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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통마을에 이르자 용화산 아름다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 용화산 양통마을에 이르자 용화산 아름다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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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학교에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과 진도를 맞추고, 따로 3차원 건축프로그램을 공부하고, 배운 내용을 정리하여 글로 쓰는 일까지 하려다 보니 내 능력의 무리였는지 건강의 평형을 잃었다.

집사람이 내 건강을 챙기려고 대전에서 강원도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의 삶을 나를 위해 일 년간 보류한 셈이다. 단칸방이 생활 공간이 된 집사람을 위해 주말에는 춘천 부근의 명산을 답사하여 몸과 마음을 새롭게 재충전해 주기로 했다.

오전 3시부터 일어나 밀린 일을 했지만 마무리를 못하고 있는데, 오전 6시가 넘자 집사람의 성화가 급해진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108배와 개들과 산책을 서둘러 끝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인터넷 검색창에서 '춘천의 명산'으로 검색하여 '용화산'을 찾았고 이 산을 등산하기로 했다.

숙소로부터 45km 떨어진 거리도 적당했고 높이도 878m이니 별 무리가 안 될 것 같다. 거기다 서울의 북한산, 대구의 팔공산, 광주의 무등산과 같이 춘천의 용화산이라니 기대가 앞선다. 등산의 기점인 사여교에 이르니 오전 10시 반이다. 날씨도 좋고 기온도 산행하기엔 최적이다. 전날 저녁에 내린 가랑비 때문인지 초겨울의 하늘이 더욱 파랗다.

시작점을 '양통마을'과 '하얀집' 둘 중에서 골라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산행 형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산행을 마치고 몸이 많이 지친 상태로 하산하기 때문에 하산지점에서 차에 접근하기 좋도록 코스를 정해야 한다.

등산안내판을 보니 하얀집에서 코스가 다양하다. 하얀집까지 가서 주변을 살펴보고 등산코스를 결정하기로 하고 자연휴양림 길로 올라가 하얀집에 도착하였다. 하산코스를 용화산 정상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오다가 사여골로 내려온다면 오후 4시경에 등산이 완료될 것 같다. 여유시간을 한 시간 잡아도 오늘 등산은 오후 5시 이전에 끝날 것이다.

용화산은 춘천의 명산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계곡이 크고 깊으며 물이 많았다. 정상부근의 뭉텅이로 솟은 화강암 덩이는 아름다운 풍광에 더해 서기를 내 품고 있었다. 등산할 산을 잘 골랐다고 집사람이 대만족이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다.

하얀집에서 1km 정도 계곡 따라 길을 오르니 용화산 자연 휴양림 관리사무소이다. 친절한 관리인안내에 따라 사여령으로 오르는 휴양림 계곡으로 접어들었다. 고탄령을 지나 안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능선 길은 낙엽이 떨어져 옷을 벗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주변의 산야를 조망할 수 있고 급히 오르고 내려가는 정도도 완만한 최고 산책길이었다.

용화산 등산로 사여령에 서 있는 등산안내판이다. 자상하고 일목요연하다. 이런 확실한 안내판이 있는데도 길을 잘못 든다면 바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실제 산 속으로 들어가면 꼭 그렇지도 않다.
▲ 등산안내판 용화산 등산로 사여령에 서 있는 등산안내판이다. 자상하고 일목요연하다. 이런 확실한 안내판이 있는데도 길을 잘못 든다면 바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실제 산 속으로 들어가면 꼭 그렇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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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등반이나 우리 같이 둘이서 등반할 경우는 비상식량과 응급처치할 수 있는 삼각건이나 압박붕대, 무릎보호대, 손전등 정도는 항상 지녀야 할 기본 장비다. 사여령에 이르러 간단한 간식을 먹고 나서 집사람이 넘겨주는 배낭을 들쳐 메면서 비상식량과 비상등을 확인했다. 서로 미루다 보니 비상시 대책은 전무하고 배낭 속에는 고어텍스 겉옷과 김밥 3덩이와 비상용 빵, 과일과 식수가 전부다. 손전등마저 차에 놓고 왔다.

사여령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 길. 낙엽이 지고 나무의 벗은 몸체 사이로 보는 주변의 산군들의 조망이 좋다.
▲ 사여령 능선길 사여령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 길. 낙엽이 지고 나무의 벗은 몸체 사이로 보는 주변의 산군들의 조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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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먼 발치에서 본 암장들의 실채가 들어난다.
▲ 정상 부근의 웅장한 암장들 용화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먼 발치에서 본 암장들의 실채가 들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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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지나 용화산 정상에 가까워지자 화강암 덩어리가 삐쭉삐쭉 솟은 등반길이다. 중국의 장가계 바위는 퇴적암인데 반해 우리나라 명산들의 바위는 비록 규모 면에서 적을지 몰라도 정갈하고 깨끗한 화강암이다. 규모를 너무 내세워 중국 산과 우리 산을 비교할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산에 맞는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하면 될 일이다.

설치된 밧줄을 잡고 조심하여 오르지만 한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중심을 못 잡는 나는 구르는 바윗돌이 된다. 위험한 코스다. 산행시간이 보통 사람들의 2배 정도로 길어진다. 정상에서 하기로 한 점심시간이 어중간하다. 

대학 산악회 동아리에서 배운 암벽등반의 기술들이 유용하다. 정상에 오르자 오후 2시가 지나고 있다. 험한 암장 때문에 등반시간이 지체되어 여유시간을 거의 사용한 상태다. 좋은 정상의 조망을 충분히 즐기지 못해 아쉽지만,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하산을 서둘렀다.

집사람 무릎에 약간 이상이 발생했다. 무릎보호대도 없고 삼각건도 없다. 증상이 심해져 걷기가 힘들어지면 곧바로 비상사태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안부까지 되돌아와 하얀집 코스로 하산하려는 계획을 변경했다. 가파른 경사길보다 완만한 길이 무릎에 충격이 덜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상에서 사소한 판단의 착오는 감당하기 힘든 결과로 나타난다. 700m 내려가면 나타나야 할 큰 고개가 1시간 가까이 능선을 걸었지만 나타나지 않는다. 용화산 정상에서 파로호 쪽으로 하산한 탓이다. 코스에 대한 믿음이 강해 의심 없이 길을 재촉하다 보니 엉뚱한 방향인 성북령에 이르렀다.

정상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길을 따라 하산하려 했으나 길을 잘못들어 성북령으로 가고 말았다.
▲ 용화산 등산길 정상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길을 따라 하산하려 했으나 길을 잘못들어 성북령으로 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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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에는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지친 상태에서 이를 결행하는 데는 많은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 되돌아갈 각오를 세우고 상황을 판단한다. 오후 3시 반이다. 다시 한 시간 이상을 걸려 정상에 도착한다면 오후 4시 반이고 날이 저물 1시간 이내에 양통마을 입구까지 내려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손전등도 없다.

능선의 안부에는 길이 있다는 산행의 상식을 되살리며 삼화리 쪽으로 하산 길을 찾아 나섰다. 집사람이 낙엽에 덮여 희미해진 하산 길을 찾았다. 40분을 걸려 삼화리 옛길로 내려섰지만 시간은 어후 4시가 넘었다. 차가 있는 하얀집까지는 7km 정도 떨어져 있다.

산길에서 날이 저물 것이다. 그렇더라도 걸어야 할 길이 큰 도로면 밤길을 갈 수 있지만 산속이면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다. 휴양림 관리소에서 얻은 지도로 판단해보니 20여 분의 여유가 있지만 처음 가는 길이라 어떤 돌발사태가 생길 줄 모른다.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콜택시라도 부를 것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7km를 걷는 길에는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5시 반이 되자 큰길에 도착했고, 사여교에 이르자 오후 6시가 되었다. 아직 하얀집까지 1.6km 남았지만 포장길이다.

한 발자국도 더 걷기 힘들어 주저앉으려는 순간 어둠 저쪽에 우리의 늙은 적토마가 주인들의 늦은 하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귀갓길에 춘천의 E마트에 들러 다음주에 필요한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한 쇼핑을 절름거리며 했다. 계산대에서 계산하려고 보니 우리가 산 것의 대부분이 육류였다. 퍽 배가 고픈 모양이다. 서로 쳐다보고 웃었다.


태그:#용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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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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