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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순안공항의 안내원.
 평양 순안공항의 안내원.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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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설날은 괴로운 하루다. 바로 북한에 고향을 둔 탈북자들이 그렇다. 탈북자들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이 오면 괜히 싫어진다. 오히려 이런 날들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한다.

물론 남한 종교단체나 사회복지 단체에서 탈북자를 위한 '탈북동포 설 잔치'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해 탈북자가 외롭지 않도록 하고 있다. 많은 탈북자는 이들이 주관하는 행사에 참가해 명절을 보내곤 하는데, 그래도 어쩐지 쓸쓸한 게 사실이다. 

그나마 가족이 있는 탈북자는 낫지만 혼자 사는 탈북자는 그 외로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무리 다정한 이웃과 같이 명절을 보낸다고 해도 피를 나눈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하는 것만 하겠는가.

고기 먹을 수 있는 북한 설... 화장실 앞에서는 '진풍경'

북한의 설날도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음력설보다 양력설을 더 비중 있게 쇤다는 점이 다르다. 북한은 1967년부터 음력 설 대신 양력설을 쇠 오다가 1989년부터 다시 음력설을 민족 명절로 정해 하루를 쉬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음력설보다 양력설을 기본으로 한다. 국가적인 휴일 설정도 양력설은 3일이지만 음력 설은 하루만 휴일이다. 정부의 시책이 이렇다 보니 주민도 양력설을 더 비중 있게 쇤다.

북한 주민들도 어려운 살림이지만 설 명절 전날 저녁에 송편이나 떡, 만두, 지짐 같은 것들을 만든다. 보통 가족 중에 여자들이 한 집에 모여서 음식을 만드는데,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주로 불을 때 주는 일(북한에서는 아직 가스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기본으로 하고 힘을 써야 하는 찰떡을 칠 때 거들어 주기도 한다. 

국가에서 좀 여유가 있을 때에는 지역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소주 한 병에 고기 1킬로그램과 과자·사탕을 각각 500그램 정도 공급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거의 공급되지 않는다. 평양은 지방보다 좀 여유롭게 사탕이나 과자 그리고 공급상품(신발, 옷 등 기타 생활용품)을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도 요즘 국가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거의 없어졌다.

최근 고기 공급은 당 간부나 국가보위부(한국의 국정원), 인민보안소(경찰) 혹은 경제적 수입이 잘 보장되는 항, 세관 등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직장, 혹은 외화벌이를 하는 기업 같은 곳만 공급받고 대부분 주민은 시장에서 따로 사 먹어야 한다.

고기는 소고기(북한의 모든 소는 농업용 부림 소로 사용돼 마음대로 잡을 수 없으며 협동조합 재산으로 등록되어 있음)는 구경조차 어렵고, 돼지고기를 기본으로 먹는데 한국처럼 구워 먹는 게 아니고 삶아서 먹는다.

인민군대같이 집단 합숙을 하는 곳에서는 '고기 국물'만으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이런 합숙을 하는 곳에서 설날 식당 근무에 배정받는 것은 하늘이 준 기회이기도 하다. 오래간만에 값진 음식들을 실컷 먹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부작용도 많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다 보니 소화를 시키지 못해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는 화장실이 주로 가정마다 없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데, 이날 화장실 앞에는 수많은 사람이 몰린다.

비록 진수성찬이 아니더라도 명절에는 친척들이 다 모여서 음식을 같이 먹는 재미가 있어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교통사정이 좋지 않아 친척끼리라도 가까운 지역에 살지 않으면 설날에도 다 모이기가 어렵다.

기차가 잘 다니지 않기 때문에 친척집에 한 번 가려면 품을 들여야 한다. 나도 99년도 대학 6학년 겨울방학 때(보통 북한 대학의 방학은 12월 25일께부터 시작해 약 한 달 보름 정도 된다.) 청진에서 평양까지 14일 걸려 가본 적도 있다. 그럴 때는 밥을 배낭에 싸가야 한다.  

500원에 1분 볼 수 있는 북한 땅... 원통하다

북한은 아직도 봉건적 관습이 많이 남아 있어 설날 아침 여자가 남의 집을 찾아가서는 안 되며, 특히 설날 첫 손님으로 여자가 찾아오면 재수가 없다고 여긴다.

아침 식사는 대체로 가족끼리 하는데 아침 식사가 끝나면 남자는 친구나 직장 동료의 가정을 방문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소주를 마시는데 북한 사람은 남한 사람보다 술이 좀 센 편이다.

보통 여자는 종일 음식 준비를 하느라 피곤해 쓰러져 자거나 TV를 시청한다. 설날 북한 TV 채널은 평양에는 3개(한 개의 고정 국영채널에 국가 명절이나 주말에 2개 추가된다), 지방은 1개 국영채널밖에 없는데, 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12월 31일 저녁에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평양시 학생 소년들의 설맞이 공연'이 인기가 많았다.

고 김일성 주석은 설 전날에는 꼭 학생 소년들의 공연을 관람했으며 설날 당일 아침에는 신년사를 했는데, 사망 전까지 이 두 가지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이후 신년사 대신 북한의 3개 언론기관 '공동사설'로 대체했다. 공동사설은 북한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북한 주민들은 모두 달달 외워야 했다. 설날과 다음날까지 신년사는 모두 20회 정도 방영됐다.  

북한에서도 설날에 세배하는 풍습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아이들은 차례로 동네 어른을 찾아 다니며 세배를 한다. 어른들은 남한처럼 자기 자식들이나 동네 아이들에게 줄 세뱃돈을 미리 깨끗한 돈으로 준비해둔다. 가정 형편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원에서 많게는 100원까지 주는데, 그 가치는 한국의 소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1만 원에서 5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다.

나는 한국에 들어올 때(2003년)는 혼자였는데, 북한에서 약혼녀를 데려오기 전까지 2년간 쓸쓸하게 설을 보내야 했다. 남한 사람들이 다들 고향으로 가느라 교통이 막힌다는 뉴스가 나올 때면 솔직히 화가 나기도 했다. 설을 맞아 많은 사람이 남쪽으로 가고 있을 때 우리 탈북자들은 주로 임진각이나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평소에는 차가 밀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렸지만 설이나 추석 때에는 도로가 거의 비어 있어 서울에서 30분 정도면 도착했다. 그곳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망원경으로 1분간 북한땅을 볼 수 있는데, 한국에 온 첫해에는 만 원짜리를 500원 동전 20개를 교환해 다 써버리기도 했다. 북한 지역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두고 온 고향과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이 그리워 눈물이 절로 나곤 한다.

남한 경쟁 사회에서 사는 게 바빠 고향 생각을 못 하다가도 명절이 되면 가족과 고향 생각이 간절해진다. 물론 남한 사람 중에도 고향에 가지 못하고 혼자 명절을 보내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러나 얼마든지 갈 수 있음에도 못 가는 것과 간절히 가고 싶지만 못 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가족에게 전화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손 잡아주길

남한에는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도 많다. 그들이 설날에 고향에 못 가는 심정 역시 탈북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화로 고향에 안부 통화라도 할 수는 있다. 북한은 탈북자가 원한다고 해서 전화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통일을 이야기할 때 분단의 아픔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그 아픔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간절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은 가족도 볼 수 없는 고통보다 더한 아픔과 비극이 있을까?

북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내가 죄인이 된 느낌이다. 우리는 무슨 죄를 지어서 이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이토록 가슴 아픈 슬픔을 겪어야 하는 걸까. 과연 언제가 되면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이 기다리는 저 경계선 넘어 그리운 고향에  자유롭게 갈 수 있을까? 참 원통하다.

어느 시인은 고향은 넋이고 자산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고향은 분명히 소중하고 가고 싶은 곳이다. 가족의 소중함과 고향의 가치는 그것을 잃어본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빌려 이야기하고 싶다. 남한의 많은 사람이 누리고 있는 그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리고 지금 당신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그 행복을 그리워하며 슬피 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한 번쯤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 주변에서 탈북자 등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 따뜻하게 손을 한 번 잡아주기 바란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도 따뜻해지고, 상대방은 그것만으로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태그:#북한, #북한의 설, #북한의 설명절, #북한명절, #설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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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북한)사람 입니다. 그래서 나는 조선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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