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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순찰차가 학생들의 알몸 뒤풀이 등 일탈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순찰하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순찰차가 학생들의 알몸 뒤풀이 등 일탈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순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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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교에서 졸업식이 한창이다.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빠른 곳은 지난달 28일부터 시작했고 늦어도 이달 18일 무렵에는 대체로 전국의 모든 학교의 졸업식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런데 지난해에 일부 학교에서 벌어진 이른바 알몸 졸업식, 막장 졸업식의 후폭풍이 지금 전국의 모든 학교를 경찰이 활보하는 '공포의 교정'으로 만들어 놓았다.

지난해 2월 졸업식 뒤풀이 파문이 일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할 것"을 주문했고, 교과부는 잘못된 졸업식 문화를 바로 잡겠다며 대대적인 '선도 활동'을 예고한 바 있다.

그 결과 현재 학교들은 저마다 졸업식 행사를 기존의 딱딱하고 재미없는 진행에서 벗어난 축제 형식으로 바꾸고 있다. 학생과 교사들이 노래와 율동을 선보이고, 영상물이나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하고, 교사들이 졸업생들의 발을 씻어주는 세족식을 하는가 하면 학교장이 학급을 돌며 일일이 졸업생들에게 졸업장을 나눠준다고도 한다.

덕분에 졸업식 진행 시간이 기존의 1시간 내외이던 것이 2~3시간은 보통이고, 경기도 남양주 덕소중은 5시간, 서울 홍익대사대 부속여중은 이틀에 걸쳐 10시간(4시간 + 6시간 20분)이 넘도록 졸업식을 '거행'한다고 한다.

학생들 소지품까지 마음대로 열어보고... 경찰의 당당한 폭력, 정말 두렵다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의경들이 학생들의 알몸 뒤풀이 등 일탈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의경들이 학생들의 알몸 뒤풀이 등 일탈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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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이 내놓은 졸업식 뒤풀이 대응 방법도 무시무시하다.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보낸 공문에서 '졸업식 뒤풀이 유형 및 처벌'이라고 명시하고 공갈, 폭행, 강제추행, 강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졸업식 뒤풀이는 학교폭력에 의한 처벌 대상임을 공지"라고 명기해 졸업식 뒤풀이를 하면 처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경기도의 경우 교육청과 경찰은 각종 어머니회와 해병대전우회까지 최대한 인력을 동원해 뒤풀이 예상 장소에 배치한다고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순찰 차원을 넘어 경찰이 형사과 강력팀까지 동원한 기동대응팀을 구성해 사건이 발생하면 조기 수사를 통해 학생들을 형사 처벌할 방침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두 교육청 모두 졸업식 당일 장학사는 물론 학교 교직원들을 총동원하는 건 기본사항이다.

교육 당국과 학교들의 이런 움직임과 함께 경찰청은 8일부터 17일까지 열흘 동안 4만70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졸업식장과 학교 주변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미 치러진 학교들의 졸업식장과 학교 주변에서는 배치된 경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8일 대전 한밭고의 졸업식에서는 경찰이 학교 정문과 본관 입구 등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소지품 검사라는 명목의 '불심검문'을 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경찰이 학교 안에서 미성년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심검문까지 하는 세상이 되었다.

경찰이 시민을 대상으로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있는 경우는 '흉기나 폭탄 등을 휴대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이다. 흉기 조사를 제외한 일반 소지품 검사는 법적 근거가 없다. 학생들의 가방이나 소지품에 졸업식 뒤풀이용(?) 밀가루나 계란이 들었는지를 확인하는 건 법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책임감이 지나치게 투철한 일부 경찰의 '할리우드 액션'이었으려니 생각해보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이쯤 되면 학생들로서는 두렵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겁이 난다. 이제 겨우 15~16세인 학생들을 엄청난 범죄예비자로 간주하고 여차하면 법률 위반으로 처벌하겠다는 선전포고 말고는 사실상 아무런 교육적 조치나 배려를 하지 않는 교과부와 교육청은 물론 교내에서 학생들의 소지품까지 마음대로 열어보고 확인하는 경찰의 당당한 폭력이 정말 두렵다.

문제는 졸업'식'이 아니다... 학교 문화가 변하지 않으면 소용 없다

한 고등학교의 2009년 졸업식 뒤풀이 모습. 케첩이 마치 피처럼 보여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
 한 고등학교의 2009년 졸업식 뒤풀이 모습. 케첩이 마치 피처럼 보여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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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졸업식 뒤풀이 파문이 일자 서울과 경기교육청에서는 각각 선도문화학교(경기)와 학교문화선도 시범학교(서울)를 지정하고 효과적인 졸업식(입학식) 문화를 연구·조성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기껏 졸업식 시간을 몇 배로 늘려서 교사와 학생이 노래하고 춤을 추는 축제를 하고, 경찰을 불러들여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을 감시하는 것이었다니. 지금껏 그런 것을 안 했기 때문에 일부 학생들이 졸업식 이후 일탈행위의 뒤풀이를 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문제는 졸업'식'이 아니다. 상을 받는 일부 소수의 아이들과 학교에서 초청한 힘 있는 동문들과 지역 기관장, 유지들의 지루하고 하품 나는 축사를 다 듣고, 교가를 힘차게 불러야 끝이 나는 기존의 졸업식 문화가('축제 형식'을 빙자한 노래하고 춤추는 졸업식이 대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개선되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교육당국과 교육청, 학교 관계자들끼리만 짜고 치면서 바꾸는 졸업식 문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판에 학생들을 들러리로 끼워 넣어 가짜 주인공 행세를 하도록 하고 이를 따르지 않고 다른 짓을 하면 처벌하겠다고 위협을 가하는 형태가 아니라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참여시키고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졸업식 문화나 졸업식 뒤풀이 문화의 변화가 아니다. 여전히 학생들을 감시와 통제, 그리고 관리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교육정책과 학교 문화가 변해야 한다. 경찰까지 동원해서라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학생들을 위협하면 된다는 비교육적·반인권적 사고가 사라져야 한다. 졸업식 날 하루만 거창한 축제를 열어서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처럼 쇼를 할 일이 아니다. 입학부터 졸업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아이들이 날마다 학교에 오는 일이 축제처럼 즐거울 수 있도록 하는 교육정책과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해마다 학교는 '공포의 축제쇼'를 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마라' 형사처벌 협박보다 '이렇게 하라' 길 제시해줘야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한 경찰관이 졸업생 가족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한 경찰관이 졸업생 가족의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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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과 성적으로 억압하고 온갖 규정으로 옭아매고, 안 되면 징계하고 처벌하려는 학교 문화가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학생들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학교활동에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소통·반영하려는 노력이 없이는 경찰이 아닌 무장한 군인을 동원한다고 해도 공허할 뿐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졸업식 사건 사고가 서울 1건, 경기 2건을 포함해 모두 5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알몸' '막장' 운운하는 언론들의 선정적 보도로 더욱 부풀려지고 일그러졌던 겨우 5건의 졸업식 뒤풀이 사례를 두고 경찰과 교직원을 동원하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도록 요란을 떨어댈 일이 아니다.

졸업식 뒤풀이를 하면 형사처벌하겠다는 협박보다는 건전한 뒤풀이 문화와 환경을 갖추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먼저다. 졸업식장에서만 그것을 해결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하지마라'며 공포감을 주기보다는 '이렇게 하라'고 길을 제시하고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다.

중고생들이라고 해서 삼삼오오 혹은 십여 명 혹은 학급 인원이 모두 모여서 오붓하고 추억할만한 졸업식 뒤풀이를 하면 안 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태그:#졸업식, #졸업식 뒤풀이, #학생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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