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이라는 민영의료보험 광고 카피가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도 케이블 TV를 켜면 프로그램 사이마다 민영의료보험 광고가 판친다. 몸이 아프면 병보다 병원비가 걱정인 사람들에게 민영의료보험은 진실로 위안을 삼을만할까? <오마이뉴스>와 <진보신당>은 공동기획을 통해 다섯 차례에 걸쳐 민영의료보험의 실체를 해부해봤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한다. [편집자말]
일자리 불안, 보육·교육 불안, 주거 불안, 건강 불안, 노후 불안을 흔히 '민생 5대 불안'이라고 한다. 한국에 태어난 죄로 한국인들은 평생을 이런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독립하기 전까지 수 억 원의 교육·생활비가 들어가고, 독립해야 하는 시점에는 정작 변변찮은 일자리를 찾기가 어렵다. 내 집 마련의 기대는 아예 접는 수밖에 없다.

근근이 버티며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건강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 무슨 중병에 걸릴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 보험 하나는 가입해야 한다. 자식을 다 키워놓은 후에는 죽기까지 남은 20여 년의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민생불안 중에서, 민영의료보험을 중심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과연 사보험은 가장의 건강을, 그리고 노후를 보장해줄 '보장자산'이라고 믿어야 할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보험인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2008년 '한국의료패널'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가구 중 78%가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며, 가구당 무려 3.6개의 민영의료보험을 갖고 있었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어르신들은 민영보험회사의 암보험이나 실손형보험에 가입하기 어렵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한 장면. 어르신들은 민영보험회사의 암보험이나 실손형보험에 가입하기 어렵다.
ⓒ 세인트 폴 시네마

관련사진보기



우리 국민들은 건강보험의 취약한 안전망 때문에 생긴 '불안'을 민영의료보험으로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든든할까? 사실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한 많은 사람들은 든든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정작 사보험의 혜택을 받고자 할 때, 이런 저런 명목으로 해당이 안 된다는 설명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월요일에 로또복권을 사면, 일주일이 내내 행복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토요일 저녁에 꺾이고 마는데, 이와 비슷한 상황인 것이다.

민영의료보험의 실상을 좀 더 파헤쳐보면 민영의료보험으로는 결코 우리의 노후 건강과 의료비 부담을 대비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파헤쳐 보자.

민영의료보험의 거부대상인 '어르신들'

자, 여기 한국형 대가족 한 가구가 있다고 치자. 70세 할아버지·할머니, 40세 부부, 10대 남매. 이렇게 여섯명으로 이뤄진 가족이 있다고 하자. 이 가족은 40세 가장이 연봉 6천만 원으로 안정된 중산층 수입을 거두고 있다고 치자.

이 가족은 혹시나 모를 불의의 건강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사보험에 들기로 한다. 보통 사보험은 ▲ 어린이 보험 ▲ 암보험 ▲ (사고나 질병으로 중병 상태가 계속될 때 보험금의 일부를 미리 받을 수 있는) CI 보험 ▲ 실손형 보험 ▲ 실버보험 등으로 이루어진다. 흔히 가입하는 보험은 암보험과 실손형 보험이다. 이를 중심으로 설명해보자.

우선 이 가족 구성원들이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하려한다고 치자. 먼저 70세 노령층은 암보험이나 실손형 보험에는 가입할 수 없다. 아예 가입거부 대상자다. 노령층에서 가입이 가능한 보험은 소위 실버보험이나 상조보험 정도다. 실버보험은 중증 치매 혹은 극히 제한된 일부 질환의 의료비만 보장해주므로 사실상 보험으로서의 가치는 없다. 또 40세라고 하더라도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 있으면 가입이 쉽지 않다. 혹은 할증보험료를 부담하거나, 관련된 합병증으로 인한 혜택은 전혀 받지 못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암보험이나 실손형 보험은 주로 30~40대의 젊고 건강한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가족단위 보험인 통합보험 역시 어르신들은 배제한다. 그런데 가장 보험이 필요한 계층은 60세 이상의 노령층이다. 60세 이상의 노령층은 젊은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비지출이 많아진다. 다음 그래프를 보자.

2008년도 연간 300만원 이상 고액진료환자수, 1만명당
▲ 그래프1 2008년도 연간 300만원 이상 고액진료환자수, 1만명당
ⓒ 국민건강보험공단

관련사진보기


'그래프1'은 국민건강보험 공단이 발표한 자료로, 2008년도 고액진료 환자수다. 1만명당 환자수를 보면 30대, 40대의 젊은 층에서는 100명당 1~2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60세 이상을 보자. 무려 100명당 10~20명을 넘어선다. 10배 이상 증가한다. 그것도 단 1년동안에 말이다. 노후기간이 단 1년도 아니고 보통 20년 정도라 할 때 어느 누구도 이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의료비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는 노령층은 민영의료보험 가입거부 대상이다. 이유야 쉽게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암 발생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 10만명당 암발생률
▲ 그래프2 2008년 10만명당 암발생률
ⓒ 국민건강보험공단

관련사진보기


남성의 경우, 암 발생률은 30대부터 10년씩 증가할 때마다 2~3배씩 올라간다. 30대와 60대의 암 발생률은 거의 20배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암보험 역시 60세 이상은 가입을 못한다.

민영보험사가 노인에게 암보험 팔지 않는 이유

이런 자료는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KDI의 민영의료보험 가입 분석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30~40대는 70%를 상회하는 반면 60세 이상에서는 가입률이 뚝 떨어진다.

.
 .
ⓒ KDI

관련사진보기


자, 그렇다면 우리의 70세 어르신은 어떡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노인이 되면 어떡해야 할까? 늙은 후엔 보험가입을 시켜주지 않으니, 아예 젊었을 때부터 노후까지 책임져주는 암보험, 실손형 보험을 들어놓을까?

여기 L보험사의 암보험의 보험료 사례가 하나 있다. 10년 납입, 10년 만기 순수보장형 상품이다. 30세의 경우는 월 보험료가 1만2700원으로 저렴하다(사실은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근데 40세의 경우엔 2만5200원으로 2배가 조금 넘는다. 50세의 경우엔 또다시 2배가 더 증가한다.

그렇다면 60세의 보험료는 얼마일까? 70세는? 이들은 가입 권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회사들은 이를 밝히지 않으나, 충분히 예상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암보험의 발생률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이가 10살씩 증가할 때마다 암 발생률이 2~3배 증가한다고 하였다. 이를 염두에 두면 60세는 12만 원 정도 될 것이다. 70세는? 25만 원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들 알다시피 60세가 넘으면 사회생활에서 은퇴를 하게 되어 연금소득 정도를 제외하면 실제 근로소득은 없다. 대부분 자녀가 주는 용돈으로 노후를 근근이 유지하는 게 우리 어르신들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 만 원에 이르는 보험에 들기란 쉽지 않다. 민영보험회사가 노인층을 대상으로 암보험이나 실손형 보험을 판매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즉, 구매력이 없어 시장의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노후를 보장해줄 것처럼 과대 포장해 1~3만 원 규모의 실버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들 실버보험은 노인층 의료비의 10분의 1도 책임져 주지 못한다.

.
 .
ⓒ 화면캡쳐

관련사진보기


실손형 보험은 3년마다 보험료가 급증

그렇다면 최근 유행하고 있는 상품인 실손형 보험은 어떤가? 실손형보험은 80세 혹은 100세까지 보장한다고 선전한다. 과연 그럴까? 여기 M화재의 실손형 보험상품의 예가 있다.  

.
 .
ⓒ 화면캡쳐

관련사진보기


사실 실손형 보험상품은 이해하기 쉽지 않도록 되어 있다. 대다수가 한번 보험료를 내면 그 보험료대로 계속 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위 상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00세 만기는 주계약, 즉 상해사망에 대해서만 해당하고 골절, 화상은 80세까지만 보장된다.

그렇다면 정작 중요한 '실손의료비'는 언제까지 보장해줄까? 80세? 100세? 아니다. 단 3년뿐이다. 실손의료비는 3년마다 계약 갱신을 하도록 되어 있다. 3년 후에는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보험료가 오른다. 10년 만기 암보험이야 10년 마다 보험료가 오르지만 실손형 보험은 3년마다 보험료가 오른다. 그리고선 100세까지 갱신할 수 있단다.

그럼 도대체 3년마다 보험을 계속 갱신하다보면 얼마나 오를까? 이건 나도 잘 모르겠다.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측은 해볼 수 있다. '그래프1'을 다시 보자. 연령별로 300만 원 이상의 고액진료 환자수를 보자.

30대와 60대의 고액진료 환자 수는 무려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즉, 60대는 3년마다 갱신되는 실손 보험료(실손특약보험료만 해당)도 10배 이상 증가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과연 실손형 보험료를 80세, 100세까지 유지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몇이나 될까. 이제 실손형 보험상품이 판매된 지 갓 5년이 지나고 있을 뿐이다. 아마 갱신 주기가 찾아올 때마다, 보험료가 증가하는 것에 많은 보험가입자들은 경악하게 될 것이다.

가장의 부담으로 모든 가족이 혜택 누리는 '건강보험'

이렇듯 민영의료보험은 결코 우리의 부모님의 건강을, 우리의 노후를 책임져 줄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민영의료보험의 특성 때문이다. 민영의료보험은 보험료 책정에 있어 집단위험률이 아닌 개인위험률을 선택한다. 개인의 질병위험이 높을수록 보험료는 높아진다. 소득은 없어지고, 질병위험이 높은 고령층이 민영의료보험 가입에서 배제되거나, 매우 높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 민영의료보험은 가족이 아닌 개인별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따로 따로 가입해야 한다. 웬만한 중산층도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위와 달리 건강보험의 효과를 보자. 앞의 가족은 40세 가장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로 인해 70세 어르신, 10세 아이들이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부모와 처자식들 모두가 피부양자로 등록되어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린다. 건강보험이 가지고 있는 세대간 소득재분배효과 때문이다. 능력이 있는 젊은층이 부담하고 질병위험이 높은 어르신들이 더 많은 혜택을 본다.

또 건강보험료는 민영의료보험처럼 개인위험률이 아니라 소득에 비례해서 부담하도록 한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내고 소득이 적은 사람은 더 적게 낸다. 계층간 소득재분배 효과를 가진다. 또한, 기업과 국가가 절반정도를 부담해준다.

소득이 있는 젊은층들의 경우 지금 내는 건강보험료가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를 부양하고, 더불어 우리가 늙었을 때를 위한 보험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아까운 것은 지금 내가 부담하고 있는 건강보험료가 아니라 민영의료보험료이다.

더욱이 민영의료보험은 내가 낸 돈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올 경우가 거의 30~4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첫 글(불안하니 사보험은 필수? 당신도 속았다, 로또보다 낮은 민영 의보 지급률의 실체)에서도 밝힌 바 있다. 민영의료보험 대신에 건강보험 하나로 우리 사회의 모든 병원비를 해결하자. 이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김종명 기자는 진보신당 건강위원장입니다.



태그:#민영의료보험, #건강보험, #노인, #실버보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보적 사회를 염원하는 의료인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