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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남한 단독 정부수립과 한국전쟁을 전후해 남한 전역에서는 수많은 여성, 노인, 아이들을 포함한 비무장 민간인들이 군인, 경찰, 미군, 우익단체 등에 의해 잔인하게 산, 들, 계곡, 강가 등지에서 학살당했다.

아무 죄도 없이 왜 죽어야 하는 줄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중한 생명들이 전쟁, 군사작전, 이념의 이름으로 총, 칼, 몽둥이에 맞고, 찔려 목숨을 잃었다. 더러는 차디차고 어두운 땅 속에 살아있는 채로 생매장되기도 했다. 다시는 이런 끔찍하고 잔인한 비극이 한반도에, 아니 인간사는 세상에서 없어야 할 것이다.

조동문씨는 현재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유족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유족회사무실은 전 진실화해위원회(진실위)가 있던 곳에서 걸어서 약 5분 거리에 있다. 진실위 근무할 당시 이곳을 방문 못한 것이 좀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족회 사무실을 방문하니 조동문 사무국장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인권과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항상 이렇게 열악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의구심과 조용한 분노가 일어났다. 애써 끓어오르는 설움과 비애감을 간신히 가다듬고 의자에 앉았다. 다음은 지난 2월 22일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동문 국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조동문 사무국장
▲ 조동문씨 조동문 사무국장
ⓒ 조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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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유족회는 언제부터 어떻게 생기에 되었는가?
"전국유족회는 1960년 4월 혁명이 일어난 그 해 10월 20일 '전국피학살자유족회'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에 의해 용공단체로 몰려 간부들이 구속되고 탄압받으면서 해체된다. 그 후 40년 동안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2000년 9월 7일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산하 유족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활동하였다. 그런 활동을 기반으로 2007년 6월 14일 유족들이 독자적으로'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라는 이름으로 새로 결성하여 출범하여 오늘에 이른다."  

- 유족회는 지방지부도 있나? 유족회의 전국적 규모와 회원수는?
전국 각 지역에 88개의 지부가 있다.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도 단위별로 유족회를 결성 중이다. 회원수는 5000명 정도이며 계속 회원들이 가입하고 있다."

- 유족회에서 파악하기에 한국전쟁 전후 대한민국 국가공권력에 의한 비무장 희생자를 몇 명으로 추정하나? 그리고 추정근거는 무엇인가?
"1960년 결성된 유족회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113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추정근거는 당시 전국유족회에서 각 유족들로부터 학살희생자 신고접수를 받은 수치에 의한 것이다."

- 2005년 12월 1일 출범하여 2010년 12월 31일 활동을 종료한 진실위 조사활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미완의 진실규명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금기시되거나 잊혔던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된 데에는 일정 정도 기여를 한 점도 있다. 그러나 왜곡되고 잘못된 과거사를 밝히는 데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철저하게 그리고 제대로 된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 정부, 국회, 사회가 이제라도 막중한 책임을 지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위는 결국 이념이나 정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온전한 진실규명은 못하고 5년이라는 시한에 급급하여 졸속 위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 유족회 활동을 통해 가장 어려운 애로사항과 느끼는 보람은?
"수십 년 한으로 살아오신 유족들이 이제라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들의 해원을 위해 진실을 밝히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데…. 여러 사정(예, 너무 늙었거나 아직도'빨갱이'라는 차가운 시선 등)으로 인해 학살에 대한 사실을 묻어두고자 한다. 굳이 보람이라면 그래도 함께 울고 웃어 줄 유족들이 곁에 있어서 이제라도 행복하다는 유족들 한 분 한 분이 유족회 문을 두드려 줄 때다." 

학살
▲ 학살 학살
ⓒ 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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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위 신청사건의 약 75% 이상이 집단희생, 즉 민간인학살 사건인데, 진실규명 후 몇몇 인권침해 사건관련 하여서는 적게나마 재심을 통해 희생자나 유가족들에게 배보상 조치가 이뤄졌다. 반면 집단희생 사건은 그 피해자나 사건의 규모가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재심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울산보도연맹사건은 재심을 통해 1심에서 유족이 승소했지만 2심에서는 오히려 패소했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왜 일어나나?
"사법부가 국가가 불법적으로 저지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에 대한 소송을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지 않고 한 마디로 정치적인 잣대로 판단을 하여 판결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족들을 두 번 죽이는 사법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사법부는 법과 양심에 따라 국가가 저지른 불법적인 만행에 대해 단호한 심판을 해주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사법부가 또 다시 정치적인 잣대로 판결을 한다면 유족들은 진실과 인권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사법부를 반드시 역사의 법정 앞에 세울 것이다."

- 인권이나 생명존중의 문제는 보수나 진보를 떠나서 민주사회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기본가치 중 하나라고 본다.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집단학살 희생자들을 위한 배·보상관련 특별법이 왜 필요한지 그 목적과 취지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의원들이 협조적으로 귀 기울여 주는가? 냉담한 의원들이 있다면 내년도 총선 전에 공약을 받아내야 하지 않나?
"물론 상식적으로는 인권이나 생명 존중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특별히 관심이 없다. 또한 여와 야에 따라 민간인학살관련 입법(배보상 특별법 등)문제를 받아들이는 온도차도 크다.

이에 유족회는 올 한해 여야에 상관없이 국가가 저지른 불법적인 만행에 대해 인권과 생명존중의 연장선에서 배·보상 관련 특별법 등 입법 발의에 적극 동참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고 함께 해줄 것을 촉구하는 여러 방안(예, 지역유족회별 해당 국회의원 면담, 설득)등을 강구하고 있다."

청와대앞에서시위중인 유족
▲ 청와대시위중인유족 청와대앞에서시위중인 유족
ⓒ 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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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23일'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희생자를 위한 전국합동추모제'와 관련하여 청와대에 공개질의서를 전달하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그 주요내용은 무엇이고 청와대에서 답변을 받았는가?
"지난해 12월 1일 열렸던, 정부가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전쟁전후로 학살당한 민간인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마땅히 대통령이 참석하여 사죄하고 향후 명예회복 등에 대해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제시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는 아무런 답변도 주지 않았다."

- 진실위의 진실규명 신청기간이 1년으로 너무 짧았던 이유 등으로 진실규명신청을 하지 못한 미신청 희생자들은 몇 분으로 추정하나? 그리고 추정근거는?
"대략 10만 명 가까운 것으로 추정한다. 백 만 명이 넘는 학살희생자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는 60년이라는 세월 앞에 유족들은 돌아가고, 잊고 뿔뿔이 흩어져서 그 정도 숫자라고 관련 학자들이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추정하고 있다."

- 진실위가 없어진 상황에서 미신청 희생자들에 대한 진실규명과 그에 따른 명예회복 조치 등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시적인 진실위와 같은 위원회가 아닌 보훈처처럼 상설기구를 설치하여 항시적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 향후 유족회의 과제가 진실위가 권고한 사항(예, 배·보상 특별법 제정, 과거사재단 설립, 유해 발굴 및 안장 시설 등)에 대해 정부가 후속조치를 이행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정부를 설득할 계획인가?
"참으로 난감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고 거의 자기 말만 하는 대통령이다. 거기다 과거사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깝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은 당연히 정부에 대해 요구하고 설득할 것이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만든 진실위에서 조사하여 진실을 밝히고 그것에 대해 권고한 사항이다. 우선 정부와 청와대를 향해 공개질의서, 면담 등을 통해 권고사항을 이행하도록 촉구할 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백만 청원, 1인 시위 등을 통해 유족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 진실위 이영조 위원장 체제에서는 특별히 포항미군폭격사건 등 미군관련 사건에 대해 대대적인 면죄부를 주었다는 비판이 많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정부의 책임문제제기에 아주 냉담한 상황에서 유족회라도 미국정부에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 않나?
"당연하다. 미군관련 사건뿐 아니라 한국전쟁 자체에 대해 미국이 책임져야 할 사항이 많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의도하였든 하지 않았든 미국의 정책에 의해 일어난 20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래서 유족회는 우선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에 대한 책임과 사과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그래서 유족회는 올 한해 유엔본부, 미백악관, 미의사당 그리고 주한미대사관 등을 상대로 미국의 책임을 묻고 사과를 받아 낼 것이다. 향후 지속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할 예정이다."

- 향후 유족회의 주요한 활동계획은?
"우선 정부와 국회가 진실위에서 정책으로 건의한 특별법(배보상관련, 과거사연구재단설립, 유해 발굴 및 안장시설 등)을 제정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미신청 유족들을 찾아내는 일에도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전국유족회가 결성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전쟁 전후로 일어난 민간인학살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잊힌 사건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당시에 억울하게 희생된 피해자나 유가족들은 지금도 말 못 할 고통과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나 사회가 이것을 올바로 해결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일반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홍보도 적극 추진할 예정이다.

독일은 2차 대전 당시 학살당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베를린 중심가에'유대인학살추모공원'을 2004년 건립하고 2005년 제막식을 하였다. 그 해 3500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다녀가는 명소로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 정부와 국회도 될 수 있는 한 서울 도심에 빠른 시일 내에 추모공원을 건립하여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간인들을 추모하는 추모일을 제정해야한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학살의 만행이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고 길이 후세에 교훈으로 남길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조동문 사무국장 약력

-1958년 경북 포항 출생
-지방공무원(과천시청)(1986~1990)
-한겨레신문 지국장(1991~1992)
-아름다운가게(2003~2006)
-전국유족회(2007~현재)



태그:#민간인학살, #한국전쟁유족회, #조동문, #진실화해, #김성수, #과거사위 이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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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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