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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자형 구조의 시민아파트 뒷동을 올려다본 모습
 ㄷ자형 구조의 시민아파트 뒷동을 올려다본 모습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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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사진 속에는 준공된 지 얼마나 됐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롭던 한 낡은 아파트가 있었다. 그리고 몇년 후,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여드름브레이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파트의 모습을 소개했다. 그곳이 바로 서울시 중구 회현동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회현 제2시민 아파트다. 많은 출사족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에 나 역시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2011년 2월 3일 드디어 그곳을 찾을 수 있었다.

1970년 서민들을 위한 거주지로 지어졌던 와우아파트가 준공된지 3개월 만에 붕괴되고 서민아파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을 때, 이를 달래기 위해 튼튼하게 지어내야 했던 회현동 시민 아파트. 당시, 서울시장은 와우아파트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게 회현 시민아파트만큼은 절대 무너지지 않게 지으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후로 4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꿋꿋하게 버텨왔던 서민들의 생활터전은 2006년 붕괴 위험이 있는 위험시설로 분리되어 철거 대상이 되었다.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라는 명목으로 지어졌지만 남산, 시립도서관, 서울역 등과 가까이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중산층들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더 유명했다.

그러다 강남이 개발되면서 중산층의 대거 이동이 시작되고서야 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거주민들과 타협하는데 애로사항이 있어 지지부진하고는 있지만,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회현동에는 유독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눈에 띈다.
 회현동에는 유독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눈에 띈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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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 시민아파트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발품을 팔아야만 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회현역 4번 출구로 나와 첫 번째 블록에서 좌회전을 해서 오르막을  오르다가 막다른 곳에서 좌회전을 한 후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일신교회가 나온다. 이때 일신교회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교회의 왼편 골목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회현 시민아파트를 만날 수 있다.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으니 지도를 잘 숙지한 후 찾아가는 것이 좋으며, 계속 되는 오르막길 때문에 빨리 걸으면 숨이 가빠오기도 한다.

회현역에서부터 회현 시민아파트까지 찾아가는 동안 만난 풍경들은 말 그대로 오래됐다. 칠이 벗겨지고 낡은 담장들은 물론이고 관리되지 않아 조금은 너저분한 상점들도 방치되어 있다. 길을 걷는 내내 사진으로만 보았던 허름한 서민아파트의 모습이 저절로 연상되게 하는 동네다.

회현시민아파트의 전경
 회현시민아파트의 전경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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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역에서부터 20여 분 정도 걸은 것 같다. 달동네를 찾아가듯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르다보니 사진 속의 그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사진에서 보던 거랑 좀 다른 것 같은데….'

사진이나 영상매체를 통해 보지 않았다면 이 아파트의 특이한 구조나 오랜 세월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쳤다면 별 호기심 없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만큼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수박 겉핥기식으로 쓰윽 훑어 보았을 때 일이다. 건물을 돌며 시민아파트만의 구조를 확인하고,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목격한다면 평범함이 아닌 비범함을 찾아낼 수 있다.

회현 시민아파트의 또 다른 출입구인 구름다리는 이 아파트의 상징과도 같다.
 회현 시민아파트의 또 다른 출입구인 구름다리는 이 아파트의 상징과도 같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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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 시민아파트하면 가장 먼저 이야기 되는 것이 특이한 구조다. 그리고 그 특이한 구조에는 공중에 떠 있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구름다리가 한몫 하고 있다. 'ㄷ자형'으로 만들어진 회현 시민아파트는 준공 당시 뒤쪽에 언덕이 있어 그곳으로 통하는 구름다리를 만들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지상 1층과 6층에 2개의 출입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구름다리가 만들어진 것은 뒤쪽 건물도 마찬가지다. 건물 내부로 이동하기 위해 구름다리에 발을 얹자마자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오랜 세월이 짐작되서일까? 마치 수수깡 하나를 얹어놓은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위에서 내려다본 중앙정원과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중앙정원과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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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ㄷ자로 싸고 있는 가운데에는 1층으로 향하는 계단과 중앙정원이 있다. 과거의 중앙정원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재의 이곳은 쓰레기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지저분해보이는 게 사실이다.

주민들에 의해 가꿔진 예쁜 꽃들로 아름다웠을 정원은 땅 속에 파묻힌 채 버려진 장독대며, 주인을 잃은 화분, 그리고 갖가지 쓰레기들로 어지럽다. 하지만 이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기보다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느껴져 정체를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차오른다.

회현 시민아파트 곳곳에는 안내표지판들이 붙어 있다. 붕괴 위험이 있으니 출입을 자제하라는 문구, 사생활이 침해되니 사진을 찍지 말라는 문구 등의 경고성 글들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끌림에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망상일 뿐이지만 조금만 힘차게 밟아도 바닥은 꺼질 것 같고, 벽은 살짝만 기대도 무너져내릴 것 같다. 게다가 건물 내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들이 불시에 질러대는 비명 소리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도 있는데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죄송한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40년이 지난 위태로운 건물이 날 그렇게 만들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선 순간 발걸음은 사뿐사뿐, 말은 소곤소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조심스러워진다. 앞서 말했던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민들의 사생활에 대한 부분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아파트 내부의 모습이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아파트 내부의 모습이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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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어두컴컴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흐릿한 백열등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나간 곳이 많다. 깜깜한 복도에 서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서늘함이 느껴진다.

양쪽으로는 낡은 나무문이 주민들의 보금자리로 통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 발로 힘껏 차면 부숴질 것 같은 나무문에 의지해 사는 것도 쉽지가 않을텐데, 이곳 주민들은 여간 대담한 게 아닌가 보다. 절대 부숴질 리 없는 단단한 철문에 도어락도 모자라 걸쇠까지 장착하고 사는 나같은 겁쟁이는 단 하루도 살기 힘들 것 같다.

간간히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긴 하지만 내부는 대체적으로 조용하다. 현재 이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가 없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건지 이사를 하고서 주소 이전을 하지 않은 건지 철창에 우편물들이 잔뜩 끼워진 집이 있는가 하면, 복도의 자투리 공간에는 빨래가 널려 있고 아이들의 자전거등이 세워져 있는 등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철거가 결정되고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강남 등의 위치에 아파트 특별 분양권을 노린 투자자들 덕분에 집값이 2~3배로 올랐고, 그 기회를 틈 타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새 주인들은 실제로 거주하지는 않고 전세를 내주며 더 좋은 아파트의 분양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40여 년 동안 이곳의 주인이었던 서민들은 또 다른 곳에 둥지를 틀어 살고 있겠지만, 서민들을 위한 아파트로 지어졌던 이곳은 부자들의 또 다른 부를 위한 투자지가 되었다. '부익부, 빈익빈.' 기분이 씁쓸해진다.

계단의 창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 아파트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계단의 창문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이 아파트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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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을 가볼까하고 꼭대기로 올라갔지만, 문이 굳게 잠겨 있다. 같이 갔던 동생은 지인이 다녀갔던 흔적을 발견하고는 반가워하고, 나는 못내 아쉬워 부숴진 문 틈 사이로 바깥을 내다봤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서울 시가지의 모습이 그려져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회현 시민아파트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 자리에서 그대로의 모습으로 40년을 견뎌낼 동안,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변화했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피해 밖으로 나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하루의 시름을 담배연기에 실어 보냈을 한 가장의 뒷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1층으로 통한 출입구
 1층으로 통한 출입구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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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치 미로와 같았던 아파트의 내부를 둘러보고 1층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23320956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서울, #중구, #회현동, #시민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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