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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한 광산업체가 필리핀 광부 35명과 현지 교민의 임금을 체불해 지난해 9월 필리핀 노동관계위원회(NLRC, National Labor Relations Commission)로부터 '밀린 임금 약 200만 페소(한화 5000여만 원)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또한 이 업체의 간부는 필리핀 현지 10대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지난해 5월 해당 여성으로부터 고소까지 당했다. 이 업체는 국내최대 철강기업인 '포스코' 외주업체의 해외법인이다.

하지만 이 업체 측은 "필리핀에서는 임금이 하루라도 밀리면 광부들이 일 하러 안 온다"며 "임금이 체불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현지 교민이 조직한 것"이라고 임금체불 의혹 등을 부인했다.

6개월 소송 끝에 필리핀 NLRC '부당해고·임금체불' 인정

지난해 10월 18일자 필리핀 <다바오 선스타> 신문에 실린 필리핀 NLRC(노동관계위원회) 결정 내용. '한국 광산 업체가 NLRC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0월 18일자 필리핀 <다바오 선스타> 신문에 실린 필리핀 NLRC(노동관계위원회) 결정 내용. '한국 광산 업체가 NLRC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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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과 4월 필리핀 NLRC 다바오 지부 8중재 분과위에 접수된 제소장에 따르면, 필리핀 민다나오섬 다바오 오리엔탈 소재 광산에서 일하던(2009년 7월~10월) 광부 36명이 "한국 광산개발업체인 PMMDI(Philippine Multimining Development Inc)로부터 급여를 받지 못하고 부당해고 당했다"며 해당업체 사장인 서아무개(47)씨와 상무인 박아무개씨를 NLRC에 제소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해당 업체로부터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출근을 저지당했으며, 제소 당시까지도 해고와 관련된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2009년 6월 설립된 PMMDI는 '포스코 외주업체'인 BMS의 필리핀 현지법인으로 광산개발·판매 등 해외자원 개발 사업을 진행해왔다.

1989년 포스코 내 플랜트 전기·계장공사로 영업을 시작한 BMS는 포스코에 전기정비·방재·산업용설비 감시시스템을 납품하는 외주파트너사다. BMS가 지난해 6월 포스코 감사실에 제출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BMS 관련 POSCO 제보에 대한 답변서'를 보면 이 회사의 간부인 최아무개씨가 PMMDI 지분의 20%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BMS 측 관계자에 따르면, 또 다른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서아무개 사장 역시 BMS 최종락 대표이사(현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수감 중)의 오랜 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60%의 지분은 이 회사 상무인 박아무개씨의 현지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현지법인 설립 시 회사 지분의 60%를 현지인이 소유해야 한다.

전아무개씨가 필리핀 노동청에서 받은 외국인 노동 허가서. PMMDI에서 자문 및 통역을 담당한다고 적혀있다.
 전아무개씨가 필리핀 노동청에서 받은 외국인 노동 허가서. PMMDI에서 자문 및 통역을 담당한다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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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MDI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한국인 교민도 있다. 다바오에서 16년 동안 살면서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전아무개(53)씨와 그의 부인 정아무개씨는 2009년 5월부터 약 3개월간 BMS의 해외법인 설립을 도우면서 통역 및 자문, 회계 등을 담당해왔지만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지난해 3월, 전씨는 다른 35명의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PMMDI를 '임금체불'로 제소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6개월간 이어진 조정기간 동안 PMMDI는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변호사를 선임하긴 했지만 수차례에 걸쳐 진술서 제출을 연기했다. 이후 6월에는 다바오 현지 사무실을 정리하고 집기와 장비 등을 모두 챙겨 떠나 '야반도주'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2010년 8월 24일 NLRC는 PMMDI에 약 200만 페소, 한국 돈으로 약 5000만 원을 전씨와 필리핀 광부들에게 지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2010년 8월 24일 NLRC는 PMMDI에 약 200만 페소, 한국 돈으로 약 5000만 원을 전씨와 필리핀 광부들에게 지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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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0년 8월 24일. NLRC는 PMMDI에 약 200만 페소, 한국 돈으로 약 5000만 원을 전씨와 필리핀 광부 35명에게 지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정문에는 서아무개 사장 등 피고들이 증거를 제출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는 내용도 있다. 결정문이 통보(9월 13일) 된 지 10일 이내에 가능한 항소 역시 피고들은 하지 않았다.

해당업체 간부, 10대 미성년자와 "결혼하자"며 성관계 맺어 고소

지난해 5월 24일자 필리핀 다바오 <데일리 미러> 신문. 19세 여성이 한국인 남성을 성폭행으로 고소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지난해 5월 24일자 필리핀 다바오 <데일리 미러> 신문. 19세 여성이 한국인 남성을 성폭행으로 고소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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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내용은 필리핀 현지신문인 <선스타 다바오>, 교민신문인 <일요신문> 등에도 보도되었다. 노동자들의 승소 소식을 1면에 실은(2010년 10월 18일) <다바오 선스타>는 이 사건과 관련된 최초 보도(2010년 5월 4일)에서 PMMDI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제철회사인 포스코와 연계된 업체'로 소개하고 있다. 이 신문은 "한국의 주요기업과 관련된 업체가 왜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주지 않는지 의문"이라는 한 '피해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해당업체 관련 내용이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 된 것은 지난해 10월이 처음은 아니다. 다바오 현지 신문인 <데일리 미러>(2010년 5월 24일)에는 PMMDI의 간부가 그 해 5월 19일 '아동 성폭행'으로 고소됐다는 내용이 실렸다.

언론보도와 고소장에 따르면, 000씨를 고소한 19세 필리핀 여성은 자신의 나이 17세였던 2008년 당시 000씨가 '결혼하자'며 자신을 유혹해 수차례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이 여성은 병원 진단서, 호텔 출입 기록 등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이듬해 6월 해당 여성의 집을 방문해 부모님을 만나기도 했다는 그는 "한국에 가서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들고 오겠다"며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이후 이 여성은 그의 회사 동료로부터 '사실혼 관계의 필리핀 현지 부인과 딸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이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원개발' 나가 돈 안 주고 도망...현지에 반한 감정만 남을 것"

이러한 소식들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10월 전아무개씨가 해당내용을 인권단체인 국제민주연대에 제보하면서부터다. 국제민주연대는 다국적기업 감시운동도 함께하고 있다. 2009년 8월 퇴사이후 현재까지 1년 반 넘게 PMMDI와 '분쟁'을 벌이고 있는 전씨는 지난해 11월에는 아예 한국으로 들어와 국제민주연대·민주노총 등의 단체들과 함께 PMMDI의 '본사'라고 할 수 있는 BMS 측에 "NLRC의 결정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전씨는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항 BMS 본사도 가보고 포스코 본사까지 찾아가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지난해 9월 NLRC 결정문이 나오긴 했지만 이미 다바오 현지 법인 사무실도 없고 장비도 없는 상황에서 체불된 임금을 받아낼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전씨는 또한 "PMMDI는 2009년 7월 필리핀 마티의 시가보이 현장에서 허가 없이 불법으로 채굴을 하다가 경고를 받았고, 이는 제가 이 회사를 그만 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라며 "요즘 국내기업들이 해외에 자원개발을 많이 나가는데 마치 무법지대처럼 그 나라 실정법을 어기고 월급을 안 주고 도망가게 되면 현지 업자들이나 광부들에게 얼마나 원성을 받겠나. 결국 현지에 반한감정밖에 안 남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까지 와서 '분쟁'을 하고 있는 이유와 관련, 전씨는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전씨의 주장에 따르면, 그가 PMMDI를 그만둔 이후인 2009년 11월 전씨의 아내는 서아무개 사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전씨는 당시 받았던 진단서와 경찰신고서류를 기자에게 보여주면서 "(아내에게) 사과하고 치료비용을 보상해 주라는 조정관의 화해조정에도 불구하고 결국 합의에 실패해 (이 사건을) 정식 재판에 회부하라는 결정서가 발급되었다"고 전했다.

그 해 12월에는 해당업체로부터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전씨는 "서아무개 사장이 저를 '공금횡령'으로 다바오 지방법원에 고소했지만 결국 '증거 없음'으로 기각이 되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NLRC 판결 이후인 2010년 9월, PMMDI는 전씨 부부를 또 다시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씨는 "필리핀에서 16년 동안 살아왔는데 이번 일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돈 때문이 아니라 제 억울함을 꼭 밝히고 싶다"고 호소했다.

업체측 "전씨가 제출한 서류는 '가짜', 35명 광부도 모두 '조직'된 것"

서울 강남에 위치한 BMS 사무실. '필리핀 광산위치도 및 사업현황'이 보인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BMS 사무실. '필리핀 광산위치도 및 사업현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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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BMS는 이와 같은 사실이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길호 BMS 해외사업담당 이사는 지난 9일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전씨가 (국제민주연대와 <오마이뉴스>에) 제출한 서류는 다 가짜고 35명의 광부들도 모두 조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리핀 광산현장에서는 인부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고, 한 번 고용할 때 각 인부마다 1개월 치 월급을 선불로 지급해 집에 남은 가족의 식량을 해결해 주어야만 광산으로 일하러 온다. (인부들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급여날 집에 가서 생활비를 전달한 후 다시 광산으로 돌아온다. 전씨가 이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얼토당토 않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그야말로 소설 쓰듯이 제보를 한 것이다."

신 이사는 "NLRC 측에 제소한 35명의 광부들과 현지 광부들 인명부·급여지급대장을 비교한 결과 6명만이 일치했고 이들에게 임금을 지불했다고 적혀 있다"며 "전씨가 하루 일당 5000원씩 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돈 주겠다며 조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전씨뿐만 아니라 35명의 광부들 모두 PMMDI에서 고용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기자가 '필리핀 NLRC에서 내린 공식적인 결정이 잘못된 것이냐'고 되묻자 "NLRC도 필리핀 출입국 관리소도 돈 주면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 사말 지역에 있는 서아무개 사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국제통화에서 "전씨가 PMMDI 경영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회사를 나간 것"이라며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씨가 서씨에게 앙심을 품고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냈다는 것이 BMS와 PMMDI측 주장이다.

6개월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은 이유와 관련, 서 사장은 "당시 사말 지역에 가 있었는데 변호사가 문제가 있어서 소송과 관련된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국제민주연대의 연락을 받고서야 NLRC 결정문 내용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박아무개 상무의 '성폭행' 의혹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해당 의혹을 전면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민주연대에서 BMS에 질의서를 보낸 2010년 10월 26일 이후인 11월 6일, PMMDI 측 서아무개 사장 등은 필리핀 NLRC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항소장을 NLRC 측에 제출한 상태다.

포스코측 "감사실 조사 통해 거래 지속여부 결정"

그러나 이들은 국제민주연대의 조사가 시작된 지난해 10월 이후에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수개월간 이 사건을 담당해온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활동가는 지난 1월 2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전씨 같은 경우에는 어떠한 주장을 할 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에 근거해서 말하고 있는데 BMS측은 충분한 소명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BMS 측이 14일 <오마이뉴스>에 제출한 인부명단·임금지급내역
 BMS 측이 14일 <오마이뉴스>에 제출한 인부명단·임금지급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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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S가 "NLRC 측에 제소한 35명의 광부들과 현지 광부들 인명부·급여지급대장을 비교한 결과 6명만이 일치했다"는 근거로 제시된 자료 가운데는 PMMDI가 이미 다바오 지역을 떠난 이후인 2010년 1월과 3월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당자료는 2010년 1월 16일~31일자 급여지급대장.
 BMS가 "NLRC 측에 제소한 35명의 광부들과 현지 광부들 인명부·급여지급대장을 비교한 결과 6명만이 일치했다"는 근거로 제시된 자료 가운데는 PMMDI가 이미 다바오 지역을 떠난 이후인 2010년 1월과 3월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당자료는 2010년 1월 16일~31일자 급여지급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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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BMS 사무실을 방문한 지 닷새만인 지난 14일에서야 BMS 신길호 이사는 PMMDI로부터 배송받은 인부명단과 임금지급내역을 <오마이뉴스> 측에 직접 제출했다. 신 이사가 가지고 온 자료 가운데는 '임금체불' 기간인 2009년 7월 이후 3개월간의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해당업체가 "NLRC 측에 제소한 35명의 광부들과 현지 광부들 인명부·급여지급대장을 비교한 결과 6명만이 일치했다"는 근거로 제시된 자료 가운데는 '임금체불' 기간 이후인 2010년 1월과 3월 자료도 포함되어 있어 자료의 신뢰성을 의심스럽게 했다.

한편, 전씨는 "포스코는 윤리경영을 하는 대기업"이라며 BMS와 PMMDI에서 계속해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포스코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해 6월 포스코는 내부감사제도가 없는 외주파트너사의 경영 투명성을 위해 외주파트너사를 위한 윤리실천 특별약관을 개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포스코밖에 하소연할 데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포스코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외주파트너사는 말 그대로 외주를 주는 소위 '하청업체'일 뿐 같은 조직은 아니기 때문에 외주업체의 잘못을 포스코측에서 책임질 필요는 없다"면서도 "만약 그 업체가 정말로 문제 있는 업체라면 회사 감사실에서 조사를 해서 거래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앞서 포스코 감사실은 지난해 6월 임금체불·미성년자 성폭행 건과 관련해 BMS로부터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BMS 관련 POSCO 제보에 대한 답변서'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 별다른 조치는 하지 않았다.


태그:#필리핀 , #NLRC, #임금체불 , #BMS,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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