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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가지면 덜 가질수록 자유롭게 살 수 있다'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리고 인생길 어느 때에는 정말로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았을 때 행복했다. 지나간 날들이니까 후하게 점수를 준 탓인지도 모르겠다.

현대인들은 소유한 것을 유지하려면 돈을 벌어야만 한다. 소유한 것만큼 행복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세뇌당하지만, 결국 그 늪에 빠지면 소유한 것들이 주인이 되어 개개인의 삶을 농락하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 아이들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세상에 우리 집 재정이 통신비로 '술술' 새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짜폰이라는 말에 속고, 혜택을 준다 해서 또 속고

SK텔레콤은 10일부터 스마트폰 18개월 이상 장기 사용자가 스마트폰 기변 시 10만 원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SK텔레콤은 10일부터 스마트폰 18개월 이상 장기 사용자가 스마트폰 기변 시 10만 원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 SK텔레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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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 한참을 거부했다. 구속당하기가 싫어서. 그 이전에 나온 삐삐나 시티폰도 마다했던 나였으니 휴대전화가 달가울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는 처지에서 휴대전화가 일반화되니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그것이 휴대전화와의 첫 대면, 그리고 거의 10년 가까이 휴대전화 하나로 잘 사용을 했다.

그런데 언제인가 휴대전화가 고장 날 즈음에 공짜폰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공짜로 새 기기를 준다니 마다하지 않고 휴대전화를 바꿨다. 2년 이상의 약정기간이 있긴 했지만, 전화번호만 바뀌지 않으면 된다 생각하고 별생각 없이 사용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통신비가 야금야금 내 삶을 갈아먹으려고 다가오는 줄을 알지 못했다.

약정기간이 지날 즈음이면 또다시 제공되는 공짜폰(엄밀하게 말하면 공짜가 아니지만), 그러더니만 지난 연말에는 고가의 스마트폰까지 공짜로 제공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할부기간이 남았다고 하니 위약금까지 물어주면서 가입을 권유하고, 아이들도 스마트폰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켜달라고 아우성이었다.

부모님까지 7인 가족, 그나마 부모님은 연로하셔서 휴대전화사용이 불편하시다고 하시어 나머지 5인이 5개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 2개는 일반 휴대전화고, 나머지 3대는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이 3대가 된 것도 가족끼리 묶으면 인터넷과 위성방송까지 공짜라는 꼬임에 넘어간 탓이다.

악마의 '속삭임'과 지름신의 '강림'

막내가 축구를 하다가 휴대전화가 깨졌단다. 요즘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이 대세라는 점원의 말과 막내아들의 간절한 요구에 아내는 이미 넘어가 있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둘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점원 왈 "싸모님, 하나만 더 하시면 인터넷하고, 집전화, 위성 모두 공짠데…"했다나. 퇴근하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잉~ 나야."
"왜그려? 왜 목소리가 그려? 뭐 사고쳤어?"
"아니잉~ 집 앞에 집앞에 있는 핸드폰 가게로 와봐. 막내가 스마트폰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자기 것도 바꿀 때 됐잖아."
"아니야, 아직 할부기간 남았는데?"
"그것도 내준대. 내가 계산해 보니까 자기 스마트폰 바꾸면 이익이야."

그 말에 홀딱 넘어가서 덜컥, 그 밤에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지름신의 승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 일주일, 스마트폰 기능을 익히느라 정신없었고, 이런저런 어플리케이션 게임과 프로그램들을 접하면서 대단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감탄했다.

"여보, 근데 우리 통신비가 얼마야?"

내 스마트폰은 3년 약정에 5만 5천 원짜리, 문자 100통에 통화 300분, 인터넷무제한이다. 내가 하는 일을 말하자 점원이 두말 할 필요도 없다고 추천해 준 것이다. 그런데 두어 달 써봤더니만 문자는 10통 미만, 통화는 120분도 못 쓰고, 인터넷도 거의 하질 않는다. 참, 아깝다. 통신사에서는 공짜 혹은 무료인 것처럼 사탕발림하지만, 돈을 다 냈는데 무슨 무료통화고, 무료메시지인가?

막내는 3만 3천 원, 역시 스마트 폰을 쓰는 큰아이 요금제는 뭔가 다르다고 했는데, 여하튼 물가상승으로 가계의 재정이 흔들리는 상황이니 어디선가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자가용 출퇴근은 포기한 지 오래고(사실은 사무실이 전철역 근처에 있어서), 책값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줄였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자꾸만 통장이 마이너스 한계점을 향해서 고공행진을 한다.

"여보, 우리 통신비가 얼마야?"

나는 대략 짐작으로 20만 원 정도일 것으로 생각했다. 가구당 월평균 통신비용 12만 6천 원보다는 조금 많지만 7인 가족이니까, 그 정도는 되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의 말대답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30만 원 정도 나가는데…."
"뭐? 그렇게 많이? 그러면, 십일조 꼬박꼬박 통신비에 바치는 거네?"

그랬다. 내 한 달 용돈보다도 배는 더 많이 나가는 통신비, 거기에 이런저런 공과금에 뭐에 통장이 마이너스를 향해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약정 3년이라, 해약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 년에 통신비로만 꼬박꼬박 360만 원을 지출해야 하는 셈이니 '에라, 혼자 살면 놀면서 살아도 돈이 남아돌겠다' 싶은 것이다.

통신 속도 따라가려다, 개고생

앎과 실천의 괴리, 그 현장이 바로 내 삶의 터전이고 가정이다. 적게 가질수록, 비울수록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욕심에 끌려 소유하고, 소유한 것 때문에 힘들어하고, 악순환의 되풀이를 당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내가 먼저 제 명에 못 살 것 같다.

그까짓 통신비 얼마도 못 내서 그러냐 싶어 자존심도 상하지만, 과연 그만큼의 통신비를 들여가며 세상과 소식을 주고받을(통신) 필요가 있을까? 이미,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서 차고 넘치는 세상 소식까지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싶어 안달하는 것 같다.

좀, 조용히 묵상하며 살아야겠다. 내 용돈의 두 배에 가까운 통신비, 나의 노후설계를 위해서는 단 한 푼도 모으지 못하면서 그냥저냥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도 좋을 소식들을 당겨서 듣느라 속된 말로 '개고생'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 살면서, 이렇게 개념이 없어진 줄도 몰랐다. 편리함과 속도의 노예가 되어버린 도시인의 군상이 아닐까 싶다.


태그:#통신비, #스마트폰, #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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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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