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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과 맛이 봄에 딱 어울리는 더덕생채.
 향과 맛이 봄에 딱 어울리는 더덕생채.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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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은 요술을 부리는 것 같다. 따스한 기운에 꽁꽁 얼어붙은 대지가 풀렸다. 풀린 땅이 부드러워졌다. 땅이 풀리니 적막한 시골마을에도 생기가 돈다. 우리 집 마당 앞길로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달린다. 이웃집아저씨가 밭에 쓸 두엄을 나르는 모양이다. 기계음이 안개 낀 아침공기를 가른다. 봄을 맞아 밭 갈고 씨 넣을 시기가 다가왔다.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가 내게 묻는다.

"당신, 오늘 뭐할 거예요. 우리 봄맞이 대청소 어때요?"
"청소는 당신이 맡아서 잘하면서…. 난 유실수 가지도 쳐주고, 밭에 퇴비도 깔아야 하는데."

전지가위, 작은 톱을 챙기는 나를 보고 아내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청소를 시켜먹으려다 말값도 건지지 못하고 혼자하려고 하니 짜증이 나는 것 같다.

현관문을 빠져나가는 내게 뭔가 생각난 지 한 마디를 던진다.

"그럼, 봄 입맛이나 맛보게 더덕이나 몇 뿌리 캐고 일 하지?"
"더덕을 캐?"
"새움 올라오기 전에 캐야 맛도 좋고, 영양도 좋다던데요."
"그런가? 그럼, 당장 캐보지 뭐!"

봄을 이겨낸 더덕에서 생명력을 느끼다

밭에 나와 흙을 밟으니 참 좋다. 봄 흙냄새가 느껴진다. 사람이 살며 흙냄새를 맡고, 그 흙에 작물을 가꿔 먹는 게 얼마나 좋은가.

한여름 줄기를 뻗어 지주를 감는 더덕. 자랄 땐 기세가 등등하다.
 한여름 줄기를 뻗어 지주를 감는 더덕. 자랄 땐 기세가 등등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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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밭으로 길을 옮긴다. 한창 자랄 땐 줄기가 지주를 감고 또 감아 기세를 떨치던 게 검불이 되어 색이 바랬다. 맥이 풀린 더덕 줄기는 힘이 하나도 없다. 가을에 씨를 맺고 맹추위에는 도리가 없는 듯싶다.

'요 녀석들 죽지 않고 새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있을까?'

더덕밭 땅속세상이 궁금하다. 무성하게 자랄 때 모아둔 힘을 땅속에 감추지 않았을까? 검불을 걷으니 지난 가을에 맺힌 씨들이 떨어진다. 떨어진 씨로 새싹을 틔어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리라.

창문 너머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봄에 검불로 변한 더덕줄기.
 봄에 검불로 변한 더덕줄기.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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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 캐는 데, 나도 좀 도와줄까요?"
"자긴 청소 한다며!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구!"
"더덕 향이 궁금해요! 밑이 얼마나 들었을까?"

아내가 어느새 호미를 들고 거든다. 내가 삽질해놓은 자리를 아내는 조심스레 더덕을 고르고 털어낸다.

제법 밑이 통통하다. 더덕 표면의 주름이 빼곡하다. 우리네 고달픈 삶의 얼굴을 더덕 뿌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더덕뿌리를 보니 예전 농사일에 이력이 난 부모님 검은 손등이 연상된다. 고생을 많이 하면 주름이 깊은 이치는 모진 겨울을 이겨낸 더덕과 같지 않나 싶다.

우리가 수확한 더덕뿌리. 볼품은 없어도 귀하게 여겨졌다.
 우리가 수확한 더덕뿌리. 볼품은 없어도 귀하게 여겨졌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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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더덕에 붙은 흙을 털어내며 코끝에 갖다 대본다.

"여보, 생긴 것은 되게 못 생겼는데 향기는 괜찮네! 우리 더덕이 몇 년생인가? 삼년생인가, 사년생인가?"

제멋대로 뻗은 더덕뿌리가 볼품없다. 그래도 우리가 애써 가꾼 더덕인지라 소중한 생각이 든다.

진한 향기로 말하는 더덕

우리는 자투리땅에 더덕을 조금 심었다. 그러니까 심은 지 햇수로 사년이 넘은 것 같다. 봄마다 싹이 트기 전 두엄이나 썩은 깻묵을 뿌려준 것이 전부인데 잘 자라고 있다. 줄기가 자라 하늘 향해 팔 벌려 허우적거릴 때 지주를 세워주면 지주를 타고 비비꼬며 자란다.

영롱한 빛깔의 이슬을 안고 있는 더덕잎. 쌈채소로 먹거나 데쳐 나물로 먹기도 한다.
 영롱한 빛깔의 이슬을 안고 있는 더덕잎. 쌈채소로 먹거나 데쳐 나물로 먹기도 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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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은 엄동설한에도 질긴 생명력으로 버텨낸다. 봄에 올라오는 올망졸망 새싹은 앙증맞기 그지없다. 더덕 잎에 살포시 내려앉은 영롱한 이슬은 참 신비스럽다.

어린잎은 쌈으로 먹고 살짝 데쳐 나물로 조물조물 무치면 그 맛이 아주 좋다. 칼슘성분이 많아 영양상으로도 우수하다.

좀 더 자라 줄기가 지주를 감을 즈음 더덕은 향기를 뿜어낸다. 줄기를 조금만 건드려도 진한 더덕향이 묻어나온다.

종 모양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더덕꽃이다.
 종 모양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더덕꽃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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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피는 더덕꽃은 자주색으로 가지 끝에서 밑을 향해 달린다. 그 모양이 종 모양을 하고 있다. 더덕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릴 것 같다.

야생 더덕은 원래 숲속에서 자란다. 백색으로 모래땅에서 잘 자란다하여 사삼(沙蔘), 백삼(白蔘)이라 부르기도 한다. 잎이며 뿌리를 자르면 흰색의 즙액(汁液)이 나온다.

더덕 성분은 도라지나 인삼과 마찬가지로 사포닌류가 많이 들어 있다. 감기, 기침, 천식, 기관지염에 좋은 약효가 있다고 알려졌다. 더덕을 많이 먹게 되면 리놀산이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을 제거해주는 역할을 하여 중풍, 동맥경화, 고혈압 예방의 약용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서너 삽 캐낸 더덕이 수월찮다. 아내가 더 이상 캐지 말자며 막아선다.

"이사람, 좀 넉넉히 캐서 먹지, 아까워서 그래?"
"누가 파갈 것도 아닌데 그때그때 캐먹으면 좋죠. 이것만으로도 한 끼 먹을 것으로 충분한데요."

아내는 통통한 것으로 고르고 자잘한 것은 다시 땅에 묻는다.

씹히는 맛과 쌉쌀한 향이 그만인 더덕요리

더덕 다듬는 일은 만만찮다. 끈적끈적한 것이 달라붙어서 까는 게 좀 번거롭다. 손질이 까다롭다는 더덕을 아내와 함께 칼로 돌려가며 깎으니 순식간에 한 접시 가득이다.

"당신, 어떻게 할 거야? 난 더덕구이가 좋은데."
"그냥 고추장 양념장하여 끼얹어 먹으면 좋죠. 날로 먹어야 제 맛이지 않을까요? 다음엔 구워먹구요."

얇게 쪼개고 방망이질을 하여 부드러워진 더덕.
 얇게 쪼개고 방망이질을 하여 부드러워진 더덕.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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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담아 양념장을 끼얹으면 간단하고 맛난 요리가 된다.
 접시에 담아 양념장을 끼얹으면 간단하고 맛난 요리가 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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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간단한 더덕요리를 한다. 하얀 속살이 드러난 더덕을 납작하게 쪼개 잘근잘근 방망이로 두들긴다. 방망이질에 살이 약간 부서지며 좀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소담하게 접시에 담은 하얀 더덕이 참 예쁘다.

이제 양념장을 만들 차례. 아내는 고추장에 파, 마늘, 매실액을 약간 넣고 들기름을 약간 떨어뜨린다. 접시에 담긴 더덕에 양념장을 끼얹고 참깨를 술술 뿌리니 간단한 더덕 요리가 완성이다. 더덕생채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내가 한입 먹으며 호들갑이다.

"매콤한 고추장에 쌉쌀하게 씹히는 맛이 참 좋네! 우리 화창한 봄날 이웃집 어르신들 모시고 마당에서 더덕구이 파티 한번 열어보자구요. 막걸리 안주로 더덕구이가 잘 어울릴 거예요."

더덕구이로 막걸리 파티를 하자는 아내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태그:#더덕, #더덕요리, #더덕꽃, #더덕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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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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