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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볕 아래서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겨울볕 아래서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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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대문 앞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고추는 이제 막 말리기 시작한 티가 팍팍 났다. 아마도 밭에서 끝물인 고추를 마지막으로 딴 것 같았다. 기온이 뚝 떨어져 부는 바람은 쌀쌀했지만 볕은 따뜻했다. 그 따사로운 볕 아래에서 고추들은 빛이 바래지면서 말라가리라. 강화도는 겨울이 깊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11월 25일, 강화나들길 6코스를 걸었다. 엿새 만에 다시 찾아간 강화도에는 확실히 딱 그만큼 겨울이 깊어 있었다. 엿새 전만 해도 나들길을 걸을 때 웃옷 하나만 입고도 추운 줄 몰랐는데, 이번에는 달랐던 것이다. 바람막이 점퍼 하나를 껴입고도 가끔은 선뜩한 기운을 느껴야 했으니, 강화도에 겨울이 깊어가는 게 맞기는 맞는 모양이었다.

강화나들길 6코스 '화남생가 가는 길'은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 광성보에서 끝난다. 거리는 18.8km. 강화나들길 안내지도에는 코스와 거리가 잘 표시되어 있지만 정작 중요한 설명을 빼놓았다. 6코스의 이름을 왜 '화남생가 가는 길'인지, 화남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강화나들길
 강화나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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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어느 봄날, 강화의 선비 화남 고재형 선생은 나귀 한 마리를 타고 강화도 유람 길에 올랐다고 한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때였다던가. 선생은 서두르지 않고 유유자적 섬을 둘러보았단다. 유람만 하고 말았다면 지금까지 화남 선생이 강화도를 돌았던 일이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은 섬을 둘러보다가 풍광이 좋거나 지인이 있는 곳에서 발길을 멈추고 시를 지었고, 그것을 모아 문집으로 남겼다. 256수라고 하던가. 그 문집이 바로 <심도기행>이다.

강화나들길은 화남 선생의 <심도기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강화나들길 곳곳에서 선생의 시가 새겨진 표지판을 볼 수 있는 것은.

강화나들길 6코스에는 화남 선생의 생가가 있는 두두미 마을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화남생가 가는 길'로 나들길 이름을 붙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어디에도 설명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다. 나 역시도 그런 이야기를 예전에 듣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길만 걷다 돌아왔을 것이다.

이번에는 혼자 걸었다. 1코스부터 5코스를 걸을 때는 늘 동행이 있었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동행이 있기도 했지만, 혼자 걷기 시작했던 2코스는 길 위에서 동행을 만나기도 했다. 한데 이번에는 혼자 걷기 시작해 끝까지 혼자 걸었다.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길 위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혼자 걷는 호젓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강화나들길을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끝까지 따라온 내 그림자. 그림자를 벗 삼아 걷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강화나들길을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끝까지 따라온 내 그림자. 그림자를 벗 삼아 걷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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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이어지거나 숲으로 이어지는 길을 빼면 마을 안으로 이어진 길까지도 콘크리트로,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지만, 강화도에서는 여전히 시골마을 정취가 물씬 풍겨났다. 말리려고 펼쳐놓은 붉은 고추에서, 비가 쏟아지면 요란한 소리가 박자를 맞춰 울릴 것 같은 양철지붕에서, 담벼락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에서, 추수가 끝난 텅 빈 황량한 들판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집 담옆에 쌓인 장작들. 이걸 준비하고 얼마나 뿌듯했을까?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끝낸 주인은 아마도 발을 편하게 뻗고 잠잘 수 있었으리라.
 어느 집 담옆에 쌓인 장작들. 이걸 준비하고 얼마나 뿌듯했을까?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끝낸 주인은 아마도 발을 편하게 뻗고 잠잘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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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스파랜드 뒤부터 숲길이 시작되었다. 그곳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니 화남 고재형 선생의 시가 새겨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예전에 이 부근을 조산평(造山坪)이라 불렀나 보다. 조산평은 강화에서도 알아주는 옥토여서 당시에도 부자들은 이곳에 다투어 투자를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는 부동산이 최고인가 보다, 하면서 혼자 슬며시 웃었다.

화남 고재형 선생의 시는 강화나들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화남 고재형 선생의 시는 강화나들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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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길은 누렇게 마른 솔잎들이 잔뜩 쌓여 있어 아주 폭신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드러운 융단을 밟는 느낌마저 든다. 그 길을 지나니 이번에는 바싹 마른 활엽수들이 수북하게 깔린 길이 나온다. 발밑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나뭇잎이 달린 나무는 소나무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낙엽이 쌓인 길을 걸었다.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낙엽이 쌓인 길을 걸었다.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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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이따금 나부끼는 나들길 리본을 따라 걷는 길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길을 걷는 사람은 오로지 나 하나. 낙엽 밟는 소리가 내 그림자와 함께 나를 끈질기게 따라올 뿐이다. 이 길 역시 오르막길은 가파르지 않고, 내리막길 역시 경사가 심하지 않아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걸을 수 있어 좋다. 강화나들길은 유난히 이런 길이 많다.

숲에서 강화나들길 리본을 따라 걸었다. 리본은 가끔 길 위에 떨어져 있기도 했고, 바람에 깃발처럼 나부끼기도 했다.
 숲에서 강화나들길 리본을 따라 걸었다. 리본은 가끔 길 위에 떨어져 있기도 했고, 바람에 깃발처럼 나부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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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그렇다고 무작정 앞만 보면서 내달리듯이 걷는 건 아니다.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기도 한다.

강화버스터미널을 출발한 지 1시간 반 만에 선원사 절터에 도착했다. 절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지만,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엄청나게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송광사와 더불어 고려의 2대 사찰 중의 하나였는데, 금불상만 500개가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규모였는지 가히 짐작이 된다.

선원사는 고려시대인 1232년, 최우가 호국사찰로 창건한 절로 대장도감을 설치해 팔만대장경 목판을 만들어 보관했다고 한다. 그 대장경이 지금 합천 해인사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랬던 절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터만 남았으니, 이런 경우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야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절터에는 건물지 자리를 표시하는 표지판들이 여기저기 꽂혀 있고, 누런 잔디가 깔려 있었다. 볕이 잘 드는 자리였다. 양지바른 곳은 이런 곳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곳의 한쪽에 앉아 점심대용으로 준비해온 김밥을 꺼내 먹었다. 12시 반이 훌쩍 넘었으니 시장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끈한 커피도 꺼내서 몇 모금 마셨다.

선원사 터.
 선원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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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툭 트여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절터 아래에 절이 있었다. 선원사. 고려시대의 절은 아니나 이곳에 우(牛)보살이 있었다. 소 두 마리가 외양간 안에 들어앉아 있기에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기에 발을 내딛었더니 갑자기 이상한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기겁을 했더니 그게 소독을 하는 거란다.

소들은 큰 눈을 껌벅이면서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보려고 했더니 소들은 내가 다가오는 것을 꺼리는 것처럼 자꾸 얼굴을 아래로 숨긴다. 사람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해코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소들이 자꾸만 눈길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것 같아 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나왔다.

강화 선원사 앞에는 연못이 있는데 매년 이 곳에서 연꽃 축제가 열린단다. 연못은 말라비틀어진 연 대궁과 연잎으로 을씨년스럽게 뒤덮여 있었다. 생명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이 연못이 내년 여름에는 푸른 연잎과 고운 연꽃으로 가득 차겠지, 싶어지니 내년 여름에 강화도로 연꽃 축제를 구경하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길은 전봇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길은 전봇대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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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암천으로 가는 길에 활짝 편 채 말라가는 장미꽃들을 보았다. 장미가 필 철이 아닌데 강화나들길을 걷다보면 가끔 이렇게 빛이 바랜 채 말라가는 장미를 볼 수 있다. 갑자기 닥친 추위에 장미가 얼어버린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숲길이다. 길을 덮은 낙엽 사이로 바싹 마른 밤송이들이 보인다. 숲은 깊었다. 숲 사이로 길이 이리저리 굽어지면서 이어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묶인 리본이 아니라면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숲이었다. 헐벗은 나무들만 가득한 황량한 숲에 겨울은 아주 깊게 깃들어 있었다.

화남 고재형 선생의 생가가 있는 두두미 마을에 그려진 아주 특별한 벽화. 두두미 마을의 특징을 잘 잡아냈다.
 화남 고재형 선생의 생가가 있는 두두미 마을에 그려진 아주 특별한 벽화. 두두미 마을의 특징을 잘 잡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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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학교를 지나고 영묘사 앞까지 지나 도착한 화남 선생의 생가가 있는 두두미 마을은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별다른 특색이 없는 마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을의 쉼터 의자에 앉았을 때, 벽화를 보았다. 저게, 무슨 그림이지?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니 마을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다.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그림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두두미 마을은 지금까지 나들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마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마을이 되었다.

광성보로 가는 길에 고개를 하나 넘었더니 바다가 보인다. 2코스와 6코스가 만나는 지점에 이르렀다. 2코스 호국돈대길은 광성보를 지나 초지진까지 이어지지만 6코스는 광성보에서 끝난다.

광성보로 가는 길, 바다를 끼고 걸었다.
 광성보로 가는 길, 바다를 끼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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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로 가는 길에 만난 바다 역시 겨울답게 황량했다. 바닷새 두어 마리가 갑자기 날아오른다. 새를 따라 눈길을 옮기니 느슨하게 기역자를 그리면서 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것이 보인다. 철새들이 돌아오는 것인지, 어디론가 떠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길게 바다 위로 뿌려진다.

5코스의 종착지인 광성보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5분. 다섯 시간쯤 걸었다. 안내지도에는 예상소요시간이 6시간으로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혼자 걷다보니 시간이 덜 걸린 것 같다. 하루 종일 혼자 걸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광성보 가는 길에 만난 강아지들. 마치 카메라를 향해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인간이 누구인가, 나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 녀석들, 정말 귀여웠다.
 광성보 가는 길에 만난 강아지들. 마치 카메라를 향해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를 취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인간이 누구인가, 나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 녀석들, 정말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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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보는 텅 비어 있었다. 지난 10월 28일, 강화나들길 2코스를 걸을 때만 해도 관광객들로 북적였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빈 광성보 주차장에는 찬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진 탓일까, 아니면 시간이 늦은 탓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에는 아무래도 관광객이 줄기 마련이니까.

해 저물녘이 되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진다. 버스정류장에서 배낭 안에 넣어온 오리털 파카를 꺼내 껴입었더니 한기가 누그러진다. 4시 20분경에 강화읍으로 가는 순환버스가 도착했다. 그 버스를 타고 광성보를 벗어나 출발지인 강화버스터미널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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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보여행, #강화나들길, #화남, #고재형, #두두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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