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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여전히 2천원을 넘는 등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14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여전히 2천원을 넘는 등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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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ℓ)당 2049원.

17일 서울 중구 봉래동에 위치한 A주유소에 들른 차량 운전자들은 가격표를 보고 깜짝 놀랐을 터다. 휘발유값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2천 원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인근에서는 휘발유값이 2천 원을 웃도는 주유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에 따르면, 1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822.7원. 이는 1907.08~1948.72원을 기록했던 2008년 5월 넷째 주~8월 첫째 주를 제외하고는 1997년 가격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높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2008년 5~8월은 국제 원유 가격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때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2008년 7월 3일 1배럴당 145.29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현재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90달러 안팎이다.

현재 국제 유가는 2008년 7월의 62% 수준인데도, 휘발유값은 93%로 당시와 비슷한 셈이다. 현재 휘발유값이 2008년과 비교해 과도하게 비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13일 "주요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고 했다. 결국 이 의문의 실타래를 찾는다면, 비싼 휘발유값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유류세를 내리면 소비자 부담 크게 줄일 수 있다"

지난 2008년 5월 서울 시내의 한 육교에는 기름값 인상을 알리는 한 주유소의 현수막을 걸려 있다.
▲ '오늘밤 기름값 오릅니다' 지난 2008년 5월 서울 시내의 한 육교에는 기름값 인상을 알리는 한 주유소의 현수막을 걸려 있다.
ⓒ 연합뉴스 한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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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대비 비싼 휘발유값의 원인으로 유류세를 꼽는 전문가가 많다. 유류세를 내려야 소비자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3월 당시 정부는 국제 유가가 폭등함에 따라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10% 낮췄다. 휘발유 1리터에 붙는 유류세(교통·교육·주행·부가세)가 819원에서 737원으로 82원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2009년부터 유류세가 환원된 탓에, 현재 국제 유가 대비 휘발유값은 2008년보다 비싸져, 차량 운전자의 부담은 커졌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011년 1월 현재 1리터당 1822.7원인 휘발유값의 절반은 911.6원에 달하는 유류세가 차지한다. 휘발유와 자동차용 경유를 비교해보면, 경유는 휘발유보다 정유사의 공장도가격·유통비용·마진 등이 더 비싸지만 세금은 665.3원에 불과해, 경유의 주유소 판매가격은 휘발유보다 200원 이상 저렴하다.

유류세 인하가 실질적인 소비자의 기름값 부담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유류세는 탄력세율이기 때문에 법 개정 없이도 30%까지 낮출 수 있다. 송보경 서울여대 명예교수는 "탄력세율은 국제 유가 폭등에 따른 충격완화나 가격안정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현 시점에서는 탄력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 원유 75% 폭락하면 뭐하나, 환율 폭등했는데 

비싼 휘발유값의 또 다른 원인으로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 꼽힌다. 2008년 7월~2009년 2월의 국제 원유 가격, 국내 휘발유가격,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이 같은 주장이 허구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시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국제 유가가 곤두박질쳤던 때다. 2008년 7월 3일 사상 최고치(1배럴당 145.29달러)를 기록 한 서부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2009년 2월 12일 33.98달러까지 떨어졌다. 7개월여 간 국제 원유 가격이 75% 이상 폭락한 것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값 인하폭은 국제 유가보다 훨씬 작았다. 정유사가 7월 3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원유를 수입해 정제과정을 거쳐 2주 뒤 내놓은 휘발유값은 1922.76원(7월 둘째 주 기준). 7개월 뒤 국내 휘발유값은 1519.39원(2월 넷째주)으로 약 20% 가격이 인하하는 데 그쳤다.

그 이면에는 원·달러 환율의 급등이 있다. 국제 원유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 7월 3일 1045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2009년 2월 12일 1401원을 기록했다. 결국, 국제 원유 가격이 75% 폭락했지만 원·달러 환율이 25% 오르는 바람에 국내 휘발유값 인하폭이 축소된 것이다.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이 차량 운전자의 기름값 부담을 크게 늘렸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송보경 교수는 "기름값 논쟁과 고환율 정책은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하지만, 고환율 정책이 차량 운전자의 기름값 부담을 늘린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서민물가안정을 위한 종합대책'  정부합동브리핑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서민물가안정을 위한 종합대책' 정부합동브리핑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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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올라서 휘발유값도 올린다고? "거짓말"

비싼 휘발유값에는 정유사의 책임도 크다. 

소비자시민모임 석유시장감시단이 2010년 1월부터 12월까지 국제 원유 가격과 주유소의 휘발유 판매가격을 비교해본 결과, 정유사의 휘발유 공장도 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 오름폭은 국제 원유 가격 오름세보다 더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년 동안 국제 원유 가격은 등락을 거듭한 끝에 리터당 131원 올랐다. 반면, 정유사의 공장도 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은 각각 169원, 160원씩 올랐다. 국제 유가보다 각각 38원, 29원씩 인상폭이 더 컸던 것이다.

또한 정유사는 국제 원유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때에도 휘발유 공장도 가격과 주유소 판매 가격을 내리는 데 인색했다. 2010년 5월의 경우, 한 달 동안 국제 원유 가격은 25.34원 내렸지만, 휘발유 공장도 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의 인하폭은 각각 11.57원, 9.43원에 그쳤다.

주유소 가운데는 SK에너지의 휘발유값이 가장 비싸다. 석유시장감시단이 매주 주유소 휘발유값을 비교한 결과, 1년 내내 SK에너지 주유소의 휘발유값이 가장 비쌌다. 지난해 12월 마지막 주의 경우, SK 주유소의 휘발유값은 리터당 1813.86원으로, 현대오일뱅크(1794.70원)보다 19.16원 비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3일 국내 6개 정유사의 담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에 착수했고, 석유류 제품 가격을 점검하는 태스크포스팀도 구성하기로 했다. 이서혜 소비자시민모임 팀장은 "정유사는 국제 원유 가격 상승 때문에 휘발유값을 올린다고 하지만, 국제 원유 가격 상승분보다 더 올렸다"며 "정유사는 소비자들을 위해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태그:#물가상승, #휘발유값, #유류세 인하, #정유사 폭리, #기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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