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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이라고 상상해보자. 인근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오면, 큰 위기감을 느낄 것이다. 만약 같은 건물에 SSM이 들어온다면? 까마득한 느낌이 아닐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폐업은 '시간 문제'일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이들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겠느냐"고 반문할 터다. 하지만 서울 정릉동의 한 중소상인에게는 현실이다. 불침번을 서서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다. 피자가게로 위장한 후 기습 개업해 지탄을 받은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의 경우도, 바로 옆 건물에 슈퍼마켓이 있다.

편법·기습개점을 하던 SSM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골목 상권 접수'를 선언한 모양새다. 또한 SSM 확장을 포기했다고 밝힌 신세계 이마트가 중소상인의 슈퍼마켓에 자신들이 유통하는 제품을 들이는 방식으로 도매상인들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

중소상인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아예 중소상인들을 타깃으로 삼고 들어온다, 상도의에 어긋난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그런데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 전통상업보전지역 반경 500m 내 SSM 입점 제한)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직영점뿐만 아니라 가맹점에까지 사업조정제도 확대 실시) 개정안의 국회 통과는 요원한 상황이다.


"2~3층에 할인마트 있는데, 1층에 들어오겠다니... 이해할 수 없다"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풍림아이원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이우창 풍림할인마트 대표는 "2~3층에 할인마트가 들어선 상가 1층에 홈플러스가 입점하려 한다"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풍림아이원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이우창 풍림할인마트 대표는 "2~3층에 할인마트가 들어선 상가 1층에 홈플러스가 입점하려 한다"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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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찾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 풍림아이원아파트의 3층짜리 중앙상가 입구는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1층 상가 외부를 둘러싼 흰색 가림막에는 '나라 팔아먹는 홈플러스 물러가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앞에 세워둔 한 할인마트 배달 차량에도 홈플러스를 비판하는 팻말이 붙었다.

차량 옆에 있는 천막이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만난 풍림할인마트 이우창 대표는 "상가 2층에서 마트를 운영하고 있다, 1층에 들어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입점 공사를 막기 위해서 이곳에서 불침번을 선다"고 전했다. "3층 할인마트 직원도, 1층 편의점 직원도 종종 불침번을 선다"고 덧붙였다.

이곳 3층짜리 상가 2~3층엔 각각 198㎡(60평) 규모의 할인마트가 있고, 1층에는 편의점도 보였다. 이 대표는 "할인마트가 2개나 있는 상가 1층에 들어오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방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또한 서울시의 사업일시정지 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이곳 상가 1층에 들어올 것이라고 알려진 것은 지난 9월 2일. 이씨는 같은 달 4일 사업조정신청을 냈고, 서울시는 6일 사업일시정지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사업조정신청 대상에 포함이 되지 않는 가맹점이라며 10월 들어 공사를 강행했다.

이후 이씨를 비롯한 주변 중소상인들은 공사를 막기 위해 공사 자재 반입을 막고 인부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업무방해 고발로 인한 성북경찰서의 출두 요구였다. 또한 이씨가 피켓시위에 나서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11월 8일부터 집회 신청을 해놓았다. 현재 공사가 일시 중단됐지만 언제 다시 시작될지 알 수 없다.

그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가맹점이라는 근거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서울시의 사업일시정지 권고가 유효한 상황인데도 공사를 강행했다"며 "사실상 중소상인을 내쫓기 위해 들어왔다, 이게 대기업이 할 짓인가"라고 지적했다.


바로 옆에 들어선 SSM... "출혈경쟁해서 혼자 살겠다는 것 아니냐"

기존 슈퍼마켓(럭키마트) 바로 옆 건물에 입점한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의 모습.
 기존 슈퍼마켓(럭키마트) 바로 옆 건물에 입점한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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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우리를 도와달라는 게 아니에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는 룰(규칙)을 만들어 달라는 겁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660㎡ 규모의 럭키마트를 운영하는 이진철 이사의 말이다. 럭키마트 바로 옆 건물에는 지난달 11일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264㎡ 규모)이 들어섰다. 피자가게 공사인 것처럼 위장해 기습 입점한 지 24일째, 벌써 30%의 매출 감소가 나타났다.

이 이사는 "우리 가게 바로 옆에 들어와서 우리 가게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면서 "임대료가 비싼 곳에 입점한 롯데마이슈퍼의 경우, 우리 가게의 고객을 다 뺏어가지 않는 한 절대 흑자를 볼 수 없다, 결국 우리를 무너뜨리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럭키마트는 롯데마이슈퍼의 가격 할인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마진을 포기하면서까지 가격을 낮췄다. 주류의 경우, 럭키마트는 롯데마이슈퍼보다 1~2단계 더 많은 유통단계를 거치지만 맥주 350㎖ 캔 1개당 1250원으로 동일하게 책정했다. 이날 기자가 직접 럭키마트와 롯데마이슈퍼의 주요 상품을 살펴보니, 롯데마이슈퍼의 일부 '미끼 상품'을 제외하고는 많은 상품의 가격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럭키마트의 가격이 쌌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는 럭키마트가 오래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이렇게 마진이 줄어들면서 장기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다"며 "하지만 롯데마이슈퍼는 우리가 망할 때까지 본사에서 자본력으로 대학로점을 유지시켜줄 것이다, 가격을 낮춰도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공정한 경쟁이 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에게 그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 이사는 "동네 구멍가게가 아닌 이상 미끼 상품을 빼면 동네 마트는 SSM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SSM이 들어오면 소비자 편익이 크게 향상된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라며 "또한 출혈경쟁 끝에 SSM만 남아 독점적 지위를 유지했을 때 무조건 저가 정책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매업에 진출하는 신세계 이마트... "도매업 중소상인 큰 타격"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럭키마트는 옆 건물에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이 입점하면서 매출이 30% 줄었다. 사진은 3일 찾은 럭키마트 내부 모습.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럭키마트는 옆 건물에 롯데마이슈퍼 대학로점이 입점하면서 매출이 30% 줄었다. 사진은 3일 찾은 럭키마트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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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만난 중소상인들은 최근 트위터에서 화제가 됐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문용식 나우콤 대표 간의 'SSM 설전'을 여러 차례 입에 올렸다. 이들은 이 논쟁에서 신세계가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365를 확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환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유통 대기업과 전략이 다를 뿐, 중소상인들을 위협하는 것은 똑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신세계 이마트가 이마트몰을 통해 개인 슈퍼마켓에 자신들이 유통하는 상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유통망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에 나왔다. 앞서 만난 이우창씨는 "신세계 이마트로부터 물건을 공급하겠다는 제의를 받았다"며 "그런 제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밝혔다.

중소상인들은 SSM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상품을 싸게 공급하겠다는 신세계 이마트 쪽의 제의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상인들은 이를 거부했다. 이성노 노원구 상계6동 SSM입점반대대책위원장은 "당장 도매업을 하는 중소상인들의 타격이 크다"며 "또한 유통대기업이 도매업을 장악하게 되면, 소매업은 여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화열 SSM입점저지서울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개인 슈퍼마켓이 유통대기업의 SSM에 맞서려고 또 다른 유통대기업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나마 SSM 입점을 제한하는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안이 동시에 통과되지 않는다면, 중소상인들은 이래저래 죽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태그:#SSM, #기업형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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