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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숲으로 오니
(...)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여 거닐기에 좋아라.
- 유치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중
 
지난 23일 부산의 장산에 올랐다. 장산계곡이 꽁꽁 얼어 있었다. 그동안 장산에 숱하게 왔으나 이렇게 꽁꽁 언 겨울 풍경은 처음이었다. 산길도 꽁꽁 얼어 있고 산바람은 살점을 파먹을 듯 날카로왔다. 정말 너무 추우니 어쩔 줄 몰라 다박다박 자꾸 걸었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산길로 접어드니 장산 계곡은 완전히 꽁꽁 언 하얀 얼음 계곡이었다. 장산 폭포도 그 물줄기가 얼어붙었다. 바위도 추위을 느끼는 듯 등과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동안 장산에 무수히 올라왔지만 올 겨울처럼 이렇게 꽁꽁 얼음 계곡을 구경하는 것은 처음이다.
 
얼음 계곡에는 아이들과 함께 놀러 온 어른들이 꽁꽁 언 얼음 계곡 위를 걷기도 하고 빙글빙글 스케이트도 없이 빙판 위에서 동심으로 돌아가서 함께 즐겁게 어울려 노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문득 어릴 적 썰매 타던 생각이 났다.
 

부산의 장산은 바위가 유난히 많은 산이다. 바위(돌)가 많은 것은 그 옛날 화산 폭발이 원인이라고 한다. 장산에는 정말 그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로 바위가 많다. 이름 없는 바위는 더 많다. 장산 중턱에는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여러군데 있다. 이 돌무더기를 너덜겅, 혹 돌서렁이라고 한다. 

 
이름 있는 바위의 이름을 열거해 보면, 장산 정상의 상여바위, 농바위, 장산 산록 반여동에 위치한 범바위, 장산 신천 중류 계곡 주위 등에 위치한 마당 바위 외 영험바위, 선바위, 영감할매 바위, 제왕바위, 칼바위, 촛대바위, 혈바위, 둥근바위(알바위), 매바위 등 열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바위(돌)는 신화에서 영험과 신격화된 인물이 태어나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우리 조상은 돌을 통해 빛나는 석기 문화를 탄생 시켰다. 돌은 또 견고함과 불변성과 생산력과 창조력 신비로운 응결력 등으로 신화의 의미를 부여한다. 
 
장산 8부 능선에 있는 선바위(장군바위)는 높이 11m, 둘레 12m나 된다. 선바위는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 24호.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재냈다는 기록이 있다. 선바위에는 밋밋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아주 먼 옛날 마을의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갔다가 높은 바위를 만났다. 바위 위에 어여쁜 미녀가 앉아 있었다. 나무꾼은 생각하기를 사람이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높다란 바위에 올라 앉아 있는 것이 신기하여 "도대체 저 여인이 사람이냐 선녀이냐 아니면 짐승니냐?"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사다리를 갖지고 다시 올라가니 여인은 하늘로 올라가 버렸고, 바위만 우뚝 서 있어 선바위로 불리었다고 전한다.

 

 

내 바위로 살으리라
눈 귀마저 닫아 두고
보이고 들리는 걸
안으로만 새겼건만
- <바위>, 고두동
 
 

 

▲ 해운대 장산 너덜겅지대에서 내려다보는 부산의 속살 풍경
ⓒ 김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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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추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꾸 걷다보니 등산로가 없는 장산 유일의 원시 지대인 너덜겅에 닿았다. 너덜겅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겨울 햇볕이 내려쬐이는 바윗돌에서 쉬고 있는 산꾼을 만났다.

 

찰칵찰칵 모두들 가지고 온 핸드폰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로 '장산 너덜겅'을 담기에 바빴다. 나도 모처럼 부산 속살이 환히 보이는 장산 너덜겅의 겨울 풍경을 동영상으로 담아보았다. 비록 무생물의 바윗돌이지만 천년이 넘는 기묘한 바윗돌들은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태그:#바위, #겨울산, #바위숲, #남근바위, #여근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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