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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품고 강을 안은 곳, 양평은 차분하게 여행할만한 곳이 많은 동네다. 예전에는 연인이 생기면 필히 가보아야할 데이트 장소이자 차를 사면 제일 먼저 가보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그런 양평이 지금도 사람들에게 여전히 좋은 여행지로 변함없이 사랑받는 건 산과 강이 어우러진 변함없는 양평만의 풍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엔 중앙선 전철이 생겨 멀리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까지 수도권 전철을 타고 편하게 양평여행을 즐길 수 있다. 양평여행을 갈 땐 아침 일찍이 집을 나서는 부지런을 떨어보자. 이런 겨울날 산도 강도 시리도록 푸른 시간에 찾아가면, 강가의 물빛과 안개에 감탄하게 되고, 병풍처럼 마을을 휘감은 눈 쌓인 산들에 마음이 설레인다.   

따로 준비할 것도 없이 동네 마실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전철을 타고 언제든 부담없이 찾아갈 수 있는 양평이 있어 고맙기까지 하다. 양평가는 중앙선 전철은 기차처럼 야외를 달려가니 창 밖의 풍경을 보며 찾아가는 여정의 즐거움 또한 괜찮다. 체험마을, 산, 강, 간이역, 오일장 등 양평에는 다양한 느낌을 전해주는 좋은 여행지가 참 많으나 이번에는 전철을 타고 가볼 수 있는 몇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가로운 설날연휴때 여유로이 찾아가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녹차를 마실 수 있는 편안한 다실과 절 마당에서의 전망이 수종사를 힘들게 올랐던 일을 다잊게 한다.
 녹차를 마실 수 있는 편안한 다실과 절 마당에서의 전망이 수종사를 힘들게 올랐던 일을 다잊게 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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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역] 수종사

중앙선 전철 운길산역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면 닿을 수 있는 수종사는 이 글을 쓰면서 알고보니 양평이 아니라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곳이다. 아마 나처럼 수종사를 양평지역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수종사 앞마당에 서면 눈 앞에 펼쳐지는 양평 산하의 풍경이 마음속에 깊게 남기 때문이 아닐까.   

운길산(610m) 자락에 양평을 시원하게 조망하는 곳에 있는 수종사는 자그마한 절이다. 하지만 작은 절이라고 쉽게 생각하다간 다리에 쥐가 나기 십상이다. 수종사 가는 길은 힘겨운 등산길이기도 해서다. 요즘같은 겨울날엔 미끄러지지 않게 등산화를 필히 신고 가야 한다.

등산을 자주 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들이 가쁜 숨을 백팔번 헉헉거리며 50분 정도를 올라가면 졸졸 흘러 나오는 약수물과 감탄이 절로 나오는 남한강과 두물머리의 겨울 풍경이 보상처럼 반긴다. 게다가 햇살이 환하게 비춰들어오는 커다란 창이 있는 다실에 앉아 산아래의 풍경을 보며 무료로 내어주는 깊은 맛의 녹차를 마시다보면 이곳의 단골이었다는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의 기분을 알것도 같다. 힘들게 올라온게 언제였냐 싶게 기분이 상쾌해진다.

절 뒤쪽에 있는 소박한 해탈문과 함께 어우러진 한 눈에도 수백년이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도 인상적이다. 느티나무 아래 어떤 스님이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뒷모습이 친근감이 가고 말을 붙이고 싶어진다. 이무기가 승천하듯 구불거리며 하늘로 수십미터를 뻗은 느티나무를 이렇게 높은 산자락에서 마주하니 묘한 기분이 드는 곳이다.  
 
이른 아침에 두물머리에 가면 시간이 저 나룻배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른 아침에 두물머리에 가면 시간이 저 나룻배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걸 느낄 수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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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역] 두물머리, 세미원  

이른 아침 양수역에 내려 물빛과 안개에 마음이 설레이는 곳 두물머리를 향해 걸어간다. 번잡한 일상을 벗고자, 추억을 담고자, 멋진 사진을 찍고자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사시사철 찾아오는 곳이다. 남한강가와 연꽃밭 사이의 오솔길 같은 산책길을 10여분 걸으면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저 앞으로 두물머리가 나타난다.

두물머리에서 추억을 담는 사람들의 사진 속에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빠지지 않는다. 느티나무는 언뜻 한 그루로 보이지만 사실은 세 그루가 한 데 어우러진 것인데 마치 한 몸처럼 보인다. 400여 년 동안 묵묵히 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추억속에 존재하여 주어온 고마운 존재다. 이 아름드리 나무에 기대어 서서 남한강을 굽어보면 나도 모르게 안온한 느낌이 몰려온다. 강위의 물안개처럼 시간마저도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다.

예전 이곳이 나루터였던 것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두물머리 앞에는 늘 나룻배 한 척이 홀로 떠있다.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하는 이 풍경을 왜 그리 사람들은 좋아하는지, 이른 아침엔 나룻배를 향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총총히 서있다. 산사의 아침만큼이나 고요한 강가의 아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물과 꽃의 정원인 세미원은 한겨울에도 포근한 곳이다.
 물과 꽃의 정원인 세미원은 한겨울에도 포근한 곳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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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또 다른 계절의 풍경이 기다리는 곳이 세미원이다. 두물머리에서 지척에 있는 이곳은 겨울안에서 봄과 여름을 만나게 해준다. 세미원은 '물을 보며 마음을 깨끗이 하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장자의 글귀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말그대로 물과 꽃의 정원이다. 가을날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아름답고 강렬한 풍경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다.   

양수리 버스터미널 앞 마당에는 매 1일과 6일날 오일장도 열린다. 양수리 동네처럼 작고 아담한 장터다. 장날에 돈을 한 몫 벌겠다는 상인보다는 푼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손수 텃밭에서 가꾼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파는 할머니들이 큰 자리 욕심 없이 소박한 물건들을 풀어 놓는다. 요즘엔 두물머리와 세미원에 놀러온 손님들이 장터에도 많이 찾아 온다니 흐뭇하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돌아가는 뻥튀기 기계는 오일장의 대표 상품이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돌아가는 뻥튀기 기계는 오일장의 대표 상품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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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역] 양평오일장, 남한강변 산책로

양평역에서 내려 앞으로 5분정도 쭉 걸어가면 양평민속오일장이라는 큰 간판이 보이고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양평읍내 번화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양평 오일장이 열리는데 매 3일과 8일 열리는 큰 규모의 장날이다. 여기도 구제역의 영향으로 몇 번 임시로 문을 닫았다가 최근에야 다시 장을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철역이 생기고부터는 타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 더욱 북적거리면서 정말 그 옛날의 장터같은 기분이 난다. 요즘같은 겨울날엔 뜨끈한 멸치국물에 말아나온 잔치국수로 몸을 데운 다음 장터 구경에 나선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돌아가다 뻥~하는 대포소리를 내는 뻥튀기 기계가 반갑고, 그 앞에 떡과 곡식이 가득 담긴 깡통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갓 삶은 보리밥에 푸짐하게 얹은 야채와 고추장 소스, 겉절이를 올린 꽁보리 비빔밥집과 부부가 하는 옛날식 도넛 좌판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이젠 남대문 시장에서도 보기 힘든 화려한 원색의 옷들이 웃음짓게 한다. 오일장에 생필품도 사고 나들이도 겸해서 나온 어르신들의 모습도, 톱 갈아주는 아저씨와 도장파는 노인의 모습에도 정겨움이 묻어난다. 

남한강 산책로는 높은 강둑위에 있어서인지 걸으면서 느끼는 강변의 정취가 남다르다.
 남한강 산책로는 높은 강둑위에 있어서인지 걸으면서 느끼는 강변의 정취가 남다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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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터 옆 양평군청을 걸어서 지나면 코 앞에 남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곳에도 강변을 따라 5km의 산책로를 만들어 놓아 여유롭게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강변의 정취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산책로가 다른 강변길과 다른 건 강둑의 높은 위치에 나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강위에 나무 데크길로 만든 전망대가 다 있다. 이 전망대에 서서 겨울 남한강을 멀리까지 내려다 보니 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다.

두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정도로 아담한 이 길은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어 지루하지도 않은 길이라 상념에 잠겨 혹은 운동삼아 오고가기 적당하다. 한쪽에는 산림과 시골풍경이 있어 녹음이 우거진 계절에 와도 참 좋겠다. 양평 오일장에 들렀다가 늦은 오후 무렵에 이곳에 맞추어 가면 남한강변의 일렁이는 물결이 저녁놀의 붉은 햇살과 어우러져 자아내는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유서깊은 절 용문사에서는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유서깊은 절 용문사에서는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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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역] 용문사

용문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를 가면 종점인 용문사에 내린다. 용문사는 백년이 넘은 고목들을 따라 1Km 정도의 눈쌓인 숲길을 산책하듯 더 걸어가야 드디어 그 존재를 드러낸다. 절 입구까지의 길이 이렇게 긴건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의 고민과 번뇌를 가라앉히라는 뜻인 듯 하다. 정말 주변 산세도 좋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길이다.

주변엔 눈이 많이 쌓였는데 산사 가는 길은 깔끔하게도 눈을 치웠다. 용문사 행자스님들의 익숙하고 정갈한 눈치우는 솜씨가 느껴지고 수고로움이 고맙다. 용문산에 터를 잡은 용문사는 고려태조 왕건이 직접 들러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올만큼 역사가 깊은 절이다.
요즘엔 숙박을 하며 절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니 일상에 지쳐갈때 머물다 가고픈 곳이다.

용문사가 천 년 고찰로 불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절 입구의 커다랗고 신령스럽게 느껴지는 천 년넘은 수령의 은행나무 때문이다. 이 나무에는 신라시대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927~935)의 세자 마의 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갈때 꽂아놓은 막대기가 자라 거대한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말이 천 년의 세월이지 수많은 전란과 혹한의 추위속에서도 굿굿이 살아남은 이 느티나무를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신묘한 기분이 든다.

등산을 할 수 있는 용문산도 이어져 있지만 절에 와서 벌써 겨울 풍경에 취한다. 돌아오는 길 용문역 부근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서 매 5일과 10일날 열린다는 시골장터같은 아담한 용문 오일장도 구경해 본다. 선지와 돼지머릿고기 그득하게 담은 얼큰하고 담백한 장터국밥을 한 그릇 먹으니 바람마저도 얼어붙게 하는 요즘 겨울날씨가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태그:#겨울여행, #양평, #두물머리, #수종사,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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