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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소중한 것은 항상 와인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남과 살가운 대화입니다.
 와인이 소중한 것은 항상 와인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만남과 살가운 대화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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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7일 밤, 모티프원에서 느리게 걷는 걸음으로도 5분 거리에 있는 식물감각에서 새로 출시된 와인을 시음했습니다.

Stephen Vincent Crimson 2007.

식물감각 마숙현 대표님의 초대에 저는 헤이리의 젊은 피, 갤러러퍼즈의 홍승호 관장과 이은정 작가와 동행했습니다.

미국 캘리포이아산인 Stephen Vincent Crimson은 와인전문가이신 마 대표님께서도 아직 한 번도 테스팅해보지 않은, 새로 수입되어 유명와인샵에 갓 입고된 와인이라 했습니다.

아무 그래픽도 들어가지 않은, 흰색 배경에 단지 로고만 프린팅된 미니멀한 디자인의 레이블이 오히려 솔직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특히 심홍색(crimson)의 병입된 와인이 그 흰색배경에 비치면서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크림스파게티와도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서민적인 와인이었습니다. 이어서 나온 루이 막스, 머큐리(Louis Max, Mercurey)를 미리 준비해두셨던 것으로 보아 저와의 대면을 원했던 것은 단지 신작와인의 시음만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눈치챘지요.

루이 막스, 머큐리Louis Max, Mercurey
 루이 막스, 머큐리Louis Max, Mercurey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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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사람 사는 이야기가 그리웠던 것이지요. 거드름을 부리며 걸어도 단지 몇 분 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이웃과 공유하는 시간이야말로 다른 어떤 것을 희생해도 좋을 와인향보다 좋은 삶의 향기입니다.

우리는 마라톤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사실 마 선생님은 마라톤의 풀코스를 일 년에 몇 번씩은 소화하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10여km를 달리는 분입니다.

'마라톤이야말로 인생을 닮았다'라고 말씀드리자 마 선생님께서는 '인생에 있어서 마라톤보다 쉬운 것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이 마라톤이니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마라톤은 우리의 인생과 닮은 것 같습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종주할 수 없으니까요. 마라톤이 그렇듯 각자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려야하는 것이 인생 아니겠습니까.

마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이 저희 부부의 34번째 결혼기념일입니다."

홍 관장님과 이은정 작가께서는 슬쩍 갤러리로 가서 부부를 위한 에스프레소 잔을 준비해왔습니다. 두 분의 이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위해서….

장현숙 사모님께서는 그날이 결혼기념일인지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마 선생님은 잔잔한 이벤트로 늘 저를 즐겁게 하는 분이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이벤트들이 저를 위한 것인줄 알았더니 이벤트를 즐기는 본인을 위한 거였더라고요."

평소에 과묵하신 마 선생님께서 사모님을 위해 잦은 이벤트를 준비해주셨다는 얘기는 생각 밖이었습니다.

'그런 이벤트로 이어지는 애정표현에 부부싸움이 있을 수 없었겠다'는 저의 물음에 장 선생님의 또 다른 폭로가 이어졌습니다.

"한번은 부부싸움 중에 마 선생님이 갑자기 집을 나갔습니다. 상대가 사라졌으니 화가 풀리지 않았더라도 싸움은 소강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 선생님이 10분 뒤에 집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전투자세를 취하는 제 앞에 등 뒤로 감추었던 장미 한 송이를 불쑥 내밀더라고요."

정말 절묘한 화해방법이다, 싶습니다. 한 평생을 함께하면서 부부가 어찌 다툼이 없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화해를 하는가 겠지요. 마 선생님은 그 화해의 비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와인이 소중한 것은 항상 와인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만남 그리고 살가운 대화이지요. 와인은 늘 그것을 부추깁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와인 , #식물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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