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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에 모인 사람들에게 책 <트랜스워킹>과 서정록박사님을 소개해 주고 계시는 수아선생님
 워크샵에 모인 사람들에게 책 <트랜스워킹>과 서정록박사님을 소개해 주고 계시는 수아선생님
ⓒ 정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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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자신의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하라.
육체, 감정체, 맨탈체, 영체 모두 어느 한 부분에만 치우침이 없이 조화롭게
모두 굳세고 순수하며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게 단련된 육체는 마음 또한 강화 시킨다.
의식을 풍요롭게 성장시키는 것은 손상된 감정을 치유한다." - 인디언 도덕경

2007년, 제주에 걷기만 하는 길 '올레'가 열리면서,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제주 올레길을 찾고 있다. 처음에 한 개로 시작했던 코스가 지금은 17개에 이르고, 마니아층이 생겼고, 올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여행사도 생겼다. 길을 걷는다는 것. 그 단순한 행동에 왜 현대인은 이렇게 빠져드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해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 검은호수 (인디언이름) 서정록 박사의 <트랜스워킹>이 그것이다.

서 박사는 피곤과 스트레스에 찌들어가는 현대 도시인을 위한 사명감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유괴를 위장한 '보이스 피싱' 을 당해서 금전상의 피해와 부채에 대한 부담으로 책을 쓰게 되었단다. 폼을 잡지도 않고 사적이기 그지없는 그의 솔직한 고백이 오히려 거부감없이 책을 들여다 보게 만든다.

서정록은 인디언 박사로 알려진 분이다. 철학을 전공하고 고구려사를 연구하다가 샤머니즘과 인디언 문화에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트랜스워킹>을 저술하게 된 시기는 인디언공부를 한 지 10년쯤 된 시점이며, 책을 내면서 이야기거리나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삶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금의 시대는 영성의 시대가 맞고, 서양에도 영성을 말하는 여러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있었지만 인디언의 지혜만큼 명쾌하고 쉬운 것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모임 자리를 마련하신 스님, 노래를 하는 스님, 태극권을 수련하는 부부, 아쉬람을 운영하는 요가 수행자,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일반인 등 종교적 관점과 경계를 떠나서 영적인 수행에 관심이 있는 3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직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목소리로 인디언의 역사와 영성에 대한 개괄적인 이야기가 이어졌고, 자리에 모여 앉은 이들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자세를 바꿔앉으며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단군신화에 보면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이 나오지요. 천제인 환인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인간 세상으로 내려 보내는 것으로 시작하잖아요. 지금의 흑룡강(아무르강) 하류 쪽에 가면 나나이족, 니프이족 등 원주민들이 많이 살거든요. 그 부족들이 나비를 칭할 때는 나비라고 하지 않고 '나비사람' 이라고 하더라고요. 호랑이도 '호랑이사람', 곰도 '곰사람' 이렇게 불러요.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사슴사람', '벌레사람' 이라고 불러요. 원주민들의 시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거죠. 고대로 올라가면 존재 방식과 생활 방식이 다르지만 인간만이 아니고 동물, 식물을 포함해서 생명체들(human being) 역시 우리처럼 느끼고 생각이 있는 존재들이라고 인식을 하는거죠. 단군신화의 천제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고 할 때 굳이 인간을 지금 우리들 인간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내려 보낸거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인디언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늑대와 함께 춤을>이나 <아바타> 쯤이 떠오를까. 대중적인 미디어를 통해서나 스치듯 한 번쯤 백인들의 총이라는 무기 앞에 자신의 영토를 잃어버리고 사라져간 슬픈 종족이라는 정도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을뿐이다. 아카데미상 수상에 빛나는(?)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 이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주변에서는 인디언식의 이름 만들어 부르기가 유행이 되기도 했었다.

20대의 나이에 보았던 영화는 주인공 케빈코스트너의 인간적이고 남성적인 모습이 인상에 남았었다. 우연한 기회에 케이블 티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내가 중년이 되어서인지, 야만스럽게 보였던 인디언들에게도 문화라는 것이 있고 그 문화가 영성에 바탕을 둔 지혜들로 이루어진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볼까요? 남자와 여자 이야기인데요, 인디언들의 남녀관을 보면 남자는 자기 삶에 필요한 지혜를 바깥에서 얻어야하는 불완전한 존재, 여자는 자신의 내부에 생명의 불꽃을 지닌 완전한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자분들은 매우 만족스러우신가요? (일동 웃음) 아마 사오십대가 지난 여자분이나 남자분은 이 이야기에 공감하실 겁니다. 우리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을 할 때 정자들이 경쟁을 해서 우수한 정자가 난자와 결합을 한다고 배웠지만, 현대의 과학에서는 최근에는 수많은 정자들속에서 우수한 하나를 난자가 선택해서 결합을 한다는 설이 있어요.

인디언 영화를 보면 추장들이 머리에 독수리 깃털로 된 머리장식을 길게 늘어뜨리고 나오잖아요. 남자들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족과 이웃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때 영적으로 성숙한다고 믿고 있어요. 인디언 문화에서 독수리 깃털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 의무를 잘 지킬 때마다 추장이 부족을 대신해서 독수리 깃털을 하나씩 전해 줍니다. 이렇게 단계를 하나씩 올라가면서 남자들은 영적으로 성장을 합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여성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뜻깊은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봤을 때 대부분의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여성들은 출산과 양육을 하면서 영적으로 점프(jump)를 하는 것 같아요. 엄마와 함께 있는 아이를 보면 엄마라는 대상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을 내맡깁니다. 아이로부터 그러한 신뢰를 느끼고 아이에게 무한한 애정을 들여 보살피는 사이 여성은 영적으로 커다란 성장을 해요. 영성은 사랑을 받아야만 성장을 합니다. 우리도 자주 처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 뭔가 굉장히 어른이 된듯한 느낌을 받을때가 있잖아요?

인디언 여성들에게는 '달걸이 움막'이라는 게 있어요. 달걸이를 할 때마다 그 움막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부족의 어른 할머니께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며 쉬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런가하면 인디언 여자들은 체격이 남자같이 다부진데 왜냐면 일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천막을 치고 개는 일도 딸들과 함께 하고, 땔감도 하러 다니고, 가축도 키웁니다.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전투에 나가는 외에는 자기 시간을 많이 가집니다. 서구인들이 인디언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일을 시키느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인디언 여자들은 스스로가 원해서 일을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야만이 남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 영적으로 성장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제가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들께 종종 당부하는 것은 남자 아이인 경우 꿈과 이상을 가질 수 있도록, 여자아이는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역할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키우시라는 거예요. 꿈과 이상이 없는 남자는 시체나 다름이 없고요, 여성으로서 태어나서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을 잃어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 이라는 게 하나의 영혼이 몸을 빌어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본인이 살아갈만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인증해 주는 일종의 인증장치와 같은 거라고 봐요. 마지막으로 인디언들의 경구를 전해 드리고 오늘 저의 이야기를 맺을까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통해서 사랑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라는 말과 '결혼은 카누와 같다'입니다. 감사합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갈수록 늘어가는 세태에, 하나만 낳아서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애쓰며 키우는 이 사회에서 훌륭한 어머니, 꿈과 이상을 잃지 않는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얼마나 지극한 영성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희미하게 잊혀져 가던 것들을 다시 선명하게 눈앞에 가져다 놓고 그것의 가치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자녀를 바라보던 시선에 대한 또 하나의 기준점이 생겼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흡족했다.

이어서 이날의 자리를 마련하신 현장 스님께서는 직접 트랜스 워킹을 한달 정도 수련해 보신 경험담을 들려 주셨다.

"첫날 한 40분 정도 걸었는데 무릎을 구부리고 걸으려니 스스로도 이상하고 적응이 안되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돌아오는 길은 그냥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다음날 다시 걸으니 이상하게 지치지가 않고 힘이 나서 트랜스 워킹으로 걸으면서 되돌아 왔어요. 셋째 날은 나도 모르게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막 달리고 싶어지는 거예요. 건널목에서 정지를 하고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데도 막 달리고 싶어 지드라고요. 요즘은 왕복 5킬로 정도를 걸어보고 있는데 뻐근했던 목과 어깨부분이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이예요. 그래서 제가 트랜스 워킹을 해 본 소감을 스무개 마디의 노랫말로 지었어요. 그냥 '트랜스워킹 약찬게'라고 이름을 붙여봤어요. 오늘 모임의 주제는 바로 '걸음아, 나 살려라~' 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현장스님의 재미있는 주제 발표로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많이 걸어도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힘이 솟으며 건강에도 도움이 되니 바로 이 워킹이 우리를 살리는 바탕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어진 저자 사인회 시간에 수아선생님께서 다음달에는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트랜스 워킹을 체험해 볼 수 있다고 안내를 해 주셨다. 걸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걸어보지 않으면 역시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건강을 지켜가는 수많은 방식들이 있으나 건강할 때 그것을 실천해 보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건강을 잃어 버리고 회복이 불가능하게 되었을때에야 비로소 지푸라기를 잡듯이 매달리게 된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걷는 것이 주는 행복과 치유의 경험을 여러분들도 부디 가져보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서정록님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으며 한살림운동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고대 동북아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글쓴이는 인디언의 삶과 정신세계에 크게 감명받아 지인들과 조그만 인디언 모임을 가지며 현재 거제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학고재)가 있고, 역서로는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나무심는사람)가 있습니다.



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 - 서정록의 인디언 이야기

서정록 지음, 열린책들(2003)


태그:#트랜스워킹, #인디언문화, #서정록, #명상음악감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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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초보라서 잘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좋은 기사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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