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0년 여름에 촬영한 반구대. 반구대 암각화는 이렇게 완전히 물에 잠긴 상태로 8개월을 나야 한다.
▲ 물에 잠긴 반구대(2010년 8월10일 현재) 2010년 여름에 촬영한 반구대. 반구대 암각화는 이렇게 완전히 물에 잠긴 상태로 8개월을 나야 한다.
ⓒ 유승민

관련사진보기


당신이 만약, 선택을 요구받는다고 치자.

"식수와 문화재, 둘 가운데 우선은?"

이 물음에 선뜻 문화재를 선택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장 부족하지 않은 물이라도 막연하게 부족에 대해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위의 물음에 공정심을 배제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현재, 울산시민들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그러한 물음조차 대해보지 못하고 국보를 잃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울산광역시는 최근까지 몇 차례에 걸쳐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이하 반구대)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냈다. 최근 입수한 자료에 의해도 2016년까지 이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훌륭해 보이는 계획을 발표만 반복할 뿐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어, 그 진정성에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이 계획들에는 꼭 따라다니는 전제가 있다. 바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로부터 용수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반구대 암각화는 태화강 상류의 사연댐 물에 잠겨서 일 년의 2/3를 보낸다. 그 탓에 훼손은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인데다가, 이제는 붕괴의 위험까지 지적되는 형편이다. 훼손은 그나마 낫다. 어느날 갑자기 붕괴되어 버리면 그날로 우리는 국보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므로. 그만큼 우리 국보는 심각하고 치명적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

이런 위기의 반구대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사연댐의 물을 일부 빼, 반구대가 물 속에 있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주는 것이 최선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자격을 얻는다.

바로 며칠 전까지도 울산시는 사연댐 물을 일부 빼는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그로 인한 손실 수량을 12만 톤이라고 하며, 이를 대구와 경북의 수원에서 충당시켜 줄 것을 여전히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한국인이라면 묵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거짓이 숨어있다.

일본의 구마모토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했다가 우리나라의 우물을 보고 힌트를 얻은 지하수 음용시스템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용하고 있다.
▲ 일본 구마모토의 지하수를 이용한 식수해결 일본의 구마모토시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공했다가 우리나라의 우물을 보고 힌트를 얻은 지하수 음용시스템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용하고 있다.
ⓒ 성익환

관련사진보기


먼저, 사연댐 물을 뺌으로써 발생하는 부족분 12만 톤은 지나치게 부풀려진 양이다. 애초에 이 그 수량은 3만 톤에서 출발했다. 3만 톤이 7만으로, 8만으로 늘더니 드디어 12만 톤이 되었다. 꼭 4배로 증가했다.

이에 대해 수자원공사 등의 물관리 관계부처의 통계수치는 애초의 수량 3만 톤이다.(박스 기사 참조) 왜 이렇게 큰 수량의 차이가 발생하는가? 시점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울산시는 12만톤까지 늘인 수량이 필요한 시점을 2025년으로 잡고 제시하기 때문이다.

즉 15년 뒤인 미래의 상황을 가정한 수치라는 말이다. 물론 그 경우에도 12만 톤이라는 양은 지극히 주관적인 추정에 의한,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는 양까지 포함한 산출량일 뿐이다. 그런 반면에 정부 부처에서는 현재 수요에서 크게 증가할 요인이 없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이미 제시했다.

국토해양부 보고(2010년 2월 11일, 총리실 주재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회의)
󰋼 댐 수위를 조절(해발 60.0m→해발 52.0m) 하더라도 '07년 사연댐 평균공급량(14.2만톤/일)만큼 공급하는 데 지장 없음
- 해발 60.0m(18.1만톤/일)→해발 52.0m(15.1만톤/일) ⇒ 일평균 3만톤 감소


울산시의 주장(2010년 2월 11일, 총리실 주재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 회의)
□ 우리시의 급수공급은 33만㎥/일으로 수위조절시 7만㎥/일 부족하고 대체수원 용수공급 직전인 2014년에는 인구증가율 등을 감안, 용수 소요량이 36만㎥/일로 추정되어 현재의 시설로는 10만㎥/일의 용량부족이 예상됨

위의 박스 내용들을 대조해 보면, 국토해양부는 실제 평균값을 제시했으나, 울산시는 막연하게 추정했음을 볼 수 있다. 울산시민들로서는 언뜻 듣기에 자신들의 지자체가 미래를 걱정하여 제시하는 정책으로 평가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똑같은 시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 2016년에 반구대의 세계유산 등재시킨다는 것이니, 현재 불필요한 물문제로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려는 문화재를 물고문하고 있는, 엄청난 모순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시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홉 살 아이도 납득시킬 수 없는 이 모순에 대해 울산시는 전혀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연댐 수위는 만수위가 60m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이에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암각화가 침수되는 것은 같다. 변경 만수위는 그림에서 빨간 색 글씨가 있는 52m이다. 따라서 수위조절이 곧 8m 수위하강이 아니다. 8m 수치는 만수위를 감안한 것이므로, 수위조절로 인한 손실 수량은 만수위 때보다 적을 수 밖에 없다.
▲ 사연댐 수위 조절 개념도 사연댐 수위는 만수위가 60m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이에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암각화가 침수되는 것은 같다. 변경 만수위는 그림에서 빨간 색 글씨가 있는 52m이다. 따라서 수위조절이 곧 8m 수위하강이 아니다. 8m 수치는 만수위를 감안한 것이므로, 수위조절로 인한 손실 수량은 만수위 때보다 적을 수 밖에 없다.
ⓒ 문화재청

관련사진보기


또 다른 의문도 있다. 반구대를 2016년에 세계유산에 등재시키겠다며, 특별전담반도 만들고 청와대에 직접 건의하겠다고 했던 울산시장은 무슨 자신감에서 2016년까지 반구대가 멀쩡하리라 여기나 하는 의문이다. 바로 자신이 의뢰하여 수행되었던 반구대 훼손정도에 대한 보고에서 표면의 24%가 훼손되었고, 진행 중이라는 결과를 본 것이 지난 가을의 일이니 말이다. 중앙과 지방 신문과 방송이 다루지 않은 회사가 없이 반구대의 위기는 상식이 되었다.

국보의 그런 위기를 앞에 놓고도, 5년 뒤인 2016년에 등재시키겠다는 것도 희한한 여유인데 2025년 수요 용수량을 지금 해결해 주지 않으면 반구대를 그대로 물속에 두겠다는 '두둑한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그러면서 정부의 추진력 부재와 지역의 이기주의를 시사하며, 자신들로서는 '울산시민 걱정'에 충실한 모습만 유지하면 된다는 자세는 지극히 유아적이기까지 하다. 정부는 이미 사연댐 수문공사비를 부담하겠다고 했고, 수문 설계비의 예산 책정이 이미 되어 있는데 미래의 물문제 해결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모순된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반구대는 살려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인질극'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대구와 경북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 동원된 명분도 '반구대 살리기'다. 물론, 이 역시 반구대를 팔아 용수를 확보하고자 하는, 이를 테면 '손 안 대고 코 풀기'가 이런 경우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의 태도와 행태로 보면 이미 울산시는 명분을 진작에 잃었다!

상식이 되었지만, 반구대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지금 그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있다. 그런데 울산시는 '내 땅 시민들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식으로, 국가적 보물을 가지고 흥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연구에서 이미 그 보물이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결론을 얻지 않았는가? 그런 와중에도 물을 얻기 전에 국보 살리기는 어림없다는 투의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으니, 여기에 무슨 명분이 있다고 보는가? 어떤 이유로 반구대를 2025년에 완료된다고 하는 상수도정비계획과 연관지어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세계 어느 지자체가 물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문화재를 담보로 했던 적이 있는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지하수를 활용한 구마모토의 식수해결은 대구광역시의 모델이 되었고, 이 시스템으로 대구광역시는 수요 식수의 상당량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 구마모토의 식수원, 백천수원지 지하수를 활용한 구마모토의 식수해결은 대구광역시의 모델이 되었고, 이 시스템으로 대구광역시는 수요 식수의 상당량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 성익환

관련사진보기


울산시민의 입장이 되어 보자. 마실 물이 부족해진다는데, 역지사지로 다른 지자체 주민으로서 울산시민의 희생을 요구할 권한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 그냥 요구할 수 없고, 그런 적도 없다.

먼저, 울산시민들을 포함한 우리 국민들이 정확히 알 것이 있다. 사연댐 물은 울산시 전체 용수를 담당하지 않는다. 매우 일부분일 뿐이다. 그 수치는 울산시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리고, 희생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주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대구광역시는 2015년에 '세계 물포럼'을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세계 물포럼'은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대회만큼이나 비중이 큰 국제행사다. 지구촌 물부족이 긴급한 현안이 된 현재, 물 문제에 관한 세계적 협의기구가 '세계 물포럼'이다. 이 같은 국제행사를 대구시가 어떻게 유치하려고 나섰는가? 다름 아닌 대구시가 식수 자급에 관한 획기적 방법을 실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울산은 대구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물수급을 해결하기에 유리한 상황이라고 하며, 이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현재 울산시장은 자문을 통해 제시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이 사실을 시민들에게 밝힌 적이 있었을까?
            
울산지역내 지하수 개발가능량 및 이용량 (한국지질자원 연구원 성익환 박사 제공)

❏ 울산의 30년간 평균강우량: 1,324.8mm
❏ 수자원총량 : 약 14억㎥/년
❏ 지하수함양량: 약 2억4천만㎥/년
❏ 지하수 개발가능량: 약 1.8억㎥/년
❏ 2003년말 기준 지하수 이용량: 약 2.2천만㎥/년(총 4,210 개소)
❏ 시민 1인당 5리터 음용수 공급시 : 2백만㎥/년(개발가능량 대비 1.1%,  이용량 대비 9%)



언론에 비친 울산시, 세계적인 희귀 암각화를 보존하려 애쓰며 세계유산에 등재시킬 계획을 추진중인, 한국 내 소득 1위의 부자 도시는 문화도시로 거듭나려는 의지에 차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그러한 의지의 시작과 끝이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오로지 껍데기요 허상일 뿐이다.

정부를 탓하기 전에, 대구와 경북의 양보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가 내놓아 보라. 언론에 뿌리는 보도자료나 원론적이며 불명확한 계획이나 들려주는 기자간담회 말고 무슨 노력을 했는지 말해 보라. 반구대 암각화로 인한 유무형의 막대한 이득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한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아니 있기나 한지 답해 보라. 나아가, 문화 시정을 내세울 만큼 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 반구대 보존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책임성을 정직하게 바라본 적이 있는가 답해 보라.

위대한 인류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가치에 어울리는 높은 이상과 문화의식을, 울산시여, 제발 보여 다오! 문화로 세계에 우뚝한 울산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위키트리와 본인의 페이스북에 게재합니다.



태그:#반구대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울산시, #세계문화유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