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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안보 위기를 겪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이 겪은 공포와 불안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이 직접 겪은 고초에 어디 비할 바나 되겠습니까?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은 안락한 집 소파에 앉아 천안함 선체가 인양되는 장면을 보았거나, 찜질방에서 이온음료 따위를 마시면서 지피어 오르는 연평도 포연을 무연히 지켜보기도 했으니까요.

 

저는 천안함 침몰 이후 연평도 포격에 이르기까지 전군(全軍)을 초긴장 시킨 비상 분위기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별안간 살벌해진 일과(日課), 지휘관들의 험악해진 언사(言辭), 혹한에 아랑곳없이 과중 부과되는 보초근무, 난데없이 금지되는 외출, 외박 및 휴가... 이런 것들이 우리 사병들을 부단히 암담한 수렁으로 몰아넣곤 했을 겁니다. 아니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는 병영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일거에 적대관계로 돌변한 남과 북

 

문제는 오늘의 이 사태를 우리가 정녕 예방할 수는 없는 것이었는가 하는 점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난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작년 3월 서해상에서 한미연합군사훈련(키 리졸브)이 시작됐습니다. 이에 북한이 경고를 보내면서 오히려 자기들은 핵 억지력을 강화하겠다고 했지요. 며칠 후인 3월 26일 1200톤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했습니다. 우리 장병 46명의 꽃다운 목숨이 수장되는 비극이 빚어졌지요. 그 시간 함상의 장병들이 칠흑의 바다에서 체험했을 성싶은 공포와 절망을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당시는 남북정상회담설까지 나돌던 상황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천안함 침몰로 인해 남북관계는 하루아침에 적대관계로 돌변했습니다. 북한은 국제적인 범죄자로 낙인 찍힐 위기에 직면했지요. 이러한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한 흡수통일을 의미하는 발언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NLL 공동개발을 합의한 10·4 선언을 백안시해 오던 남측은 북측의 대화 제의를 번번이 일축합니다. 이미 부시 정권 때 정전협정 체결을 합의해 준 바 있는 미국도 웬일인지 북한에 일절 관심을 기울지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감행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민간인 둘과 해병대원 둘이 희생되었습니다. 수많은 연평도 주민들은 때 아닌 피란살이를 겪어야 했지요.

 

삽시에 여론은 '대북응징론'으로 바뀌었습니다. 긴가민가하던 천안함 침몰도 북한의 소행으로 간주하는 국민이 확 늘었습니다. 확전 자제를 지시한 대통령의 발언이 호전적인 여론의 질타를 받자 청와대는 발언 사실 자체를 부인했지요. 한편 연평도 현장을 찾아간 집권당 대표는 보온병을 폭탄이라고 했고, 덩달아 같이 간 의원들은 그 폭탄의 명칭과 제원까지 말했다니 그저 해괴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가장 심한 비난을 받은 곳은 군대였습니다. 국방부장관이 경질되었고 '전투기 폭격'을 부르짖는 장관이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여간해서 가시지 않았습니다.

 

대북 관리 잘못 책임을 만만한 사병에게 전가

 

공교롭게도 정부·여당은 12월 8일 예산안과 친수구역법을 포함한 4대강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킴으로써 안보위기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정부가 안보 위기를 이용한 사례는 또 있지요. 당초 각 군 3개월씩 감축될 예정으로 있던 군 복무기간을 되돌린 것입니다. 병사 복무기간은 2014년 7월까지 육군·해병대는 18개월, 해군은 20개월, 공군은 21개월로 각각 줄어들 예정이었는데 정부가 갑자기 제동을 걸면서 재조정된 것입니다. 이 조치로 육군·해병대는 21개월로, 해군은 23개월로, 공군은 24개월로 환원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북 관리 잘못으로 인한 안보 위기를 만만한 사병의 책임으로 전가한 행태가 아닐는지요.

 

더욱 황당한 것은 이것을 또 한 차례 이용하여 만들어지고 있는 이른바 '해병대 신화'라는 것입니다. 국민의 애국심과 안보의식이 높아져 해병대 지원율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것인데, 사정은 이와 다릅니다.

 

지원율이 급상승한 것은 해병대뿐이 아닙니다. 나머지 육해공 3군의 지원율도 비슷한 비율로 급상승했지요. 공군의 지원율은 해병대 지원율 4.5 대 1보다 높은 5.4 대 1입니다. 이것은 복무기간 단축을 기다리며 입대를 늦춰 왔던 정정들이 단축 희망이 아예 없어지자 대거 지원했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특히 이 사회의 일각에서는 해병대를 지원한 탤런트 현빈을 영웅으로 부각시키기도 했지요.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같은 이는 현빈의 해병대 지원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극찬했는데, 아마 그네의 관점으로는 연예인이 뭐 대단한 '노블레스'인 모양입니다. 또한 나이가 찬 남자가 뒤늦게 군에 지원한 것이 어떻게 '오블리주'가 된다는 것인지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병대를 특별한 군대인양 예찬하는 것은 모두 치졸한 군사문화의 소산입니다. 이것은 또한 다른 군을 상대적으로 격하시키는 짓이기도 하고요. 이 사회는 왜 가수 남진이나 김흥국이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지요. 또 임채무 같은 탤런트가 연평도 희생자를 문상할 때 해병대 복장을 한 것이 왜 뉴스거리가 돼야 하는지요. 그리고 홍사덕 같은 국회의원이 자기가 나온 해병대를 자화자찬하면서 정부와 청와대 관리에게 '개자식'이라는 욕설을 날리는 따위의 저열한 행위가 어째서 용납되어야 하는지요?

 

천안함과는 확연히 달라진 '아덴만의 여명' 

 

'아덴만의 여명'은 새해 1월 21일에 밝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해군 특수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선에 전광석화처럼 침투하여 해적을 모두 제압하고 인질 21명을 전원 구출한 것입니다. 국민들은 한편으로 부상당한 선장을 걱정하면서도 거의 모두가 군에 찬사를 보냈지요.

 

이로부터 이명박 정부의 아덴만 홍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홍보전은 '올인'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싶을 정도로 무계획적이었습니다. 또 다른 억류자인 금미호 선원이나 수백만의 가축이 살처분된 구제역 사태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국군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가 직접 작전 지시를 내렸노라고 말했지요.

 

텔레비전 정규 뉴스들은 거의 일주일 동안 하루 수십 분씩 '아덴만의 쾌거'를 집중 보도했습니다. 전투복 차림의 3성장군이 출연하여 시간대별 상황을 일일이 브리핑하는가 하면, 그것도 부족했던지 전투 장면 동영상까지 공개하여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봉사해 주었지요. 군 당국은 우리 특수부대 요원들의 숫자와 사용 장비는 물론 심지어는 지휘체계까지 알려줬어요.

 

군 당국은 해적들을 속인 기만작전의 내용, 사용 주파수, 미 해군 해상초계기의 지원, 해군 특수전 요원들이 사용한 무기와 제원 등을 낱낱이 밝혔고, 요원들의 선박 진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동영상, 그리고 함정의 속도와 최영함의 전자전 장비 및 헬기의 무장 내용도 공개했어요. 국민들은 마치 액션 영화를 보듯 자막 해설까지 곁들여지는 화면을 통해 작전의 전개 상황을 소상히 알게 됐고요. 그런데 이를 어디 우리 국민만 보았을까요?

 

무엇보다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 것은 군의 태도가 10개월 전 천안함에서 보인 것과 확연히 대조된다는 점이었지요. 천안함 사건 때 군은 사건 파악의 요긴한 자료인 열상감시장비 동영상이나 함체 폭파 부분 기물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북관계가 긴장될수록 고통스러워지는 군인들

 

최근 들어 빈번히 발생하는 전·의경의 집단이탈이나 자살사건은 우리의 마음을 한층 어둡게 만듭니다. 물론 전·의경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인입니다. 통계를 보면 사병의 군무이탈이나 자살사고는 희한하게도 남북관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이 지나고 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사병의 군무이탈과 자살사고는 급속히 줄었습니다. 그랬는데 최근 들어 이런 사고가 빈발하는 것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인한 남북관계 경색에 근본 원인이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권력자들은 안보위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국민 통제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장군들은 안보위기를 오히려 좋아하기도 합니다. 더 큰 권력을 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보위기 상황에서 가장 고통 받는 것은 일반 장병들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방부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군은 자기 살을 깎는 각오를 갖고 우리 장군들부터 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군은) 전후 60년간 안주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군이 지난 60년간 안주하다니요? 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혹시 우리 대통령은 한국인의 병역의무가 얼마나 과중한지 모르는 것 아닌지요? 이 글을 쓰는 필자만 해도 고등학교 때 군사훈련 3년, 육군에 입대하여 현역 근무 35개월, 제대하여 대학 군사훈련 4년, 예비군 7년, 민방위 8년을 치렀습니다. 필자의 형 두 사람도 저와 비슷하게 병역의무를 치렀고요. 결국 우리 어머니는 아들 셋을 군대 보내느라고 10년 이상을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런데 안주했다니요?

 

정작 안주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한국 남자가 가장 많이 꾸는 악몽은 군대에 다시 가는 꿈입니다. 이것은 군대 트라우마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대통령도 참 너무 하셨습니다. 안주했다니요? 굳이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정작 안주하신 분들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그리고 집권당 대표가 아닌지 묻고 싶군요.

 

인터넷에는 '병역미필 트리오'라는 제목과 함께 세 분의 이름이 거명되어 있던데 그것이 사실인지요? 만약 사실이라면 '모든 것을 다 해 보아서 안다'고 말하기 좋아하는 대통령께서도 안 해 본 것이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트리오'는 모릅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군인이라는 것을. 군인은 언제나 춥고 배고프다는 것도. 그리고 트리오는, 'X퉁소는 불어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도 물론 모릅니다. 군대 속담에 유달리 X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우리 군대 환경이 그만큼 열악하고 고통을 주기 때문 아닐까요? 오죽하면 'X(으)로 밤송이 까라면 까는 게 군대'라는 말도 다 있겠습니까? 물론 이 모두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끝장나면서 청산되었어만 할 권위주의 군대의 유산들입니다.

 

하지만 불행히 2011년의 군대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군이 민주화되려면 '문치'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문치주의란 민간인을 통제하는 데 군을 이용하지 않는 체제를 이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를 존경하는 분입니다. 아마도 그는 '문치'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군인이 행복해지려면 역설적이게도 '민간에 의한 군의 통제'가 작동되어야 할 터인데 현실은 반대로 치닫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헌법재판소는 국방부 군대불온서적 지정에 합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최근의 민·형사 재판에서는 국군기무사가 민간인 불법사찰에 동원된 것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군이 배타적인 권위를 행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 땅에 군사주의가 이미 창궐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명백한 징후입니다. 여기에다 남북관계에도 별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여 유감스럽게도 여러분 앞에는 고난의 시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장병 여러분! 아무튼 참 고생이 많으십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노고에 사심 없는 위로를 보내고자 합니다. 북풍한설 유난히 차갑게 몰아치는 이 겨울, 여러분은 누구보다도 값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애국심'이니 '신성한 국방의 의무' 따위의 입에 발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제 여러분이 헤쳐 나가야 할 고난은 '이 사회의 공동체를 위한 불가피한 선행(善行)'이라는 점만은 명확히 해 두고 싶습니다.


태그:#병역미필, #안보위기, #천안함, #연평도, #군복무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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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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