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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보강 : 11일 오전 11시 50분 ]

"저희들도 야근하고 다음날 또 일하려면 살아만 있다 뿐이지 거의 시체입니더, 시체. 보통 오후 7시부터 오전 8시까지 근무하는 데 비상상황이니 다음날도 일해야지요. 고인이 된 임씨도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부터 근무 후의 피곤함을 호소했심니더."  

지난 1월 31일 경남 하동군 구제역 상황실에서 근무하다 숨진 공무원 임경택(51)씨의 동료 유재성(45)씨의 말이다. 그는 "1년 동안 동료로서 지켜봤지만 평소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며 "한 달에 보통 3~4번 정도 야근했는데 1월 10일 상황실에서 야근을 했고 낮에 또 연이어서 일을 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29일 구제역 초소 근무 도중 과로로 쓰러져 숨진 경북 상주보건소 소속 김원부(47)씨의 동료 김인동씨는 고인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보통 우리는 '12시간 근무조'라고 불러요. 밤 근무조는 오후 8시부터 오전 8시까지 근무하고 낮 근무조는 오후 8시에 끝나면 바로 다음날 출근을 했습니다. 주말은 물론이고 순번대로 돌아가면서 모든 직원이 근무했지요."

김씨는 지난 15일 근무 도중 과로로 쓰러져 열흘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업무에 복귀한 지 사흘 만에 야간 방역활동에 참여하고 귀가한 뒤 숨을 거두었다.

지난해 11월 28일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60여 명에 이르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남해고속도로 내서인터체인지에 있는 구제역 특별방역 통제초소의 모습.
 지난해 11월 28일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60여 명에 이르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남해고속도로 내서인터체인지에 있는 구제역 특별방역 통제초소의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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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사망자 10명 가운데 9명이 공무원

구제역 사태가 가축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잡고 있다. 지난해 11월 28일 안동을 시작으로 발생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60여 명에 이르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것.

9일 오후 6시 현재 중앙재난대책본부가 접수한 바에 따르면, 구제역으로 인해 사망 10명, 중상 55명, 경상 99명 등 총 164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공무원이 126명으로 전체의 77%를 차지한다.

특히 사망자의 경우 군인을 포함해 공무원이 9명이나 돼 90%에 이른다.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공무원들이 밤과 주말까지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잦아졌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피로가 심하게 쌓이면서 각종 안전사고는 물론 사망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

경북 고령보건소에서 근무했던 곽석순(46)씨도 야근과 새벽 근무가 잦았다. 그는 방역 작업을 하다 쓰러져 병원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12일을 보내다 지난 1월 16일 숨졌다.

지난 1월 14일 숨진 경기도 의정부시 공무원 원영수(49)씨도 이와 비슷하다. 원씨는 11일 오전 평소와 같이 동 주민센터에 출근 후 오후 6시까지 본래의 업무를 처리한 뒤 퇴근하지 않고 잡무를 보다 같은날 저녁 구제역 이동 통제 초소 방역근무에 동원됐다. 다음 날인 12일 오전까지 밤샘근무를 했다.

원씨는 이어 13일 정상출근한 후 업무에 착수했지만 퇴근 무렵 한 동료 직원에게 가슴의 통증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교대 근무에 나섰다가 결국 뇌출혈로 숨진 금찬수(50. 경북 안동군· 동사무소 근무)씨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에 근무했던 김종철(55)씨는 종자관리를 하는 종축장 내 숙소에서 잠을 자다가 화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김씨는 구제역으로 인해 외부출입이 안 돼 숙소에서 생활하다가 변을 당했다.

고장 난 방역기 고치다 손가락 한 마디 잘리기도

지난해 11월 29일 구제역 소를 매몰한 경북 안동시 풍천면의 한 구제역 소 매몰지.
 지난해 11월 29일 구제역 소를 매몰한 경북 안동시 풍천면의 한 구제역 소 매몰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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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청의 전영하(52) 과장은 지난해 12월 17일 방역 초소에서 근무하다 빙판길 차량 전복으로 허리 부상을 입어 4주 진단을 받았다. 그는 관리자였기 때문에 사무실로부터 30km나 떨어진 초소를 매일 하루 3차례 왕복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사고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전 7시 30분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8시 20분에 회의에 참석하고 초소에 나갔다가 점심 시간 전에 다시 돌아와 결재했어요. 또 식사 후 현장에 갔다가 3시에 결재하고 퇴근 시간에 현장을 방문해 야근 근무자 근무상태를 점검하고 나서 자정에 귀가했죠. 사고 당일 눈길이어서 운전이 위험했고 며칠 동안 근무한 피로가 누적돼서 사고가 발생했어요."

그는 이어 "현재도 초소에서 하루 3교대로 전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직원들이 과로로 인해 가끔씩 발목을 삐는 사고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1일 파주시청 김영완(39)씨는 손가락 한 마디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연일 이어지는 근무로 피로한 상태에서 고장 난 방역기를 고치다가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기계 벨트에 끼어 '손가락 절단사고'를 당했다. 

방역활동뿐 아니라 제설 작업에 기존 업무까지 처리하느라 고인이 된 김원부(47)씨의 동료 김인동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김씨는 12월 24일, 1월 7일 두 번 근무했어요. 정도 많고 책임감도 커서 자기 근무가 아니더라도 밤에도 나와 도와줬죠. 밤에는 염화칼슘을 뿌리고, 아침에는 주로 땅이 얼지 않도록 얼음 깨는 작업, 제설 작업, 교통 통제 정리도 했어요. 자기 몸 아픈 것은 생각하지 않고 일했죠. 또 7~8년 전에 돼지 1000마리 매몰작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더 철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는 "대부분 직원들이 초소근무를 힘들어 한다"며 "항상 하던 일도 아니고 약품을 만지고 그런 일이라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손에 익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교통사고 위험도 있고 항상 안전교육을 하는데도 하다 보면 잘못해서 넘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유산 혹은 유산 위기에 처한 여성공무원... 한 농민은 자살까지

경북 영양군 입안면사무소 직원이었던 김경선(38)씨의 유족 김현욱(41)씨는 "구제역이 발생하고 동생이 집에 한 달에 한 두 번 들어왔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동생이 남긴 메모지를 보니 사고 당일인 지난해 12월 28일 '아침 7시에 제설작업 하러 간다'고 적혀 있더라구요. 9시 출근인데 제설작업 때문에 7시에 나갔어요. 전날 면사무소에서 자고 바로 나갔더라구요. 사고 이틀 전에 우리 형제들끼리 모이기로 했는데 비상근무 때문에 결국 만나지 못했어요."

지난해 12월 28일 뇌출혈로 쓰러져 인근 병원에서 회복 중인 고양시청 김선구(39)씨의 동료 송대호씨는 "사고 전날 구제역 근무도 했고 오전 5시, 6시부터 새벽에 제설 근무를 했다"며 "점심을 사무실에서 먹은 다음에 두통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의식 불명에 빠졌다가 최근 회복 중인 문경시청 소속 장세인(42)씨는 지난해 12월 방역초소 근무를 7번이나 했고, 1월에도 사건 발생일인 14일까지 3번이나 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다른 공무원들은 평균 월5회 정도 방역초소 근무를 했으나 장씨는 여직원들을 대신해 야간 근무를 많이 했고 다음 날에도 쉬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가 잠깐 씻은 후 아침에 사무실로 돌아와 근무했다고 한다.

또한 임신한 상태에서 현장 지원 업무에 나간 여성 공무원 3명은 유산하거나 유산할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일부는 휴직 중이거나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충북 충주시의 한 농민은 지난 1일 농장에서 키우던 소가 구제역 양성이라는 통보를 받고 오후 5시께 집을 나가 이틀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지난 4일 충주시 가금면 한 야산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주변에는 먹다 남은 농약병이 놓여 있었다.

지난달 24일 전남 보성군청에서 근무하는 심상대(58)씨도 과로로 숨졌다. 지난 주말 그는 지역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오리농장에서 매몰 작업을 하고 돌아와 많이 지쳐 있었다.

또 지난달 9일 육군 26사단 소속 권아무개(23) 이병은 연천군 청산면 초성 검문소에서 근무하던 도중 승용차가 방역 초소를 덮쳐 사망했다. 같은 장소 지원을 나온 분당 경찰서 소속 김아무개(22) 상경 역시 이날 사고로 크게 부상당했다.

"대부분 과로 때문에 사고 발생... 후속대책 마련해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조창형 대변인은 "대부분의 사고가 과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후속대책이 미흡하다"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조례를 따로 만들어 과로사한 분들의 장례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대변인은 "구제역 초소에서 근무한 공무원은 전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데 이게 기록에 남기 때문에 나중에 보험 가입 등에서 불이익 받을 수가 있다"며 "치료 기록에 대한 말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나가 동물 방역처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련 전문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며 "특히 임신 중인 여성이 밤샘 근무 조에 편성되는 경우는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순직하신 분들의 유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신속하게 보상과 관련한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구제역 상황실의 박용욱 사무관은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해서 특별대책을 세운다는 것은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어렵고 기존에 있는 규정에 의거해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 규정들이 최대한 적극적인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구제역 살처분으로 식수원 오염 우려...정부, 매몰지역 전수 조사키로
전국의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 발생으로 살처분 된 가축이 (소, 돼지, 닭 2월9일 기준.) 모두 850만여 마리를 넘어서면서 식수원과 토양으로 침출수가 유입되는 2차 오염 피해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살처분 된 가축이 매몰된 장소는 모두 4215곳에 이른다. 침출수는 매몰된 가축의 사채가 부패하면서 땅 속에 고여 있다 흘러나오는 오염된 물로, 부패 과정에서 생기는 메탄가스로 인해 압력이 발생하면서 토양과 지하수에 흘러 들어간다.

침출수는 강물, 지하수 등 식수원과 농지를 오염시킨다. 살처분 된 사체가 단백질과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침출수가 하천과 식수원에 유입되면 부영양화로 인한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이 급증해 물고기가 살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식수 역시 암모니아나 질산염이 식수 안전기준치를 초과하면서 마실 수 없는 물로 변한다. 현재 환경부는 매몰 시 2차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구덩이를 5m이상 파고, 비닐로 구덩이 면적 전체를 덮고, 생석회와 톱밥을 다시 까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2004년부터 작년 5월까지 발생한 구제역·조류 인플루엔자 가축 매몰지 23곳을 대상으로 환경오염 여부를 정밀 조사한 결과 8곳에서 침출수가 유출돼 지하수·토양 오염을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당정은 지난 10일 4000곳이 넘는 매몰지를 전수 조사하고 있고 문제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대한 보강공사를 3월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대책을 발표했다. /박종원 기자

덧붙이는 글 | 정민지·박종원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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