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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간, 지하철은 일터로 가는 사람들로 몹시 붐빈다. 나는 6호선을 타고 가다가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신당역에서 내린다. 그 시각이 대략 오전 9시, 내남없이 바쁜 걸음을 재촉할 때다. 2호선으로 가려면 두 번이나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갈아타기 쉬운 1호 차에서 내려 재빨리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모여든다. 가만히 서서 갈 사람은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서고, 걸어갈 사람은 왼쪽으로 선다.

두 줄 서기로 바뀐 지가 3년이 지났건만 그 어느 곳에도 그것을 안내하는 발자국이나 글은 보이지 않는다. 사정은 다른 역도 비슷하다. 두 줄 서기를 처음 시행할 때에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알림판을 세우거나 안내장을 나눠 주며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한 줄 서기를 당연하게 여긴다.

서 있는 어느 누가, 걸어 올라가는 사람에게 부딪쳐 중심을 잃고 쓰러진다면 인간 도미노가 따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20여 명이 줄줄이 넘어진 부산역 에스컬레이터 사고가 그런 사례다. 그뿐만 아니라 장애인 여성이 그렇게 넘어져 큰 부상을 당한 적도 있고, 앞사람을 따라 걸으려다 넘어져 머리를 심하게 다친 할아버지를 직접 보기도 했다.

최근 5년간 에스컬레이터에서 발생한 사고 유형을 보면 79.7%가 넘어져 구른 사고다. 그 다음으로는 끼임 사고 13.9%, 기타 사고 6.3% 순인데, 이처럼 넘어지는 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이용하는 사람들이 걷거나 뛰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스컬레이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불규칙해지고 기계의 마모도 심해지는데, 고르지 못한 움직임 탓에 고장도 더 자주 일으킨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여겼던 한 줄 서기를 두 줄 서기로 바꾸려 했을 때에는 이러한 문제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두 줄 서기가 못내 아쉬운 나는, 슬금슬금 왼쪽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꽉 잡고 올라선다. 순간, 숨 가쁘던 움직임이 마지못해 잠잠해진다. 따가운 시선이 내 정수리에 와 꽂힘을 느낀다. 줄을 잘못 섰다는 한숨이 들리는 듯도 하다. 더러는 비집고 올라갈 틈이 없을까 기웃거리기도 한다.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도 오른쪽으로 비켜서거나 걸어 올라가지 못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왼쪽다리가 불편한 지체 3급 장애인이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나는 손톱만 한 돌멩이 하나를 잘못 밟거나, 지나는 사람의 가방이나 보퉁이가 힘없는 다리에 슬쩍 스치기만 해도 힘없이 주저앉고 만다. 그래서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겹다. 게다가 바뀐 오른쪽 걷기가 더 많은 불편을 준다.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짚기 때문에 왼손으로 잡던 손잡이를 오른쪽에서는 잡을 수 없게 되어서다. 계단을 이용할 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큼 떠밀려 넘어질 위험이 크다. 그래서 더더욱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흐름을 방해하는 꼴이 되니 마치 법을 어기는 기분이다.

하루는 어떤 남자가 "왜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느냐?"라고 나를 호되게 꾸짖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해 손잡이를 꼭 잡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두 줄 서기가 자리 잡기까지 나는 언제 또 그런 나무람을 받을지 몰라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뒤가 두렵다.

한 줄 서기가 비단 나 같은 사람에게만 따르는 위험이고, 마음이 불편한 것일까. 더러는 뒷사람의 눈초리가 따가워 어쩔 수 없이 걷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 줄로 나란히 서서 가고 싶어도 그러한 눈치가 보여 오른쪽에 서는 사람은 한 줄로 서서 기다리는 만큼 더디 가는 불편을 겪을 터이다. 걸어가려고 왼쪽에 서는 사람 또한 긴 줄을 기다리는 시간을 따져보면 그렇게 빠른 것이 아닐진대, 굳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위험하게 걷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걸어가려면 곧장 옆 계단을 안전하게 이용해도 되지 않을까.

하루에도 몇 백만 명이 이용하는 지하철, 두 줄 서기는 우리의 안전벨트가 아닐는지. 안전벨트 착용이 다소 갑갑하고 불편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지켜주는 고마운 끈이듯이 두 줄 서기도 역시, 그러하리라 본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어쩌다가 붙은 노란 두 줄 서기 발자국에 걷지 말라는 글귀는 없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방향 안내로 생각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쪽 걷기로 이끄는 곳에도 발자국이 찍혀 있고, 승강장에도 기다리는 자리를 안내하는 그런 발자국이 있기 때문이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긴 띠를 10미터가량 나란히 붙여 그 위에

<걷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한 줄 서기는 옛말, 이제는 두 줄 서기입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던 아버지 말씀, 두 줄 서기로 실천합시다.>
<걸어갈 사람은 계단을 이용해 주세요.>

등의 구호를 새기면 어떨까.

손잡이 레일에도 같은 문구를 새겨 넣으면 좋겠다. 이따금 옆에 붙은 안내 쪽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백화점과 할인점 에스컬레이터에서 안전을 위해 손잡이를 꼭 잡아 달라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듯이, 지하철에서도 두 줄 서기의 안내 방송을 내보내면 더욱 좋겠다.

이제는 빨리빨리 문화가 아닌 우리의 귀한 생명을 지켜주는 그런 안전 문화로 성숙해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가 튼튼하게 뿌리 내리도록 우리 모두 애썼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매주 한 번씩은 아침에 시내에 나갈 일이 있어 갈 때마다 느낀 점을 꼭 쓰고 싶었습니다. 애초에 걸어갈 사람들은 계단을 이용하게 하지 왜 위험하게 움직이는 계단에서 한 쪽을 비워주게 했는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얼마 전 부산에서 20여 명이 줄줄이 넘어진 사고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사례가 평소 제가 우려하던 점이었습니다. 저 같은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은 조그만 스침에도 쉽게 넘어질 수 있습니다. 점점 고령화로 치닫는 우리나라입니다. 출근시간 그 복잡한 에스컬레이터에서 만약 넘어지는 사고가 난다면 그 피해는 엄청날 겁니다. 두 다리 멀쩡한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할 일, 저 같은 취약층이 주지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올립니다.



태그:#두 줄 서기 , #에스컬레이터 , #지하철 안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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