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 내 마음은 슬픕니다. 며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아끼고 아끼던 진돗개가 죽었습니다.

5년을 같이 살았습니다. 아내와 작은 아이가 받은 충격이 무척 큽니다.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 순수혈통을 가진 진돗개를 귀농운동본부 친구로부터 분양받으면서 꼭 혈통을 지켜달라는 약속은 못 지켰습니다. 집 근처에 혈통 있는 진돗개 수컷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형님 집에서 시베리안허스키를 가져다가 신혼살림을 차려준 지 2년 만에 줄줄이 8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았습니다. 고물고물 백구를 닮은 강아지도 있고 허스키를 닮아 노란 점이 박힌 놈도 있었지요. 젖이 모자라 인터넷으로 유기농 우유랑, 분유, 사료를 사다가 먹여 한 마리만 잃고 모두 이웃에게 공짜로 분양할 수 있었지요. 작은 아이 소원이라 꼭 백구 닮은 새끼 '별이' 하나만 집에 두었습니다.

귓가에 노란점이 박혀 허스키 티를 낸다. 그래도 성격은 우리 백구를 빼닮았다. 작은아이가 눈 위에 눈썹을 그려주었다. 뛰노는 모습이 배꼽을 뽑는다.
▲ 백구와 시베리언허스키 사이에 나온 '별이' 귓가에 노란점이 박혀 허스키 티를 낸다. 그래도 성격은 우리 백구를 빼닮았다. 작은아이가 눈 위에 눈썹을 그려주었다. 뛰노는 모습이 배꼽을 뽑는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산책에 나서면 주인 앞으로는 나서지 않고 꼭 뒤따라만 온다. 조금 자기관리를 못해 주변이 좀 지저분한게 흠이다.
▲ 시베리언허스키, 우리집에서는 수컷이지만 '숙희'라 부른다. 산책에 나서면 주인 앞으로는 나서지 않고 꼭 뒤따라만 온다. 조금 자기관리를 못해 주변이 좀 지저분한게 흠이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주변이 지저분해진다, 사료값이 많이 든다는 아내의 지청구를 들어가면서도 나와 아이가 개들에게 쏟는 정은 도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아는 수의사에게 심장사상충 약과 구충제를 얻어다 접종을 했고, 매일 똥을 치우고 산책을 시키고 먹이가 모자라지는 않는지, 물은 안 떨어졌는지 매일같이 한 식구로 살았습니다.

그런 백구가 하루아침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내가 집을 떠나던 날, 꼬리 치며 배웅 잘하던 백구가 유달리 집에서 나오지 않아 잠깐 머리만 쓰다듬어주고 바삐 집을 떠났는데, 그날 저녁 혼자 속이 아파 괴로워하다가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내가 그날 오후부터 4박 5일간 집을 떠나 다녀온 곳은 문경에 있는 정토수련원입니다. '나눔의 장'이라는 마음수련에 다녀왔지요.

농부에게 겨울은 마음을 닦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직 콩도 못다 털었지만 올해 마지막 일정이라 마무리는 함께 농사짓는 형님과 영우씨에게 맡기고 훌쩍 떠난 것이지요. 4박 5일간 있었던 일들은 물론 약속에 따라 일일이 옮기지 못합니다. 다만 느낌만 옮기려고 합니다.

정토회 '나눔의 장(나장)'은 참나를 찾는 '깨달음을 장(깨장)' 다음 단계의 마음수련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깨장을 귀농한 다음 해인 2003년경 다녀왔지요. 깨장에서는 대갈빡을 수십 번 얻어맞으면서 얼얼한 상태에서 한동안 새로운 경험에 정신을 못 차렸답니다. 그 후 제 삶도, 삶의 양태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내 안의 소중한 나를 찾아 잘 가꾸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하게 되었고요.

'나눔의 장'은 깨장처럼 대갈빡을 심하게 맞은 기분은 아니지만 마음밭의 잔잔한 호수에 한바탕 흙탕물을 일으키고 난 후 잔잔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입니다.

'마음에 깨어있고, 마음을 이해하여 마음이 자유롭고 평화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런 일이지요. 그런 상태가 된다면, 그런 사람으로 가득하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요. 마음공부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지요. 살만한 세상, 아름다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명상이나 마음공부는 무의식상태에서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내면세계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 여행에서 제가 찾은 것은 무엇일까요?

'오직 지금 여기 이 마음'이라는 명심문을 수십 번 되뇌면서 그날 이후 내 마음자리에 붙박인 것은 무엇일까요? 명확하진 않지만, 한바탕 휘젓고 간 것은 내 마음이 분명 내 안에 폴폴 떠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별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혼란스러운 마음, 즐겁고 슬픈 마음, 4박 5일간 수백 번 마음이 바뀌면서 이 마음을 어찌해야 하나, 어찌 잘 구슬려 데리고 살아야 하나 걱정하는 마음 하나 건졌습니다.

나는 농사짓는 농부입니다. 겨울에는 땅도 쉬고 몸도 마음도 쉬어야 내년 농사지을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겨울 동안은 주로 마음도 몸도 충분히 쉬려고 합니다. 2년 전 겨울에는 변산 원광선원에 한 달간 머물면서,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 한 방울이 내 안에 들어와 흐르고 있고, 나무가 내뿜는 산소로 내가 숨쉬고 있고, 햇살과 바람과 비와 별빛의 도움을 받아 자라는 들판의 곡식으로 내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가족, 친지, 친구, 이웃의 도움 없이 나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신념, 용기, 자존심 같은 것이 없다면 또 사는 맛이 날까요? 내 한 뼘 곁 소중한 것들 덕분에 내가 온전히 나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지요. 생각의 갈래에서 나온 마음밭이 이렇듯 내가 사는 원리까지도 알아차리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잘 관리하고 보듬고 소중하게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삶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하는 마음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요?

<녹색평론> 최근호에서 배병삼님은 '덕이란 무엇인가'에서 오늘날 덕은 진공청소기와 태풍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낮추고 비울 적에야 강한 힘을 발휘하는 덕처럼 스스로 진공상태를 만들어야 강한 힘으로 쓰레기를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태풍의 눈)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태풍이 덕의 가치를 설명하는 역설의 원리로 맞닿아있다고 합니다. 하소연을 들어주고 보살펴주는, 배려많은 평안한 사람에게 끌리는 힘은 자기 안을 깎아서, 닦아서 연못이나 계곡처럼 움푹 팬 공간을 만들어 그 빈 공간에 쌓이는 어떤 미덕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겸양과 경청, 배려를 통해 형성되는 자연스런 힘이 덕이라고 배 교수는 얘기합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챙겨주는 데서 힘이 생긴다는 역설을 통해 자신을 알고 자신의 그릇을 비우는 마음공부는 곧 자신의 덕을 쌓아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용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조심스러운, 수줍어하는, 정중한, 부드러운, 나서기 싫어하는, 말수가 적은' 덕목은 마음공부의 기본입니다. 아마 권력을 가진 자나 가지려는 자는 제일 싫어하는 덕목이겠지요.

4박 5일 동안 내 안에 생긴 마음을 잘 지키며 잘 살자는 평범한 깨달음이 잔잔한 호수에 풍덩 하고 동심원을 그리며 나아가는 듯합니다. 그 동심원의 파장이 얼마나, 언제까지 갈지는 잘 모릅니다. 변함없이 내 마음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줄 것입니다. 이번에도 나는 한바탕 꿈을 꾸고 난 뒤 새롭게 태어난 기분입니다.

4박 5일간 집을 비우고 돌아와 백구의 부재를 알리는 작은 아이와 아내의 눈물 앞에 3배를 올립니다. 그 백구 이름이 '나무'였습니다. 4박 5일간 나눔의 장에서 내 별칭이 '나무'였구요. 백구 나무는 내가 죽고 새로운 나무로 태어날 시간에 바로 떠났군요. 아내와 아이가 서럽게 운 것을 보니 바로 내가 죽은 것이었습니다.

돌아와 열병을 앓았습니다. 집에서 잔 첫날밤 고열에 시달리고, 털다가 만 콩깍지 잔뜩 허리에 이고 지고 부리고 하는 꿈에 시달리다 새벽에 일어나 똥 한 바가지 누고 나오니 좀 살 것 같습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나무' 한 그루로 잔잔한 호숫가에 다시 잎을 피어올 리는 것으로 믿어도 될까요? 그제야 우리 마눌님이 좋다고 씩 웃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 마음은 다시 웃깁니다.

집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 한그루, 집 지을 터를 찾을때 이 나무가 마음에 들어 뒤도 보지 않고 터를 골랐다.
▲ 느티나무 한그루 집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 한그루, 집 지을 터를 찾을때 이 나무가 마음에 들어 뒤도 보지 않고 터를 골랐다.
ⓒ 이우성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농부에게 겨울은 몸과 마음을 닦는 시간입니다. 열심히 고된 농사 시작할 에너지를 겨울에 얻고 내년 봄, 다시 밭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올해 겨울은 시작부터 생각할 것들이 참 많군요.



태그:#나눔의장, #정토수련원, #마음공부, #진돗개, #농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