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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신부'의 모습 보여주신 그 분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2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소재 천주교 마산교구 덕산동성당. 김영식(62·알로이시오) 주임신부의 송별미사가 열렸다. 이날 미사는 천주교 마산교구장인 안명옥 주교의 집전으로 열렸으며, 자리가 부족해 서 있는 신자들도 있었다.

서울에 함세웅·문정현·문규현 신부, 부산에 송기인 신부가 있었다면, 경남에는 김영식 신부가 있다고 보면 된다. 70~80년대 민주화투쟁 현장을 이끌었던 김 신부는 당시 남해·사천·진주·마산·창원 등에 있는 성당에 있었는데, 서울 등지에서 학생·노동·재야운동 인사들이 수배되어 오면 피신 시킨 뒤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줬다.

김영식 신부가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송별미사를 마친 귀 고개를 숙이며 신도들 사이를 걸어나오고 있다.
 김영식 신부가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송별미사를 마친 귀 고개를 숙이며 신도들 사이를 걸어나오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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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87년 경남지역 '6월 민주항쟁' 때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07년 1월 '6월 민주항쟁'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경남추진위원회'를 결성했는데, 그 때 김영식 신부는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준비위원장으로 당시 발족식에 참석했던 김 신부는 연단에 서지 않고 행사자료집에 쓴 글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을 추진할 조직을 꾸리고 출사표를 던지는 날이다, 우리의 꿈은 우리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원로 신부지만 그는 늘 현장에 있었다. 지난해 2월,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연대를 목적으로 '희망자치 만들기 경남연대'가 결성되었는데, 김영식 신부는 공동대표를 맡았다. 6․2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는 힘을 발휘했고, 김두관 경남지사가 당선되기도 했다.

또 김영식 신부는 4대강사업 반대 현장에도 함께 했다. 그는 지난해 8월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와 천주교정의구현 마산교구사제단이 함안보 공사 현장에서 연 '4대강사업 즉각 중단과 환경보존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해 "창조 질서 거스르는 4대강사업은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기도하기도 했다.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사진은 김영식 신부가 한 어린이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는 모습.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사진은 김영식 신부가 한 어린이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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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사진은 권영길 의원과 김영식 신부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사진은 권영길 의원과 김영식 신부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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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송별미사에는 권영길 국회의원과 이종엽 경남도의원, 김태웅 창원시의원, 김유철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이흥석 전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박재혁 희망자치만들기경남연대 집행위원, 진광현 경상남도 서울사무소 정무보좌관 등이 참석했다.

권영길 의원은 김영식 신부를 "서울에 함세웅 신부, 부산에 송기인 신부가 계셨다면 경남에는 김영식 신부가 있다"며 "한 마디로 말해 예수처럼 살아가려고 온 몸을 던지셨고, 가난하고 고통받고 핍박과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신문> 기자 출신인 권 의원은 "김영식 신부와 신학교 동기들이 언론계에 많이 계셨는데 처음에는 그 분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면서 "'참신부'이신데, 성당 안에서 일부 신자들이 '정치권 신부'처럼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안타까웠다"고 덧붙였다.

권영길 의원은 "70~80년대 서울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 중에 김영식 신부와 연계되지 않는 분들이 없을 정도였다, 도망을 오면 밥도 먹여주고 잠도 재워주면서 피신시켰던 것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들도 많았다"고 밝혔다.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는데, 천주교 마산교구 안명옥 주교와 권영길 의원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는데, 천주교 마산교구 안명옥 주교와 권영길 의원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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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주교 "내리사랑이란? 권력이란?"

이날 안명옥 주교는 강론을 통해 '내리사랑'과 '권력'에 대해 설명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위로 올라갈 수는 없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내리사랑이다. 권력은 봉사와 섬기는데 사용하라고 했다. 예수도 봉사를 받으려고 하신 게 아니고 봉사하러 오셨다고 했다."

또 안 주교는 김영식 신부를 소개하며 성당 신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덕산동성당의 교우들에게 감사의 빚을 지고 있다. 기다려주셨고, 굳이 하실 말씀이 있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음에도 침묵으로 인내하셨다. 그것은 김영식 신부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어서 거듭 감사드린다. 지금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남아 하느님의 사제로 살아가길 바란다. 악화된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송별미사를 마칠 즈음 김종원 보좌신부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 보좌신부는 "오늘 군대 제대 10년만에 보초를 섰다"고 말했다. 김영식 신부는 지난해 '영명축일(영세·견진성사 때에 받은 세례명을 기념하는 날)'인 6월 21일에도 자리를 비웠다는 것.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사진은 천주교 마산교구장인 안명옥 주교와 권영길 의원, 김태웅 창원시의원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사진은 천주교 마산교구장인 안명옥 주교와 권영길 의원, 김태웅 창원시의원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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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신자들은 신부의 '영명축일'을 축하해 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김영식 신부는 축하 받는 게 부담이 되어 그날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김종원 보좌신부는 "송별미사와 관련해 며칠 전 말씀 드리면서 특별한 예식을 하지 않고 두 가지만 할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더라"고 소개했다.

뒤이어 우리옷을 곱게 차려 입은 아이들이 꽃을 들고 나와 김영식 신부한테 전달한 뒤 큰 절을 올렸고, 또 어린이들이 축하노래를 불렀다. 김영식 신부는 겸연쩍게 웃기만 하셨다.

안명옥 주교가 미사를 마치며 김영식 신부한테 한 말씀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김 신부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미사를 마친 뒤 신부들이 신자들 사이를 걸어 나왔다. 김영식 신부는 고개를 숙이며 걸었다.

송별미사를 마친 뒤 식당으로 갔다. "왜 아무 말씀도 없으신지, 소감 한 마디 듣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김영식 신부는 고개만 숙인 채 웃기만 하셨다. 옆에 있던 한 여성 신자가 말했다.

"신부님께서는 말씀을 하시지 않지만, 하신 거나 마찬가지다. 말씀을 안 하셨지만 다 하신 것이다."

김영식 신부는 3일 오전 천주교 합천공소로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이날 송별미사는 안명옥 주교가 맡아서 했다.
 2일 오전 천주교 마산교구 진해 덕산동성당에서 김영식 신부 송별미사가 열렸다. 이날 송별미사는 안명옥 주교가 맡아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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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영식 신부, #안명옥 주교, #진해 덕산동성당, #6월민주항쟁, #권영길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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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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