 좋았고 꼭 춤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춤이라는 것 자체가 돈이 되는 시기가 아니였기 때문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춤을 추면서 생활을 했다. 우유배달도 하고 순두부 가게에서 일해보기도 하고 신문도 돌려봤다. 돈이 너무 없어서 버스도 못타고 집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으면 힘이 났다. 그 음악을 듣고 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힘든 일들을 다 떨쳐낼 수 있었다."

 

김성원씨는 자신이 겪었던 부정적인 시선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용골(용두산 공원)이나 사직 등 여러 곳에 춤을 추는 무리들이 있었다. 누군가가 오디오를 가지고 와서 음악을 틀어 놓는다. 그러면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이고 주위를 둘러보면 각자 춤을 추고 있다. 처음에는 누가 누군지 몰랐다. 그냥 그렇게 춤을 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춤을 통해 서로 알게 됐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울 경우에는 연습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이런 날에도 연습하기 위해 춤 추는 사람들끼리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사람들끼리 돈을 모아 지하에 있는 월세를 계약하고 그 곳에서 연습을 했다.

 

그런데 춤을 추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다. 사람들이 껄렁껄렁한 양아치로 보기도 하고 한심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경찰이 와서 신고가 들어왔다며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그 때 춤만 추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신고를 한 것이다. 단지 춤을 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불합리한 것도 많이 당했다. 춤으로는 돈이 안 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일을 하기 위해 공사장에 찾아갔다. 감독관이 뭐하냐는 질문을 했고 나는 춤을 춘다는 대답했다. 그러자 감독관이 사회악인 마냥 좋지 않은 말을 했다."

 

이들의 말처럼 그들은 춤이 제대로 자리 잡기 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주위의 반대와 좋지 않은 시선들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의 스트리트댄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때 힙합이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스트리트댄스는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지 않았고 희미하게만 그것들을 접할 수 있었다. 춤을 추고자 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뮤직비디오에서나 잠깐 나오는 춤을 보거나 외국에서 힘들게 구한 스트리트 댄스와 관련된 비디오들을 통해 그것들을 접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춤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기 때문에 스스로 연구하고 연습을 했다.

 

가끔씩 들어오는 행사에 나가서 수입을 조금씩 얻을 수 있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춤만으로는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문배달이나 막노동 같은 일들로 그 부분을 해소해야 했다. 이렇게 그들은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춤을 추고 연구를 하면서 생활했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이 지나고 '멤시멈 크루', 'T.I.P'이라는 비보이 팀들이 'UK 비보이 챔피언십', '겜블러'라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그게 이슈가 되면서 스트리트댄스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계기들을 통해 지금은 스트리트댄스가 많이 보편화 되었다. 대학교에서도 댄스동아리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스텝업', '스트리트댄스'라는 댄스와 관련된 영화들이 등장 했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힙합고 D반', '댄스 오브 소울'과 같이 스트리트댄스를 주제로 하는 뮤지컬이 등장하기도 하고 댄스 학원도 많이 생기면서 전문 댄서를 꿈꾸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춤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기성세대의 경우 자식들이 춤을 추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이 자식들을 연예인으로 만들려고 댄스 학원에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춤도 경쟁력이다'라는 말이 생길 만큼 춤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이 많이 생겼다.

 

지금의 스트리트 댄서들은 현재 우리나라에 스트리트댄스 문화가 정착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그들은 춤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들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을 받으며 개척되지 않은 영역을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면서도 항상 춤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예전 좋지 않았던 시선을 받았던 그들이 지금은 이들이 세계 댄스 대회에 나가 한국을 널리 알리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무수한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쳐줘야 한다.


태그:#문화, #춤,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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