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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11일 오전 10시 55분]

2009년 리영희 선생이 집앞 잔디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2009년 리영희 선생이 집앞 잔디밭에서 활짝 웃고 있다
ⓒ 류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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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렬의 끄트머리에서 사람들을 따라 가만히 움직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리영희 선생님을 망월동 묘역으로 모시는 영결식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잠시 짬을 내서 먼발치에서나마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 이 시대의 마지막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님. 지난 8일 화장을 마친 선생님의 유골이 영원한 유택인 망월동 묘지를 향해 5·18공원을 막 들어서고 있었다.

휑한 눈빛에 꼭 다문 입술, 좀비 같은 사람들

행렬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이며 걸었다. 얼마나 조용하고 처연한 표정들인지, 마치 좀비 영화에 나오는 좀비 같았다. 휑한 눈빛에 꼭 다문 입술, 때맞춰 내리는 빗줄기. 하지만 조금의 동요도 없이 온몸으로 비를 맞으면서 사람들은 조용조용 묘지를 향해 걸어갈 뿐이었다. 하나 같이 무표정한 얼굴에 허공을 응시한 시선을 하고 터벅터벅 걷는 폼들이 적막하게 느껴졌다. 먼 발치에서 영결식이라도 지켜보길 원하는 시민들도 하나 같이 초라한 행색이다.

영결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심사를 대신할 뿐 스윽슥, 로봇처럼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치 조용하고 스산했다. 광주에는 실로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힘찬 구호나 연이은 합창 한 마디 없이 영결식은 침착하고 엄숙하게 치러졌다. 다만 앞을 향하여 저벅저벅 걷고 있을 뿐이다.

늦은 템포로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행렬은 입구에서 영결식장에 당도해 있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관이 주도하는 올해 5·18 행사에선 부르지도 못했던 노래다. 그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합창해야 했다.

리영희 선생 퀴즈, 여러분도 맞춰 보세요

중학생인 딸이 책읽기를 게을리 하기에 내 나름대로 '도전 골든북'이라는 이벤트를 만들어서 아이에게 책 읽는 기회를 만들었다. 골라준 책을 아이가 다 읽고 나면, 나는 가장 핵심이 되는 책 내용을 질문하고 아이가 정확하게 답변을 하면 상금으로 만 원을 주는 식이다.

그 때 내가 선정한 책 중에 리영희 선생 일대기가 있었다. 물론 청소년용이라 읽기도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쉽게 엮어진 책이다. 아이는 장기려 박사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질문하는 요지의 핵심을 정확히 맞춰 상금 만 원을 거뜬히 타갔다.

거기에 고무돼 독서에 재미를 붙이나 했지만 결국 리영희 선생님 책은 못 읽고 말았다. 상금 만 원은 탐이 나지만 게임도 해야 하고 친구들과 '싸이'로 교감도 해야 하고 학원 숙제도 하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을 좀처럼 내지 못한 것. 그 사이 책 반납 날짜가 임박해 버렸다.

이렇게 리영희 선생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고 보니 강제로라도, 아니 상금을 배로 해서라도 아이에게 책을 읽힐 걸 그랬다고 후회가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존경하고 기억해야 할 지식인 한 사람을 이렇게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다. 더군다나 지금은 리영희 선생님 같은 지식인의 힘있는 사자후가 너무나 간절한 시절이 아닌가.

아이가 그때 리영희 선생 책을 읽었다면 나는 이 문제를 내려고 했다.

선생께서 평생 아무리 하찮은 계층의 사람이라도 반드시 존중하고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하며, 당신 또한 언제 어디서나 소신 있는 말과 행동으로 살아야 되겠다고 깨닫게 된 계기가 두 번 있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신분은?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연락장교단 근무하는 리영희 선생(오른쪽).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연락장교단 근무하는 리영희 선생(오른쪽).
ⓒ 한겨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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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두 사람과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젊은 리영희 장교는 평생을 화두로 삼을 깨우침을 얻게 된다.

통역 장교로 복무하던 젊은 시절의 선생은 어느 회식자리에서 예쁜 기생과 엮이게 된다. 하지만 젊은 장교 리영희는 그 기생을 한낱 화류계 여자로만 보고 함부로 대한다. 이에 젊은 리영희 장교를 향해 당당한 모습으로 꾸짖던 기생. 선생은 거기에서 화를 내기보다는 큰 부끄러움을 느낀다. 기생 신분으로 젊은 장교를 향해 사람이 갖춰야 할 의무와 본분에 대하여 당당하게 꾸짖던 달빛 아래 기생의 모습을 선생은 평생 기억하며 어떤 신분의 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말 것을 다짐한다. 

또 인민군 소탕 작전을 명분으로 무자비한 양민학살을 일삼던 당시 군인들의 횡포에 맞서서 군인들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따지던 젊은 스님의 용기는 선생을 다시 한 번 큰 깨달음의 계기로 이끈다. 그 당시 양민 위에 군림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하던 군인들을 향해 목숨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잘못을 지적하던 가난한 사찰의 어린 스님의 용기 앞에서 선생은 평생의 사표로 삼을 자존의식을 배운다.

그렇지만 이는 남달리 맑은 선생의 영혼이 선행됐기에 감응할 수 있었던 일화다. 자신들이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과의 체험을 그렇게 큰 깨달음과 교훈으로 연결시키기란 쉽지 않다. 선생의 남다른 결벽과 순결한 영혼이 있었기에 이 젊은 날의 경험이 평생의 교훈도 되고 깨달음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평생 약한 자들, 의로운 사람들을 위해 싸우다가 자신의 불이익과 고통을 필연적으로 감내하셨던 리영희 선생님. 리영희 선생님께서 당신의 의지로 가장 소외된 지역 망월묘역을 택하여 영면에 드셨다.

한국의 '에밀 졸라'가 가셨다고 누군가는 추모사에서 울먹였다. 지금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억울한 처지의 한국형 '드레퓌스'들이 사회 여기저기에서 간절하게 힘 있는 지식인들의 한 마디를 갈망하고 있다. 재벌의 몽둥이 앞에 속수무책으로 매질을 당하는 맷값 근로자의 무릎 꿇린 무기력 앞에, 남들 평생 공들인 직장의 밥그릇을 난데없이 꿰차고 들어앉은 전직 앵커의 뻔뻔한 패러글라이딩식 파격적 고용 행태에, 굶주림에 부황 든 북쪽 동포들을 향해 총을 겨누라며 전쟁을 획책하는 열강의 강압에 직면하여 누구도, 어느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한다, 나서지 않는다.

권력을 쥔 자들에게 신용비어천가를 지어 받치고 충성도를 심사 받는 비굴한 지식인들의 교태가 난무하는 세상. 언제였던가, 거기에도 다름 아닌 '사람이 살고 있더라'며 북녘땅 탐방기로 우리를 뭉클하게 했던 민주 인사라는 작가마저도 현직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가방을 들고 따라다니는 블랙 코미디로 우리를 쓸쓸하게 하질 않았나.

이런 참담한 현실에서 맞이하는 리영희 선생의 영결식은 더 없이 쓸쓸하고 절망적이다. 그렇지만 선생께서는 우리나라의 앞날을 낙관하셨다고 한다. 평생을 고민하고 고통을 감당하신 선생께서 보여주고자 했던 미래를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더 마지막 가시는 길을 먼발치로나마 함께 하고 싶었다. 이름 없는 시민들의 쓸쓸한 얼굴들이 영결식 뒤 배경으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절망으로 가득 찬 두렵고 황망한 얼굴들이 행렬 여기저기 구석에서 눈시울을 적신다. 영결식 내내 비가 내린다.

암흑천지가 된 광주, 거짓말처럼 첫눈이 내렸다

시대의 양심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한 평생을 살다 지난 5일 타계한 고 리영희 교수의 운구가 8일 오후 하관을 위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 들어서고 있다.
 시대의 양심으로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한 평생을 살다 지난 5일 타계한 고 리영희 교수의 운구가 8일 오후 하관을 위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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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이 진행되는 사이 광주는 암흑천지가 됐다. 지역뉴스는 4시부터 20분간 암흑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한밤중처럼 깜깜해진 가운데 조문객들이 리영희 선생 빈소에 헌화하고 있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사이 광주는 암흑천지가 됐다. 지역뉴스는 4시부터 20분간 암흑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한밤중처럼 깜깜해진 가운데 조문객들이 리영희 선생 빈소에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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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이 진행되는 사이 순식간에 세상은 암흑으로 변해 버렸다. 내가 느낀 분위기를 자의적으로 일컫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자연현상이었다. 오후 4시 20분에서 40분 사이, 약 20여 분간 계속된 이 기상이변을 뉴스에서는 '광주 지역에 암흑현상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에서는 광주 전남 지역에 아주 극심한 암흑 현상이 20분 가량 이어졌다고 했다. 그런 기상용어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에게 드리워진 암흑의 공포는 어마어마했다. 잠시 소강 상태던 빗줄기가 순식간에 굵은 채찍이 되어 온갖 사물을 찍어 누르는가 싶더니 요란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으로 바뀌면서 하늘이 순식간에 캄캄하게 변해 버렸다. 한치 앞도 분간이 어려울 지경으로 새카맣게 변해 버린 암흑 속에서 추위와 공포가 한꺼번에 몰아쳤다. 암흑은 우리 몸을 갈팡질팡 아무런 몸부림마저도 못하게 묶어 놓았다. 참담한 조문객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이라도 하듯이 하늘은 점점 흑빛으로 변해갔다.

하늘도 때로는 인간세상과의 소통을 그렇듯 기이한 자연현상으로 대신 하기도 하나 보다. 속으로 피울음을 삼키는 가련한 시민들 머리 위로 천둥번개가 치더니 이내 세상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내가 행사를 끝까지 못보고 먼저 망월동을 빠져나올 때는 암흑 현상이 극에 달할 무렵이었다. 와이퍼를 아무리 바삐 움직여도 빗줄기는 차 앞유리를 발처럼 덮어 버리고 라이트를 다 켜도 채 1미터도 시야 확보가 어려워 운전에 애를 먹었다.

이제 누가 있어 우리를 대신해 '나는 분노한다'고 세상을 향해 일갈해 줄 것인가. 이런 참담한 심정으로 맞이하는 깜깜한 자연 현상은 일시적인 기상이변으로 받아들이고 넘기기엔 두렵고 무서웠다. 하늘이 우리에게 내리는 모종의 암시이자 경종 같았다.

어렵사리 집에 도착해 행장을 풀고 생업을 준비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와, 눈이다! 엄마 첫눈이에요!"

아이가 신이 나서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첫눈이다. 비도 여간해선 내리지 않던 마른 하늘에 굵은 비가 내리더니 이윽고 비가 그치고 첫눈이 내렸다. 아이 손목에 이끌려 내다본 하늘엔 어느새 암흑이 걷히고 하루의 막바지해가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밤은 아직 멀었던 것이다. 암흑천지였던 어둠은 걷히고 대명천지의 장관이 서쪽 하늘을 배경으로 붉게 펼쳐지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암흑 현상은 불과 20여 분 만에 끝이 나고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어 있었다. 암흑에 순응하느라 긴장되어 확대된 동공을 조절하느라 한동안 눈을 심하게 깜박거려야 했다. 간절하게 그리워하던 빛을 되찾았건만 갑자기 밝아진 빛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을 암흑으로 휩싸이게 했던 기상이변 현상은 고작 20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 어둠 속에서 느꼈던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엄마가 많이 슬퍼하니까 리영희 선생님 책 꼭 읽을게"

하늘은 경종을 울리고 싶었던 것이다. 지나친 절망도, 섣부른 방심도 결국은 우리를 위해 그토록 커다란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선생님을 올바로 기리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광주 전남 지방에 내려진 암흑 현상은 그 어마어마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고작 20분이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끝내 낙관하셨다는 우리의 미래라는 것도 결국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터득하고 이겨내 그 해답을 찾아야 하리라.

"엄마, 내가 시험만 끝나면 이번에는 리영희 선생님 책 꼭 읽을게요."
"웬일로?"
"응. 엄마 아빠가 오늘 거기 망월동에 그 할아버지 때문에 갔다면서요. 엄마랑 그렇게 슬퍼하니까 내가 이번엔 공짜로 읽을게. 문제 맞춰도 나 돈 안 받고 공짜로 해줄게요."

기말고사만 끝나면 상금을 두 배로 늘려서라도 꼭 읽게 해야지 벼르고 있는데 제 스스로 읽겠다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것도 공짜로.

"근데 엄마 그 할아버지는 왜 이름이 영희야? 진짜 그 할아버지 남자 맞아? 여자 아냐?"
"그러고 보니까 정말 웃긴다. 어려서 친구들한테 놀림도 많이 받았겠네. 영희가 뭐야."
"성도 특이하지 리씨. 리영희. 정말 짱이다. 근데 엄마 문제 너무 어려운 건 내지마. 알았지?"
"그럼 너도 공짜로 해줬는데 엄마도 쉽게 내야지."

암흑이 걷히고 다시 밝아진 세상에서 오가는 행복한 대화들이었다. 리영희 선생이 망월동에 묻히던 날 광주전남에는 암흑 현상이 20분간 계속되었다가 비로소 빛을 되찾았다.


태그:#리영희, #망월동 ,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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